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 가수 자이언티의 <꺼내 먹어요>라는 노래가 입소문을 타고 꽤 사랑받았던 적이 있습니다.
쉬고 싶죠, 시끄럽죠? 다 성가시죠? 집에 가고 싶죠? (집에 있는데도) 집에 가고 싶을 거야
그럴 땐 이 노래를 초콜릿처럼 꺼내 먹어요
아무렇지 않은 척 살아가지만 실은 많이 힘들고 지친 현대인들의 속마음을 예리하게 표현해낸 가사가 많은 이들의 공감을 받았죠. 특히 누군가 곁에서 말을 건네듯 툭툭 내뱉는 그의 창법과 후렴구의 ‘그럴 땐 이 노래를 꺼내 먹어요-’하는 구절이 참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우리 모두는 힘들 때 꺼내 먹는 자신만의 ‘무언가’를 가지고 살아갑니다. 그것이 어떤 이에겐 시나 문학일 수도, 어떤 이에겐 근사한 음식이나 술일 수도, 또 다른 어떤 이에겐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한 추억일 수도 있겠지요.
저에겐 ‘그림’이 바로 그런 존재였습니다. 힘들 때 남몰래 꺼내 먹곤 하는 마음의 비밀 식량, 믿음직한 삶의 무기.
그래서 누구나 마음속에 '언제든 꺼내 먹을 수 있는 그림 한 점'을 가지고 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그 시작은, 어릴 적 아버지께서 사다 주신 명화집 두 권이었습니다.
칼 라르손, 창틀의 꽃
작은 고사리손으로 펼쳐본 그림 속 세상들을 만난 이후로, 쭉 그림과 첫사랑에 빠진 채 살고 있습니다.
반 고흐, 샤갈, 클림트.. 외우기도 힘든 이름들이었지만 그들이 붓끝으로 만들어낸 낭만적인 세상을 바라보는 게 그저 좋았기에, 설레고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책 표지가 헤질 때까지 읽고 또 읽곤 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렇게 가만-히 들여다보노라면 그림이 무언가 말을 건네는 것만 같았거든요.
넌 나에게서 무엇이 보이니? 어떤 게 느껴지니? 네가 찾은 이야기들을 풀어볼래?
그 속삭임을 따라가다 보면 그 끝에는 항상 '나 자신'이 있었습니다. 그림은, 저 자신을 반추하고 삶을 돌아보게 하는 거울이었습니다. 그림에서 삶을, 삶에서 그림을 발견하고 스스로를 찾아가는 과정이었달까요.
팀 아이텔, Blue Bag, 2017
그렇게, 그림을 통해 일상을 한 편의 예술처럼 살아갈 수 있는 특별한 경험들을 많이 누렸습니다. 이 즐거움과 담담한 위로를 나누고 싶었습니다. 무심코 지나쳐온 그림에서 자기 자신을 찾고 싶은 우리들, 그림은 공부해야만 하는 것이고 내 삶과는 큰 상관이 없는 것이라 여기는 어른들을 위한 쉽고 맛있는 명화 에세이를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시작하여 제 마음속 말들을 모아보니 몇 편의 글이 되었습니다. 이제, 그 이야기들을 하나씩 하나씩 펼쳐보려 합니다.
여기서는 딱딱하고 어렵기만 한 미술 이론이나 사조만을 중심으로 다루지는 않습니다. 일상 예술가의 시선으로 예술과 삶을 담담히 풀어내고 위로하기 위한 글이기 때문입니다. 삶의 어느 한순간에 포착된 생각이나 장면에 '그림'과 '인문학'을 곁들여,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쉽고 맛있게 써 내려갔습니다. 누구나 꼭꼭 잘 씹어 삼킬 수 있도록 그림과 화가에 대해 가능한 쉬우면서도 나름대로 깊이 있게 소개했으니, 소화하기에 거북스럽진 않을 겁니다.
진솔하고 진심이 담긴 글과 그림은 결국 삶의 무기가 된다고 믿고 있습니다. 글 한 잔, 그림 한 점의 위로를 통해, 당신의 남은 오늘이 아름답고 단단한 한 편의 예술이 된다면 참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