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롱비건
내 친구 ‘밀’은 딸이 남들처럼 살기를 바랐을 부모님께, 홀로 호주에 돈을 벌러 간 것도 모자라 한국에 오랜만에 와서 비혼으로 살지만 동거를 하겠다는 호주 연하남을 데리고 왔다.
호주를 떠날 때에도 부모님의 반대를 무릅쓰고 도피하듯 도망갔다. 그때당시만 해도 그림작가라는 직업이 생소했고, 더더군다나 우리 부모세대는 다 큰 딸 혼자 외국에 보내는 것이 두려우셨을 것이다.
그래서 아쉽게도 부모의 진심 어린 응원과 이해를 받지 못한 채 떠나버렸지만, 이십 대 후반이 되어서야 지금 본인 자체의 삶을 이해받고 싶어서 한국으로 돌아왔다.
든든한 지원군 카릴로와 함께.
물론 친구 부모님께는 풀어야 할 두 번째 실타래가 바로 카릴로였을 것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내 시선도 그러했다.
궁금했다.
“밀과 카릴로의 목표? 꿈이 뭐야?”
(내가 한국에서 듣기 제일 싫어하는 말을 이들에게 했다)
밀은 주저 없이 대답했다.
“지금 노동의 대가로 먹을 것도 얻고 있지만, 농장을 운영하는 법도 배우고 있어. 나중에 우리의 농장을 운영하는 게 꿈이야. 우리가 먹고 사는 데에 필요한 것들을 수확해서 살 수 있잖아.
세상에 어떤 것들에 묶이고, 시간을 잡히기보다는
수확하고
심고
수확한 걸 토대로 또 돈도 만들고
나의 음식도 만들면서 살고 싶어.
자세히 말하면, 노부부의 농장에서 숙식을 하면서 노동을 대가로 받고 있고, 수확한 것의 일부도 받고 있어.
농장을 잘 운영하는 것도 배우고 있고,
호주의 식자재들로 만든 음식들이 엄청나게 맛있는데,
호주에서 맛 보여주고 싶다. 꼭 놀러 와 :)“
그녀의 약간 서툴어진 한국어로 거침없이 표현해 내는 설명이 빨간 머리 앤을 상상케 했다.
이국의 농장에서 기른 신선한 식재료, 그리고 내추럴 와인이 떠올랐다.
거침없이 자신들의 인생관을 펼치고, 그것을 헤쳐나 기고 있는 이 커플들이 멋졌다.
취재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때, 카페 사장님이 서비스로 초콜릿을 주셨다.
감사하단 인사를 마치고 사장님이 돌아가셨을 때, 밀과 카릴로는 내 앞으로 디저트를 밀어주었다.
이들은 농장에서 수확한 것 만으로 먹고살고 있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 것이기 때문에 동물복지를 생각하여 비건생활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초콜릿과 우유도 먹지 않고 있어”
속으로 생각했다.
‘이들은 정말 농장의 노부부가 될 준비까지 다 마친 거구나’
이들과의 짧은 재회는 나에게 신선한 충격을 가져다주었다.
이들을 보며, 나를 되돌아봤다.
8년간 사회에 나와 내가 일을 하고 먹고 자는 이 공간이, 진심으로 내가 원하는 것 인가?
나의 식습관을 컨트롤할 정도로 강하게 하고 싶은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