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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 상담 프로그램

그대들은 눈부시다

by 양다경

퇴로 없는 의욕 저하가 원치 않는 무기력의 뿌리를 생성했다. 그 생성된 무기력의 뿌리는 고독이란 가지를 형성하고, 달갑지 않은 우울의 꽃을 피워내니. 그 꽃은 여러 개 피어나도 외로운 꽃. 하지만 그 또한 꽃이기에 나쁘지 않다고, 스스로 다독이고 집을 나섰다.

​가는 곳은 가정 보건 선생님이 추천하신 고용취업지원센터. 그 새로운 길의 안내를 위해 발걸음을 그곳으로 옮기고 있었다. 왠지 평소 의기소침했던 날의 반복이었기에, 가고 있는 길의 바깥공기는 마음처럼 무거웠다. 하지만 생각보다 용기의 새싹은 꼿꼿하니. 그것은 더 이상 잃을 것도 없고, 메마르지 않아 생겨난 긍정의 불씨, 그 덕분이리라.

​나는 그렇게 긍정적 마인드를 안고, 고용센터로 방문해 적성검사와 취업 테스트를 받았다. 그리고 그 시작점이 끝나기가 무섭게 담당자가 '직업 상담 프로그램'이라는 나흘간 수료 과정에 대해 얘기해 주었다. 그건 선택사항이었지만, 내용은 여러 사람들과 취업에 필요한 자존감을 구석구석 채운다고. 그러면 수료 후 나온 배움 카드로 평소 생각해 둔 학원에 가면 적응이 쉽다고 했다. 어찌 보면 국가지원으로 하는 일종의 공공 훈련과정이었다. 거기다 배우는 동안 일정 금액도 나온다고 하니, 이 기회는 내게 있어 필수로 여겨졌다. 그래서 신청을 했고, 도전 한 스푼에 설레는 마음 한 스푼이 더해져 기다리게 되었다.

​​마침내 그날. 아침 9시부터 하는 교육, 나는 고용센터 3층으로 올라갔고, 교실로 들어섰다. 그리고 교실 안 책상과 의자, 그중에 창문 가, 눈길이 닿는 곳에 앉게 되었다. 연령별은 다양했고, 다들 긴장한 듯이 꽤 어깨에 힘이 들어간 모습으로 교실로 들어왔다. 해야 하는 의무로 생각해 겸연쩍은 모습도 보이고. 또 몇몇은 의욕에 차 있기도 했으며, 다들 고심한 흔적과 함께 서먹하게 사방을 둘러보았다.

그럴 때쯤, 일정시간이 되자, 화사한 원피스에 상냥이 몸에 밴 선생님이 교실로 들어오고. 선생님은 자기소개를 간단히 하고, 쏜살같이 출석을 부른 후 쉼표 없이 바로 교육을 시작했다. 그런데 그 상냥한 미소를 가진 선생님이 맨 먼저 옆 사람과 통성명을 하라고 지침 하는 것이다. 거기다 서로 마주 보고, 자신의 장단점까지 상대방에게 어필하라고 했다. 그러면 그걸 발판으로 발표하게끔 하는 것이라고. 사실, 십여 분 전 다들 처음 본 사람에게 다짜고짜 인사하고, 자신의 장단점을 말한다는 것이 여간 쑥스러운 것이 아니다. 사람들은 당혹감에 기분이 눅눅해지고, 잠시 눈은 평행선이 되어 상황만 보고 있었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교육과정이니 무리를 해서라도 절차대로 해야만 했다.

​​그 교육이라는 것이 길들지 않은 자신의 내면 자아를 깨부수는 작업, 그런 설정의 프로그램이었던 것이다.


나는 초면에 옆 상대에게 나 자신을 파악하고, 말을 전하려니 얼굴이 화끈거렸다. 그건 상대도 마찬가지인지 입술에 침을 바르고 있었다. 하지만 주위로 새어 나오는 대화소리, 그건 재촉하는 효과음이 되었고, 우린 서로 대화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대화 끝에 둘 다 공통점이 있단 것을 알았다. 조용한 편이고 나이의 벽이 있어 사회 적응에 불안감이 있었던 것. 그래서 발표를 할 때도 그것이 단점이라는 생각에 더 부각하듯 말했다. 근데 선생님께서 이런 생각을 반전시키듯. 절대 문제점을 안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설명을 이어갔다.

​"직장이 섬세한 일이라 차분한 분을 선호하는 곳에 가면 내성적인 면모가 인정받을 순 있겠죠. 좀 영업적인 일이면 활발한 분이 인정받을 순 있고요. 그러나 그건 단지 직장마다 때와 장소에 맞게 필요한 스타일이 다른 것일 뿐. 성격이 내성적이라고 사회 적응이 어렵고, 취업에 단점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건 나이도 마찬가지겠죠." 그러면서 직업적 마인드에 위축될 단점은 아니라고 선을 그어 주셨다.

​"그래서 자신과 맞는 일을 찾고, 선택하시면 되는 것이지요. 그 이유로 자존감을 낮추실 이유는 없어요. 항상 이유 불문하고 타인과 비교하고, 스스로 주눅 드는 사고관이 나아가게 못하는 것이죠." 하고 설명을 덧붙이셨다. 그 설명에 새 직장에 대한 두려운 감이 있었던 색안경이 치워져, 조금은 앞길을 터 주는 느낌이 들었다.


​​말씀에 취지는 모두 연령 불문하고, 적재적소에 잘 배치되면 필요한 멋진 인재라는 것.


사람들은 그 말을 이해하고, 점차 도전에 호기로운 심정이 되었다. 그래서 해를 보는 해바라기 모양, 조금씩 사람들의 얼굴이 해맑게 피어오르기 시작할 때, 선생님은 또 자신이 그리고 싶은 것을 그림으로 표현해 보라고 했다. 그 말이 떨어지자 사람들은 잠시 동요된 자세로 있었지만, 어떤 사람은 강을 그리기도 했고, 산을 그리기도 했다. 근데 대부분은 가족을 그리는 사람들이었다. 나 또한 그러했으니. 집을 그리고 고양이를 그리고, 나를 지켜주고 바라봐 주는 가족들을 도화지에 채워나갔다. 그 가족이란 명제는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날 한발 자욱 진보하게 하는 것이므로. 그림을 그린 후에는 그 그림과 함께 저마다의 사연을 발표시켰다. ​


​기억에 많이 남는 몇 분을 얘기하자면, 우선 장난기가 섞여있던 외모의 이십 대 청년. 청년은 어릴 적부터 유도를 했었다고 한다. 그런데 유도밖에 모르는 유도 유망주였는데, 친구하고 싸워 스무 살이 되기 전 크게 부상을 당했더란다. 그때를 생각하면 객기였고, 그래서 생명 같았던 유도를 그만두었다고 하며. 그 일로 다소 움츠러 있었지만 다시 자신을 일으켜 직업을 구하려 한다고 했다. 그리고 아주 야무지게 보이는 50대 여자분은 남편이 중증질환에 십 년을 누워있다가 돌아가셨다고 했다. 그런데 문득 지나간 운명을 탓하며 처연하게 산 시간들이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그래서 '이래 주저앉으면 안 되겠다'라고 정신을 차리고, 이곳에 이르렀다고 했다. 그래서 남편 돌보던 경험으로 요양사 자격증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자신은 전문가나 다름없다고 하며. 아픈 사연을 쉽사리 꺼내놓으며 쾌활하게 웃으시니, 마냥 소녀의 순수한 미소와 닮아 있었다. 또 "협" 하고 말문을 트신 40대 남자분은 뺑소니 교통사고로 다치셔서 다리를 절고 계셨는데, 힘을 내서 지게차 자격증을 국비로 배우기 위해 오셨다고 하셨다. 그 이유는 사랑하는 아내가 가세가 기운 가정의 몫을 감당하기 위해 식당 다니는 게 안쓰러워, 자신도 노력하고자 오셨다고 했다. 아내에게는 자격증을 딴 뒤 취업하고, 비장의 깜짝 선물을 할 계획이라는 말씀도 덧붙였다. 그리고 수수하게 차려입은 이십 대 후반 여자분은 몹쓸 병으로 귀가 잘 안 들리는 난청이 되었다고 했다. 그래서 그 장애로 평생 사랑을 해보지 못할 거라는 생각마저 들었다고 했는데. 그런데 자신을 너무너무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결혼을 했다고. 그런데 그 사람이 컴퓨터 관련 일은 귀가 조금 부족해도 되고, 소질이 있다고 이끌어주어 이렇게 왔다고 했다. 아마도 웹디자인을 배우게 될 것 같다고 자신을 소개하는 그녀. 사랑하는 사람을 얘기할 때는 말을 살짝 더듬으면서도 수줍음이 가득해 정말 얼굴에 사랑빛이 묻어났다.


​​드디어 나도 차례가 되어 발표하는 시간이 되었다. 적잖은 사람들 앞이라 부끄러워서 셔츠 밑단을 꼭 잡고 의지하듯 얘기를 했다.


​​"제가 우울증이 있는데, 갱년기가 되니 심해졌어요. 근데 고등학생인 둘째 딸이 제 걱정을 많이 해가지고…… 딸이 복지관 가족 상담을 제 앞으로 신청했어요. 그래서 제가 집 안에만 있다가 밖으로 나가게 되는 계기가 되었죠. 한날은 상담을 하러 가는 길인데 햇볕이 뿜어내는 따스함이 너무 좋은 거예요. 그래서 시간이 되면 그 길을 걸어 상담을 꼬박 받으러 가고, 도움을 많이 받게 되었어요. 그러니 딸이 무엇보다 고맙고… 뭔가 일을 하며 밝게 살아가야 딸이 걱정을 않지, 하는 생각도 들고. 지금도 불안감이 있지만, 뭐든지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자 사연을 듣고 있던 강의실 사람들이 나를 주목하고 잠잠해졌다. 나는 내 얘기가 민망했다, 생각해선지 쭈뼛거리고 그 시간이 길게만 느껴졌다. 그 순간, 누군가 "오, 딸이 기특해요!" 하며 있는 힘껏 응원의 박수를 쳐 주었는데, 그다음 연달아 나오는 박수가 온 교실 안을 가득 메우는 것이다. 사람들은 저마다 부대낌이 있는 일과 속에서도 나의 사연을 자신의 일처럼 여기는. 그 따뜻한 마음이 사무치게 느껴져 나는 감사의 고개가 땅에 닿을 듯 숙여졌다.


​​인생은 매번 파노라마처럼 엮어져 파도처럼 일렁이고, 그 공평성과 형평성을 논할 수 없지만, 우회로 가더라도 그걸 압도하는 용기의 씨앗을 그들은 품고 있었다. 그래서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사람들의 사유의 모습, 나는 그 자체로 다 만족하는 날들이었다. 사람들의 숙성된 삶은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한 편의 세레나데라는 것을. 그래서 동질감에 행복했고, 그들의 길을 무척이나 응원하고 싶은 마음이 우울 꽃을 접게 하고, 희망 꽃으로 피워내 만개했다.


​​그래서 교육의 마지막 날이 되던 날, 다 함께 수료증을 받으며 명쾌한 얼굴로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우리의 인생은 넘어지더라도 얼마든지 히든카드가 있다는 걸 상기하며, 각자 의욕으로 뭉쳐 힘차게 교실을 나서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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