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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의미에 대한 사색

by 신발끈

일상에서 작은 행복을 찾으며 사는 것이 인생의 진리일까. 삶의 고통을 잠시나마 잊게 해주는 것은 사람들과 흥겹게 이야기를 나누었던 술자리, 햇살이 쏟아지는 오후 점심시간의 산책, 사랑하는 이와의 눈 맞춤, 그리고 출근길에 여유가 있어 살 수 있는 커피 한 잔. 오늘 하루가 비록 힘겹더라도 내일이면 결국은 지나간다는 희망으로 버티게 된다. 가슴 벅찬 행복은 아니라도 이게 사는 맛이 아니겠냐고. 인생 뭐 있냐고. 이제는 인정해야 할 때가 된 걸까.

하지만 내가 우러러보며 동경했던 스승들은 그렇지 않았다. 그들은 세상을 넓고 깊게 사유하며 고독하게 진리를 추구하는 삶을 살았다. 스승은 혁명가이기도 예술가이기도 했다. 나도 자유롭지만 치열하게 살고자 했다. 요즘은 자기 분야에서 특정 성공을 이룬 이들의 인터뷰를 자주 보았다. 이들의 말에는 힘이 있었고, 나는 한편으론 부럽고 또 한편으론 교훈을 얻는다. 이들을 좇아 살아가고 싶었다. 분명 더 큰 세상이 있다고, 분명 내가 이룰 꿈이 있다고. 나는 이제 스승이었던 그들보다, 성공을 거둔 이들보다 나이를 먹었다. 내가 겨우 여기까지 오는 동안, 그들은 성큼성큼 큰 걸음을 걸어온 거지.

한강 작가의 글을 읽으며 생각한다. 무너질 듯 살아있는 그녀의 한 문장, 한 문장이 무거워 내내 마음에 걸린다. 꾹꾹 눌러쓴 그녀의 문체, 어쩌면 사력을 다해 써 내려간 그녀의 이야기. 그녀는 지금 행복하지 않을 거야. 여기까지 이룬 성취가 그녀를 행복하게 해주진 않을 거야. 그럼에도 무언가를 써야 한다는 의무감이 그녀를 이끌었겠지. 소설 속의 주인공처럼 말이야. 나는 또 지독하게 그녀가 부러워졌다. 자꾸 무언가를 이루고 싶어졌다.

나는 한낱 직장인일 뿐인 것을. 내가 바라는 것은 나의 일을 잘 해내어 인정을 받는 것. 좋은 보고서를 완성하는 것, 의미 있는 논문을 쓰는 것. 하지만 도대체 좋은 것과 의미 있는 것은 무어라 말인가. 작은 일에도 정성을 기울여야 한다고, 그래야 세상의 의미에 가닿을 거라고. 결국은 모든 것은 '과정'이 전부가 아닐까. 애를 써서 겨우 무언가를 완성하고, 잠시 기쁨을 느낀 후, 다시 몰두할 무언가를 찾아 헤매는 것이 겨우 인생의 목적인 건가.

정년이 보장되는 회사로 들어온 지 3년을 꽉 채워간다. 사람들과 관계에서 많은 긴장을 하고, 업무에 대한 부담으로 과도한 불안을 느끼기도 했고, 이제는 안정감을 느끼고 편안한 기분에 젖어 있다. 나의 모든 것을 가득 채우고 있던 불안에서 조금은 해방되었다. 나는 그럭저럭 일을 잘 해내는 사람이 되었고, 사람들과 공간에 적응해 갔다. 이러한 편안함에 익숙해졌으니 새로운 곳으로 떠나야 하는 순간이 아닌가 자주 생각했다. 여기의 방식에 길들여져 고이고 썩은 사람이 되는 건 아닐까 다른 걱정이 밀려온다.

나는 정말 무엇인가. 일이란 무엇인가. 사람들과 관계란 무엇인가. 왜 이렇게 마음은 복잡한가. 천방지축 들끓는 마음을 주체하기가 어렵다. 단순하고 담백하게 살기엔 내 마음이 너무 복잡했다. 일과 나는 분리하여 적당히 지내고 싶다가도, 진심을 다해 좋은 결과가 나오길 바라고. 사람들의 인정은 중요하지 않다고 오로지 나에게 집중하겠다는 마음을 먹었다가, 이내 사람들 사이에서 우쭐하고 갈등하기를 반복한다. 자유롭고, 따뜻하고, 편안한 사람이 되고 싶은데. 부끄러운 과거가, 불안한 현재가, 오지 않은 미래가 발목을 잡고 있다. 나는 정말 어떻게 될까.

지나간 나의 실패와 실수가 떠오를 때면 온몸에 소름이 돋는다. 작은 어둠으로 들어가 잔뜩 웅크려 숨고 싶었다. 내 존재가 펑하고 터져 순식간에 사라지기를 꿈꾸었다. 꼬리에 꼬리를 물어 아득해진 부끄러운 과거를 소환한다. 과거는 과거가 아니다. 바로 옆에서 나를 비웃고 내 귀에다 속삭인다. '나는 부끄러움, 수치심, 숨기지 못한 실수, 내 존재 자체야. 나는 여기서 헤어 나올 수 없을 거야' 정말 그러했다. 나는 과거로, 더 과거로 돌아가 미처 깨닫고 있지 못하는 부끄러움이 된다. 얼굴이 화끈 달아오른다. 앞만 보고 달려갈 거야. 나는 빙글빙글 원을 돌거나 사력을 다해 제자리 뛰기를 하고 있다.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하는 반복된 나날들. 미래의 어느 순간에는 오늘도 부끄러움이 되어 있겠지.

하지만 부끄러움은 이미 지나가 버린 사건. 내가 경험했던 감정. 부끄러움은 내가 아니다. 나를 다독인다. 아무도 모를 거라고. 괜찮은 척하고 있으면 눈치채지 못할 거라고. 내가 이룬 성취도 내가 아니다. 내가 내뱉은 말도 내가 아니다. 그러니 나는 부끄러움이 아니다. 수치심도 지금 이 순간 내가 느끼고 있는 감정일 뿐이다. 괜찮다.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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