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 만에 만난 시간부자
나는 2010년 대학을 졸업하였다.
그 해는 특별한 기억이 있는 해이다.
첫 번째 특별한 기억은
대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사회의 일원으로 대기업에 취업성공을 하였다. 당시 사업이 망하고, 고시원에서 쪽방생활하며 버스운전 연수로 제2의 직업을 준비하고 계시던 아버지께 전화했다. 수화기 너머 아버지의 눈물이 기억난다.
두 번째 특별한 기억은
꽤 친했던 여고 동창 ‘밀’이라는 별명의 친구가 있었다. 그녀는 불현듯 대학을 졸업하고 (컴공을 전공함) 그림 작가가 되겠다며 영국 그림작가 커리큘럼을 가기 위해 영어와 돈을 벌러 호주로 훌쩍 떠나버린 기억이다.
시간이 흘러 2018년 7월,
8년의 시간 동안 나는 수습사원 - 사원 - 대리 조기진급 - 어느덧 과장이 되었다. 23살에 칼졸업 칼입사한 케이스라, 밝고 젊은 에너지로 사무실의 햇살 같은 존재로 자리 잡았다. 고과 철마다 눈치를 보며 성과 욕심도 있었던 직원으로 젊은 여자애가 어느덧 중간 관리자가 되어버렸다.
그새에 ‘밀’이라는 친구의 소식은 간접적으로 들려왔다. 불현듯 카톡에서도 사라진 그녀는 SNS를 잘하진 않았다. 그러나 가끔 트위터를 통해 소식을 전달받았고, 호주에서 히피족들과 함께 스테이를 하면서 낮엔 사과농장에서 일하며 돈을 벌고 있었다. 1년이 지난 쯔음에는 소규모의 그림 전시도 열었던 그녀의 소식을 접할 수 있었다.
여고 시절, 몽상가였던 나와 감성의 결이 맞았던 그녀의 소식이 점점 궁금하긴 했으나, 직접적으로 컨택해보진 않았었다.
그런데 8년 만에 그녀에게 ‘카톡’이라는 직접적 연락이 왔다. 불현듯 한국에 돌아왔다는 ‘밀’.
그녀는 소문과는 달리 히피족과 생활하는 것이 아니었으며, 어느 노부부의 농장에서 먹고 자고 일을 하고 있었다. 그곳에서 농장을 가꾸는 일을 대신해 주고, 거기서 일군 수확물들을 통해 돈을 벌고 생활하는 귀농인이 되어 있었다.
한국에 들어온 이유는, 가족들에게 호주에서 만난 남자친구를 소개해주기 위해서였다.
고마웠다.
나를 잊지 않고 연락해 준 그녀에게.
그래서 나는 기꺼이 고향으로 내려가 그녀와 그녀의 남자친구를 만날 시간을 냈다.
여고시절. 같은 교복을 입고, 유사한 몽상가적 기질을 나누며 밤하늘에 별도 보러 다니던 중소도시의 지방 소녀들. 비슷하게 자랐지만 지금은 많이 다른 생활을 하고 있다.
성인이 되어서는 처음 보는 나의 친구 ‘밀’
고향의 오래된 카페에서 만난 그녀는 학창 시절보다 검게 그을린 피부에 군살이 하나도 없는 몸매. 피부와는 상반되는 하얀 이와 여전히 투명할 정도로 맑은 미소를 띠며 나타났다.
그녀를 만나 물었다.
“한국에 잠깐이라도 들어온 이유가 뭐야?”
그녀는 답했다.
“여기 머물고 싶지 않았는데, 부모님을 뵈어야 할 것 같아서 들어왔어. 남자친구 카릴로를 소개해주려고. “
이 짧은 마디에 많은 뜻이 담겨 있어 보였다.
보수적인 부모님께 호주를 간다는 것부터 순탄치 않았던 것을 알고 있었다. 외국인 남자 친구를 인정받고 싶어서였나? 단순히 생각하며 내가 답했다.
“멋진 일이네! 부모님이 반겨하겠다”
친구가 말했다.
“동거는 할 건데, 비혼으로 살고 싶어. 결혼이란 제도에 들어가고 싶지 않아. 파트너로서 부모님께 인정받고 싶어서 왔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