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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늬밤 May 25. 2020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할 수 있나요?

생팔과 리조(Lizzo), 자존감을 외치는 아티스트들

언니, 이 영상 봤어?


  그날도 잠들기 전 밀린 톡을 확인하며 하루를 마무리하고 있었다. 졸린 눈을 비비며 이불속에서 꼼지락 꼼지락 폰을 만지는 즐거움! 그 순간 메세지 하나가 날라왔다. 


  -언니, 이 영상 봤어?


  친한 동생이 보내준 그 영상은 외국의 한 가수의 뮤직비디오였다. 가수도, 노래도 정말 처음 들어보는 생소한 것이었기에 별 기대 없이 영상을 확인했다. 하지만 이내, 이 가수의 출구 없는 매력에 푹- 빠져버리고 말았다. 그날 밤 이후로도 며칠 밤낮 내내 제 귀에 울려 퍼지던 이 노래의 주인공은 바로 리조(Lizzo). 빌보드 1위 역주행의 아이콘, 초특급 대형 신인 가수였다.



  신나고 경쾌한 멜로디의 노래와 입에 착착 달라붙는 유쾌하고 통통 튀는 노랫말, 그리고 요즘의 레트로 열풍과도 꼭 맞아떨어지는 복고풍의 힙한 뮤직비디오. 이 삼박자가 잘 갖추어진 데다 그녀의 폭발적인 가창력과 파워풀한 춤 실력까지 합세한 덕에 그녀는 지금 초특급 대형 신인으로 꽤나 유명해진 가수다. 특히나 그녀의 곡들은 자신의 경험담을 솔직하게 녹여내어 진솔하게 사람들에게 다가간다는 점, 삶에 지친 현대인들에게 으쌰 으쌰 힘내라는 긍정적인 메시지를 전해주고 있다는 점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었다.


  그런데 그녀의 흥겨운 노랫말과 신바람 나는 춤사위를 감상하고 있자니 자꾸만 연상되는 한 미술작품이 있었다. 바로 프랑스 예술가 니키 드 생팔의 대표작 <춤추는 나나 시리즈>음.. 닮았다고 하기엔 다소 일차원적인 생각이려나?


(좌) 리조 그리고 (우) 생팔의 '춤추는 나나 시리즈'

  조금만 솔직해지자면, 위의 '리조'와 '춤추는 나나'에 대한 여러분의 첫인상은 비슷한 면이 꽤 있다. 개성 있다, 활기차다, 매력적이다.. 그리고 조금 통통 아니 뚱뚱하다..? 사실 나나 시리즈와 가수 리조는 '플러스 사이즈'라는 점이 눈에 띈다. 분명 이들의 겉모습에는 비슷한 점이 있다. 그러나 그게 전부는 아니다. 그들에게는 '자존감'이라는 분명한 공통분모가 존재한다.


  자존감. 자기 자신을 존중하고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의 힘. 누구나 한 번쯤 고민해봤을 법한 그 자존감의 문제에 대해, 리조와 나나가 우리에게 건네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자존감을 노래하는 가수 '리조', 자존감을 찾아 나선 아티스트, 생팔


출처 Lizzo <Soulmate> 공연 영상 중 일부

  사실 리조는 처음부터 그렇게 주목받던 가수가 아니었다. 그녀만의 소울 넘치는 음색과 파워풀한 가창력, 눈과 귀가 즐거운 퍼포먼스로 점점 유명세를 타기 시작하더니, 그녀의 곡 중 하나가 빌보드 차트에서 역주행 1위를 하면서 지금의 인지도를 얻게 된 것이다. 하지만 리조를 대표하는 것은 이런 것들이 아니다. 그녀를 라이징 슈퍼스타로 만들어준 것은 바로 '난 나를 사랑해, 너도 너 자신을 사랑해봐!'라는 철학이 담긴 독창적인 음악 세계와 자신감 넘치는 그녀의 태도였다.


  아직도 인종차별이 은근히 남아있는 미국 사회에서, 리조가 자신을 사랑하기는 결코 쉽지 않았을 것이다. 까만 피부, 플러스 사이즈의 체형으로 아마도 짓궂은 놀림을 받기도 했을 테고. 하지만 그녀는 '시대의 미적 기준에 맞추어 나를 평가하기보다는,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한다'라고 말한다. 그러고는 자신과 비슷한 몸매를 가진 백댄서들과 함께 몸을 흔들며 이렇게 외친다. "거울을 쳐다보며 말해, 내가 최고야!" 이를 보는 사람들은 열광하며 이와 같이 화답한다. "맞아! 네가 최고야. 그리고 나도 최고지!" 리조는 대부분의 곡에서 자신을 향한 뜨거운 사랑, 자신감, 격려의 메시지를 담으며 자존감을 노래하고 있다.



니키 드 생팔(1930-2002)

  이와 달리 나나 시리즈의 주인공 니키 드 생팔(Niki de Saint-Phalle)은 '자존감을 찾아 나선 아티스트'라고 할 수 있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기 위해 처절하게 몸부림친 그 결과가 곧 그녀의 작품이 된 것이랄까. 생팔의 삶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자신과 세상에 대한 증오, 분노를 예술로 승화시키는 과정에서 스스로를 사랑하고 받아들이는 법을 배운 것 같다는 느낌을 받는다. 대체 어떠한 삶을 살아왔길래 그토록 자신의 삶을 미워할 수밖에 없었던 것일까.


  그녀의 개성 넘치는 조형작품만 알다가 그녀의 실제 모습을 보고선 깜짝 놀라는 사람들이 많다. 생팔은 전형적인 미인상이다. 작은 얼굴에 오목조목한 이목구비와 서양인들이 선호하는 선명한 금발, 우월한 키와 몸매. 그 덕분에 한때 모델로 활동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녀는 어린 시절 대공황으로 인해 부모와 강제로 이별하는 아픔을 겪는 한편, 아버지에게 성폭행을 당하는 끔찍한 일을 겪으며 우울증으로 정신병원에 입원을 하는 등 크나큰 고통의 시기를 지났던 인물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그녀가 선택한 것은 바로 미술심리 치료. 스스로 갇혀 있던 담을 깨부수고 자기 내면의 상처를 마주하는 그런 작업의 결과물이 바로 생팔의 주요 작품들이 된 것이다. 치료의 일환으로 나온 그녀의 초기작은 사격 회화 즉 '슈팅 페인팅'이다.


생팔의 초기작인 슈팅 페인팅(Shooting Painting)

  그녀가 총을 들고 어딘가를 겨눈다. 총끝이 향하는 곳은 과녁판. 과녁판엔 흰색 와이셔츠를 함께 두어 남자의 형상을 표현하기도 하고, 자신을 힘들게 했던 모든 존재들을 과녁판 위에 덕지덕지 이어 붙이기도 한다. 그리고 그녀는 그 위로 거침없이 총을 쏜다. 총알 대신 물감 총탄이 과녁판에 박힌다. 여러 색의 물감으로 뒤덮인 조형물 위로 흐르는 물감은 마치 처럼 보인다. 그래서일까? 이 시기의 작품들을 볼 때마다 그녀의 영혼의 상처를 들여다보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누군가는 '이게 무슨 예술이냐'라고 할 수도 있겠으나, 단순히 아름답고 평화로운 것만이 예술이 되는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때론 우리 마음속에 있던 작은 생채기를 드러냈다가 다시 보듬어가는 그 과정 자체가 예술이 되기도 하니까. 그녀의 경우처럼 말이다. 그렇게 상처 받은 그녀의 영혼은 자신만의 작품세계를 발견해가며 그리고 새롭게 찾아온 두 번째 사랑을 받아들이며 조금씩 치유되어 간다. 그녀의 두 번째 남편인 장 팅겔리는 키네틱 아트로 이름을 날리던 스위스의 현대미술 조각가였다. 팅겔리와의 안정적인 결혼 생활을 통해 생팔은 조금씩 내면의 평안함을 되찾아가고 그와의 협업으로 그 유명한 스트라빈스키 분수를 제작하기도 했다.


두 번째 남편 장 팅겔리와 함께 있는 생팔  /  물구나무 선 검은 나나
샘의 나나  

  그리고 그녀의 작품 세계는 '나나 시리즈'로 정점을 찍는다. 풍만하다 못해 터질 것 같은 풍선이 떠오르는 이 조각상들은 임신한 여성의 몸에서 착안하여 만들어졌다. 구름 위를 기분 좋게 두둥실 뛰어다니는 듯한 활기차고 생동감 넘치는 동세와 역동적인 색감은 마치 앞선 리조(Lizzo)의 노래처럼 흥겹기까지 하다. 하지만 그러한 이면에사회가 만들어낸 보편적인 여성상, 미의 기준과 타협하지 않겠다는 생팔의 도전적이고 진취적인 메시지가 한껏 담겨 있다. 그녀는 어린 시절, 사회적 관습과 남성 위주의 통념에 의해 거세당했던 자신의 자존감을 작품 속 '나나'들을 통해 마음껏 펼친다.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사랑할 수 있나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어른으로서,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 쉬운 편인가? 아마 그럴 때도 있고 아닐 때도 있을 것이다. '난 날 사랑하지 않아'라고 답하는 마음들이 더 많을 지도 모르겠다. 우리 모두는 분명, 어머니의 뱃속에서부터 환호와 관심과 사랑을 듬뿍 받으며 세상에 태어난다. 어릴 적에는 누구나 자신이 세상의 주인공이라 생각하며 살아간다. 그런데 왜 다 커버린 지금, 우리는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 마치 평생의 숙제라도 되는 양 그리 어렵게만 느끼는 것일까.



  생팔도 리조도, 분명 삶의 어느 시기에서는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 힘겨웠을 것이다. 어쩌면 이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이들이 그럴 테지만. 하지만 그 속에서도 리조의 노래 가사처럼 '나도 내가 귀여운 거 알아!'라고 외치며 '내가 빛나야 너도 빛나지' 하는 마인드를 가져보는 건 어떨까. 그리 어렵지 않다. 리조의 노래 가사처럼, 그저 '머리를 힘차게 뒤로 넘기며/ 네일을 확인하고(I do my hair toss/ check my nails)', '어깨 위의 먼지를 털어버리고선/ 새로운 걸 시도해(Go on and dust your shoulders off/ tryna get some new shit)'보는 거다.


  자기 자신을 존중하기 위해 자존감을 노래하고 추구하던 두 명의 아티스트, 생팔과 리조. 그녀들의 작품과 노래를 통해 자존감에 대한 힌트를 얻는다. 나는 지금 나 자신을 사랑할 준비가 되었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봐야겠다. 너 자신은 충분히 사랑받아 마땅하다고, 지금도 충분히 빛나고 있다고 스스로에게 말해주어야겠다스스로를 먼저 사랑하지 않으면 이 세상 그 누구우리 자신을 사랑할 수 없을 테니까.


니키 드 생팔, 애정만세, 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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