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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순자 Oct 06. 2023

하나도 버릴 것 없는 것들

최순자(2023). 하나도 버릴 것 없는 것들. 공명재학당. 2023. 10. 6.


텃밭에서 고구마를 심고 있다. 텃밭은 이전의 도농 도시로 이사하고부터이니 15년 정도이다. 매년 5월 초에 고구마순을 사다 심는다. 고구마는 햇볕과 바람과 비를 맞으며 자란다. 요즘은 농법의 혁명이라 하는 비닐 씌우기를 하다 보니, 처음 심었을 때 몇 차례 물 주는 것 말고는 크게 신경 쓸 일 없이 잘 자라준다. 고구마는 천둥, 번개도 맞으며 나름 애쓰겠지만.


심은 지 5개월이 10월 된 4일에 고구마를 캤다. 3미터 정도 길이 여섯 도랑이다. 자연이 잘 키워 준 고구마는 풍성하다. 추석 전에 줄기와 뿌리 몇 개는 벌써 가지, 호박, 부추, 파 등과 함께 엄마네, 작은집, 오빠네, 사촌 언니네로 갔다. 우리집에서도 고구마를 캐기 전에 운동 삼아 맨발로 고구마밭에 앉아, 하루에 서너 시간씩 엿새 동안 줄기를 땄다. 


아래쪽 딱딱한 것은 삶아서 나물용으로 말린다. 중간 줄기는 삶거나, 소금에 간해서 김치를 담는다. 김치도 두 종류로 한다. 하나는 배추김치처럼 양념을, 또 하나는 된장과 식초로 버무린다. 남편은 김치, 나는 무침을 좋아하니 두 가지 다 한다. 무침을 좋아하는 동생에게도 보낼 참이다. 줄기 맨 꼭대기 연한 부분은 뜯어서 청양고추 조금 넣고 된장국을 끓이면 맛이 또 그만이다. 캔 고구마도 지인들 몇 곳으로 시집보낼 참이다. 


자연이 키운 고구마는 이토록 풍성하다. 하나도 버릴 것이 없다. 문득 소가 생각난다. 소도 고기는 비싼 소고기, 뼈는 건강식으로 우려내는 뼈 국물, 가죽은 또 쓰일 여러 용도로 사용된다. 소똥도 귀한 퇴비가 된다. 유기농법의 최고봉이라 일컫는 생명역동농법에서는 증폭제로 활용한다. 이는 생명의 기운과 별 기운이 응축되게 만들어 토양을 비옥하게 하고 작물의 수확량과 품질을 좋게 하는 것으로 이 농법의 핵심이라 한다. 


내 태몽은 들판에서 집으로 뛰어 들어오는 송아지를 엄마가 끌어안은 꿈이다. 그래서 그런지 나도 소처럼 묵묵히 일하며 살아왔고 살아갈 참이다. 그러면서 소처럼 유용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무언중에 한다. 고구마를 캐며 다시 소의 인생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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