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열 1위의 위엄, 캐리와 빠삐용 해리
서열 1위인 캐리는 그 위엄도 남달랐다. 몽수구리와 해리는 참치 캔을 까서 그릇에 담기가 무섭게 다가와 좋아했는데, 캐리는 부동의 자세로 자기 앞에 갖다 놓아야 먹으려 움직였다. 그 거리는 캐리가 정한 것이고, 나는 그 정한 위치에 참치 담은 그릇을 갖다 바쳐야 하는. 캐리 앞에서는 조금 더 저자세를 유지하는 것이다. 그건 매번 하는 훈련 같기도 해서 의문의 긴장감마저 흘렀다. 그리고 자기가 눈여겨본 방석에 앉고 싶을 땐 그 누구도 앉는 것을 썩 용납하지 않았다. 그건 암묵적 룰과 같은 것으로 해리와 몽수구리는 캐리가 오면 협력을 약속한 듯, 비켜서는 모습을 했다. 닫힌 방문도 자기 손으로 들어가고자 어필을 확실히 했는데, 기가 막힌 것은 캐리가 변기에 대소변을 볼 때도 있단 것이다. 그럴 땐 "캐리 봐봐!" 하며 목격한 사람이 묘기를 봤다는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거기다 캐리가 쓰담쓰담을 받고 싶은 사람을 지목. 바라보고 있으면, 우린 귀찮다는 구실로 쓰담쓰담해 주는 것을 피해 갈 수 없었다. 자칫 불편한 기색이 캐리의 레이더망에 걸리면, 버티기에 돌입. 딴 일을 도모하기엔 압박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마치 고양이의 탈을 쓴 인간인 것만 같았다. 그만큼 캐리는 명석하고 기선제압이 팽팽했다. 그런 일인자를 눈치챈, 해리와 몽수구리는 캐리의 신경이 곤두설라치면 재빠르게 그 위치를 변경하고 벗어났다. 그러니 싸울 일도 많이 없었고, 싸울 일이 있다 해도, 캐리의 '위와 왕' 파워 내리찍기 공격은 해리와 몽수구리를 숨죽이게 했다. 나는 고양이의 서열을 보면 사회의 한 단면을 보는 듯했고, 그 상하가 아닌 수평을 유지하면서 질서를 잡는 게 신선하기만 했다. 한편으로 서열 1위가 결정되니 점점 세 마리의 고양이 수가 많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가족들도 고양이를 키우는 것에 마치 원래 그랬다는 듯이 익숙해지고. 하나, 둘씩 고양이의 묘한 매력과 귀염 뽀짝에 넘어가게 된 것이다. 그것은 시크하면서도 새침한 그리고 치명적인 필살기, 몸을 뒤집어 속살을 보여주는 자신들만의 허가였다.
해리는 두 번째 서열을 담당하고 있었다. 두 번째 세 번째 세력이 크게 차이 나는 것은 아니지만. 해리는 이인자 서열 확정 전, 몽수구리가 시야에 들어오면 목표물로 인식. 다리걸기를 마구잡이로 하고, 꿀밤을 잘도 때리고 도망갔다. 그럴 때마다 몽수구리가 잘 쫓아가지 못하고, '흠냥 으르렁'만 대더니 가급적 해리에게 거리를 두기 시작한 것이다. 또 해리가 심심해서 서성대다 뭐라 말 걸라치면, 대꾸하기가 번거로운지 멀찍 감치 떨어져 딴청을 했다. 그 딴청은 평화를 앞당기는 결과가 되고, 사실 몽수구리는 알고 보니 세상 까탈스럽지 않은 평화주의냥이였던 것이다.
그렇게 2위 자리를 힘든 것도 없이 얼떨결에 차지한 남자 코숏 치즈 냥이 해리. 해리는 바깥공기를 너무 좋아했다. 창문을 열어놓으면 그 틈새로 들어오는 공기에 코를 맞대었다. 그리고 새로운 냄새를 음미하듯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그래서 자신의 공간 밖에 대한 호기심은 커져만 갔고, 현관문을 열 때마다 목을 쭉 빼고 밖을 바라봤다. 우리는 외부를 동경하는 해리가 거리로 나가 위험해질까, 노심초사하며 현관 앞을 수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리는 햇살이라도 비추면 나가고 싶다,는 의사를 계속 타진했다. 그건 '밖에 뭐가 있는지, 꼭 한 번은 나가고 말겠다!'는 일방적 의지로. 타협점이 없는 고집, 그 자체였던 것이다. 그럴 땐 안타깝기도 했지만 집사공부차 수의사 분들의 의견을 보면, 영역 동물이기에 그 호기심을 채워주지 말라는 당부였다. 그래서 또 조심하고 조심했더랬다. 하지만 잠깐의 틈새를 노리고 은밀하게 움직였던 빠삐용 해리. 해리는 우리의 안전 시스템을 깨고, 결국 그 갈망을 해소하려 탈출을 감행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