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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사랑이 스며든 자리에는 전우애가 피어난다.

설렘은 잠깐이지만 사랑은 영원하다.

by 밝음

10년이 지나 눈 떠보니 사랑이 변해 있었다. 서로 사랑하는 마음이 변심(變心)했다는 말이 아니라 사랑의 모습이 변했다는 말이다. 사랑에도 여러 가지 모습이 있다. 결혼을 시작했던 신혼에 가졌던 사랑과 행복도 있지만, 지금은 또 새로운 사랑과 행복의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보통 결혼의 묘미는 신혼이라고 한다. 수많은 영화나 드라마에서 나오는 신혼부부의 알콩달콩한 모습을 보며 그런 게 결혼이라고 정의한다. 우리는 모두 그런 모습을 꿈꾸며 결혼한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수많은 사랑의 모습 중 하나일 뿐이다.


또 신혼이라고 해서 무조건 행복하다는 보장도 없다. 사연에 따라 상황에 따라 그렇지 않은 부부들도 있다. 시기와 상황에 상관없이 삶에는 언제든 이런저런 일들이 일어나니까. 사실 정답도 없다. 신혼이라고 꼭 붙어 알콩달콩 놀이하는 것보다 각자의 생활을 존중하면서 느슨한 교류를 하는 게 행복인 사람도 있을 테니까. 사람마다 살아가는 방식이 다르다. 결혼했으니까 이렇게 살아야 한다. 결혼생활은 이런 모습이어야 한다. 그런 건 없다. 그저 부부가 지향하고 추구한 여러 가지 모습의 결혼이 있을 뿐이다.

누군가는 한 번도 부부싸움을 하지 않은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누군가는 투닥거리고 살지만 깊은 정을 나누며 살아가기도 한다. 과거를 돌이켜보니 우리 부부는 짬짜면처럼 두 가지 모습을 모두 격렬하게 겪은 것 같다. 둘만 있을 땐 너무 즐겁기도 했다가 모정의 역할 앞에서는 스트레스를 받고 엄청나게 싸우기도 했다.


내가 결혼생활을 유독 힘들어했던 이유는 달콤한 결혼생활만을 꿈꿨기 때문이다. 결혼과 동시에 불행이라는 녀석은 더 이상 내 인생에 나타나지 않을 거라고 기대했다. 내 불행과 힘듦을 결혼으로 해결할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했고, 결혼하면 최소한 불행이 불어나지는 않을 거로 생각했다.


영원한 나의 편이 생긴다는 기쁨. 모든 걸 함께 할 수 있는 동반자가 생긴다는 건 혼자 달려가던 외로운 인생에서 함께 걸어가는 안정된 인생으로 전환되는 기분이었다. 누군가에게 가장 소중한 사람, 가장 우선순위가 된다는 건 큰 사랑을 느낄 수 있게 했다. 연애로는 가질 수 없는 근원적인 편안함은 마음에 있던 여러 가지 부정적 감정들을 상쇄시켜 주었다.


결혼하면 함께 눈 뜨고 잠들 때까지 모든 관심이 배우자가 된다. 평범한 식사를 하나 해도 아이들 소꿉놀이처럼 즐겁다. 만드는 기쁨, 차리는 기쁨, 함께 먹는 기쁨. 모든 것이 즐겁다. 청춘 멜로 한편을 찍는 듯한 시간을 즐길 수 있는 '신혼'이라는 시기. 남자주인공의 모든 관심과 사랑을 있는 대로 받을 수 있는 여자주인공이 되는 시기. 긴 연애를 했는데도 신혼은 달콤했다. 자유, 행복, 즐거움, 평안함. 세상에 존재하는 꽤 괜찮은 단어들이 모두 우리의 편이었다. 재정적인 부분에서도 지금보다 그때가 훨씬 가난했는데도 그랬다. 가진 자로서의 행복이 아니라 나아감에 대한 행복감도 컸다. 함께 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무언가를 성취하고, 무조건 성공하기 위해서 애쓰는 게 아니라 더 나은 우리의 미래를 위해 열심히 사는 시간에 열중하다 보니 일하는 것도 스트레스가 아니라 즐거움이었다. 눈뜨면 든든한 남편이 내 옆에 있다는 큰 사실을 확인할 때, 내가 아플 때 나보다 더 아파하며 나를 걱정해 주는 그 사람이 있다는 걸 느낄 때 그게 행복이라는 걸 알았다. 밥은 먹고 일하는지, 회사에서 별일은 없었는지 그렇게 나눌 수 있는 대상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행복했다.




지금까지 언급한 이 사실들이 곰곰이 생각해 보면 신혼 때뿐만 아니라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그때만큼, 그만큼 느끼지 못하고 살고 있을 뿐이다. 그런 것 보면, 분명 세상은 마음의 눈으로 이루어지는 게 분명하다. 나와 그 사람은 예나 지금이나 그대로지만 서로 마음의 눈이 달라졌고 그래서 상대방도 세상도 달라 보이는 것 아닐까?


새로움. 신혼 때는 새로움이라는 게 곁에 있었기 때문에 모든 일상을 저절로 특별하게 만들어주었다. 새로운 환경, 새로운 시작, 새로운 인생, 새로운 삶. 그 새로움이 사소한 모든 것을 특별하게 변신시켜 주었다. 그 새로움이 지금은 익숙함이라는 단어로 대체되었기 때문에 특별한 것들은 평범한 것들이 되고, 감사한 것들이 당연한 것들이 되었다.


진지하게 지금의 내 결혼생활을 돌아보고 나서야 깨달았다. 나에게 별것 없어 보이고 평범한 이 가정생활이 귀한 삶이라는 것을. 분주하고 할 일 많게만 여겨지는 나의 일상이 얼마나 특별한 1분 1초인지, 당연한 가족이라는 존재가 얼마나 감사한 사람들인지 비로소 느낄 수 있었다.




결혼생활을 하는 동안 경주마처럼 앞만 보며 달리다 보니 많은 풍경과 가진 것의 의미를 놓치고 살았다. 신혼의 꽁냥거림과 곁에 누워 잠자고 있는 널따란 등짝을 보며 든든함과 설렘을 느끼던 나의 날들은 지났다. 하지만 어디 가거나 사라지지 않고 모두 내 안에 남아있다. 꺼내 쓰고자 하면 언제든 꺼내어 느낄 수 있다. 그와 함께하는 매일의 일상은 너무 오래도록 반복되어 의식하지 않으면 느껴지지 않지만 우린 또 다른 사랑을 하는 중이라고 생각한다. 매일 투닥거리며 살아가지만, 우린 서로 안다. 그 누구보다 소중한 사람이 서로라는 것을. 그리고 나의 가정이라는 아름다운 작품을 창조하기 위해 세상의 온갖 풍파와 싸우며 견뎌온 것은 서로를 사랑했기 때문이고 서로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것을. 그렇게 서로가 가슴으로 알고 있다.


장작은 자기 몸을 불살라 열심히 타고난 후에 새빨간 숯으로 남는다. 뜨겁게 사랑하던 시간은 지나갔지만, 그 자리에는 뭉근한 사랑이 남았다. 오늘도 그의 손을 잡고 한 팀이 되어 우리 가정을 위해 열심히 살아간다. 뜨거운 사랑만 가졌던 이들은 가슴이 식으면 철저히 남이 될 수 있지만, 뜨거운 사랑이 지나고 온갖 풍파를 함께 이겨내 온 이들은 전우애로 살아가기에 영원한 한편이 될 수 있다. 목숨 바쳐 내 가정에 충성을 다했기에. 그것들을 함께 지켜왔기에. 그가 있어서 나는 승리할 수 있었기에. 뜨거운 사랑이 스며든 자리에는 전우애가 피어난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나와 함께해 온 유일한 사람이 나 자신인 것처럼, 내 결혼의 시작부터 지금까지 모든 과정을 함께하고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유일한 사람은 나의 전우, 남편뿐이다. 오늘도 나의 전우와 함께 우리의 찐한 전우애를 동력 삼아 열심히 살아가 본다.

전우여, 영원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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