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나와 너를 끊임없이 연구하기를

결혼에는 공식이 없다. 연구만 있을 뿐.

by 밝음
결혼


나라는 사람과 너라는 사람이 만나서 함께 사는 것. 그것도 잠깐이 아니라 영원히 함께 사는 것. 결혼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면 쉽게 생각할 일이 아니다. 너무너무 다른 존재들이,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남남끼리, 함께 살붙이고 살아간다는 건 거대한 생애 프로젝트다. 성향이 다르고, 기호가 다르고, 습관이 다르다. 모든 것이 다르다고 할 수 있다. 그토록 다른 영혼이 ‘함께’를 이루고 사는 것은 얼마만큼의 마음을 내어야 가능한 것일까? 그래서 사랑이라고 할 수 있고, 사랑은 기적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을 것 같다.


너무 당연해서 몰랐다. 우리를 들여다보니 서로 수많은 마음을 내어 서로를 위해주며 살아가고 있었다. 서로 위하는 마음이 당연함으로 퇴색되어 버린 경우가 많았다. 잘해주는 것보다 못 해주는 게 먼저 보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꼭꼭 숨어 있는 서로의 사랑을 찾으려고 노력해야 했다.


서로의 눈에 잘 보이지 않는 아주 희미한 빛깔의 사랑들. 그 희미한 색은 노력해서 찾고 들여다보고 들여다보아야 보인다. 자세히 보아야 나를 위한, 서로를 위한, 사랑이 펼쳐져 있는 줄 알게 된다. 열심히 찾아보면 그제야 알게 된다. 많은 순간 사랑을 주고받고 있었음을.


결혼을 통해 가정이라는 작품을 만들어 가는 것은 '누구나 하는 결혼'이라는 평범한 의미를 넘어 우리 스스로 기적을 만들어내고 있는 창조의 삶이다. 성질이 다른 N극과 S극이 함께 등 붙이고 있으면서 온전히 자석의 기능을 해내는 것처럼 이렇게 지극히도 다른 남편과 나는 함께 있어서 많은 것들을 할 수 있었다. 반면에 우리도 모르게 사랑한다는 마음과는 달리 사랑이라 할 수 없는 말과 행동을 할 때도 많다. 알콩달콩 연애 좀 길게 했다고 그 사람을 다 안다고 생각하고 살았다. 하지만 그건 나의 확실한 착각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를 사랑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우리가 보인 사랑은 마음과 행동이 불일치했다.


사랑한다면서 사랑하는 것과 맞지 않는 말과 행동을 상대방에게 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결혼이라는 설렘이 가족이라는 익숙함이 되어가면서 그렇게 된다. 편한 사이가 되어가면서 감정표현도 쉽게 하게 되고, 부탁하기보다 당연한 듯 바랄 때가 많다. 어쩔 땐 나와 똑같은 생각을 하기 바라기도 한다. 가까워진다는 건 나를 다치게 할 수도 있고, 그를 다치게 할 수도 있는 것이다.


우리는 각자 자신의 기준으로만 생각했고, 각자의 관점 속의 사랑하는 사이로 살아가고 있었다. 상대의 마음은 모른 채, 상대가 어떻게 느끼는지도 모른 채 나만의 사랑을 해 나간 것이다. 사랑하는 마음과 행동이 일치되지 않았기에 부부싸움은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상대방을 사랑한다는 마음은 있지만 그 마음이 느껴지도록 행동하지 못했고, 오히려 반대의 마음이 느껴질 행동을 많이 하기도 했다.




아동가족학을 전공했었다. 전공 공부와 현장 업무를 하면서 많은 가족 이론과 인간에 대한 이해, 대화법에 대해 배웠다. 하지만 배움을 삶에 적용하는 건 다른 얘기였다. 결혼과 가정에는 절대 공식이 존재하지 않았다. 구성원이 누구냐에 따라서 가정의 모습은 천차만별이 된다. 그러니 아무리 어떤 방법론을 배운다 한들 내가 나를 알지 못하고 그가 그를 알지 못하고 우리가 서로를 알지 못하면 우리 가정을 잘 이끌어가는 법을 배우기는 불가능하다.


"이런 게 잘 사는 거야."

"이런 게 건강한 가정을 만드는 방법이야."


그 모든 것을 내려두고, 겸손하게 우리를 연구해야 한다. '아무것도 모른다.'라는 백지를 붙들고 거기에 우리가 직접 연구한 항목들을 하나씩 하나씩 채워나가야 한다. 남들처럼 그냥 결혼식 준비만 하고 덜컥 함께 있기를 시작한 우리기에 정작 중요한 결혼에 대한 준비는 철저히 빈칸이었다.

상대방에 대해 알려고 하는 마음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 단정 짓거나 낙인찍지 말고, 왜 그랬을지 생각해 보고 어떨 때 그렇게 행동하는 사람인지 애정을 가지고 들여다보아야 두 사람만의 해답이 보이게 된다. 익숙함이라는 것을 떼어내고 서로를 연구할 수 있어야 한다.

'진짜 이해할 수가 없다.‘


결혼 생활하면서 가장 많이 떠올린 생각이었다. 본디 이해가 불가능한 존재를 이해가 가지 않는 것에 대한 이상한 의문을 품으며 몇십 년을 살아간다는 게 참 우스운 일이다. 내가 아닌 이상 아무도 나를 이해할 수가 없는데 부부가 되는 동시에 서로를 당연히 한마음으로 이해가 되어야 한다는 공식을 끼워 넣고 살았다. 저절로 당연한 듯 이해가 되면 참 좋지만, 이해가 되지 않는 건 각자의 가진 가치와 신념 때문이다. 다른 프로세스를 가졌으면서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답답해하는 건 아이러니한 일이다. 나와 다른 사람은 이해가 되지 않는 게 당연한 일이라고 여기면 된다.


이해가 가지 않으면 이해하려고 하지 않아도 된다. '그렇구나'로 마침표를 찍으면 된다. '당신은 그렇구나.' 그 한마디가 존중이고 사랑이다. '그렇구나.'라고 상대를 그대로 인정하는 마음이 곧 상대를 이해하는 마음이 된다. 그 생각을 이해하지 말고, 그 생각을 가진 그 사람을 이해하는 것이다. 이해해 보려고 노력하는 마음이 사랑인 거지, 이해가 되어야 사랑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나를 이해 못 하는 순간도 많은 걸 생각하면.

나와는 별개의 인격체인 배우자라는 존재를 내가 찰떡같이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은 결혼의 허상이다. 그걸 바라는 건 관계의 악화를 부추길 뿐이다. 이해해 보겠다는 마음을 내고, 마음을 그렇게 먹을 뿐이다. 이해가 되어서 이해하는 것이 아니고 이해해 보려고 했기에, 이해 하기로 결정했기에 이해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그게 부부고, 그게 사랑이다.나와 다른 너지만 그런 너를 있는 그대로 존중하는 것. 나라는 세상에 그런 너를 받아들이는 것.


keyword
이전 11화밤마다 아이스크림 퍼먹는 남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