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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날 Dec 07. 2023

의미 없는 시간은 결코 없었다

충분히 잘했고, 잘하고 있다.

의미 없는 시간은 결코 없었다.


 아이를 임신하고 낳아 키우는 동안 나를 잃어버린 채 엄마로만 살아왔다. 바깥세상과 단절된 채 좁은 집에 갇혀 살다 보니 사회적으로 쓸모없는 인간이라는 생각에 자존감이 낮아졌다. 바닥을 치는 자존감은 우울한 감정을 선물로 가져왔고, 한동안 우울의 구덩이에서 빠져나올 방법을 찾지 못했다.


 시간이 지나 아이는 초등학교에 들어갔고, 엄마로만 살던 나는 나를 돌아볼 기회를 얻었다. 산책하며 생각했고, 책을 읽으며 내 삶을 더듬어 보았다. 내가 느낀 감정들을 글로 풀어내는 과정을 통해 잃어버렸던 나를 되찾을 수 있었다. 그리고 하나의 결론을 낼 수 있었다. 지나간 날 중 의미 없는 시간은 결코 없었다.






 우리 부부는 5년 동안 유산 4번, 조산 1번을 겪으며 오지 않을지도 모를, 아이를 또 기다렸다. '이제는 그만하고 내 삶을 살아야지'라고 마음을 편하게 가지니 아이가 꿈처럼 왔다. 그래서 태명을 '래몽'이라고 지었다.


 그러나 임신의 기쁨도 잠시, 아이를 또 잃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항상 나를 따라다녔다. 임신 사실을 알게 된 날부터 침대와 한 몸으로 살았고, 일주일에 한 번 있는 산부인과 정기 검진 일에는 유산 방지 주사를 꼭 맞았다. 외출은 병원 갈 때만 할 수 있었다.


 불안하고 답답한 마음을 해결하기 위해 태교, 육아, 교육에 관련된 책을 읽었다. 책 읽기가 지겨워지면 숫자 맞추기 게임인 '스도쿠'를 풀며 시간을 보냈다. 뱃속에서 엄마와 함께 책을 읽고, 스도쿠를 풀었던 래몽이는 책을 좋아하고, 수학을 좋아하는 아이가 되었다.






 아이가 배 속에 있을 때는 항상 불안했다. 20주 넘어서 조산을 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매 주수마다 불안감은 점점 커졌다. 먼저 경험한 선배들은 '아이 낳으면 그때부터 고생문이 열린다'라고 말했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태아를 품고 있는 날들이 힘들고 고통스러웠다.


하루 종일 누워있다 보니 할 수 있는 게 한정적이고, 대화할 상대가 없어서 외로웠다. 신랑이 얼른 퇴근하기를 기다리며 시계만 하염없이 쳐다보기도 했다. 신랑을 기다리며 배 속의 아이에게 아빠 이야기를 해주었다. 5년간 연애할 때의 이야기와 우리를 위해 일터에서 고생하고 있을 아빠의 책임감에 관해 이야기를 하다 보면 밤이 되곤 했다.


 가장의 무게를 양어깨에 짊어진 신랑은 예나 지금이나 몹시 바쁘다. 아이와 함께할 시간이 부족하다. 유아기에 엄마와 거의 모든 시간을 보낸 아이는 오매불망 아빠를 기다린다. 신랑은 퇴근 후 5분, 10분 정도 아이와 놀아주는 것이 전부였는데, 아이는 엄마와 아빠를 공평하게 사랑한다. 아내가 남편을 간절히 기다렸듯, 아이도 아빠를 그윽이 기다린다.






 바쁜 신랑 덕에 나는 아이를 독점할 수 있었다. 내가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핏덩이를 초등학생으로 키우는 동안 무엇 하나 쉬운 건 없었지만, 그렇다고 죽도록 힘들지도 않았던 것 같다. 집 안에 나와 아이 둘 뿐이라 뭐든 내가 알아서 하면 됐다. '내가 하는 육아가 맞았는지, 틀렸는지' 뭐라고 하는 사람이 없으니 불안하기도 했지만, 편하기도 했다. 늦깎이에 초보 엄마였지만, 오래도록 기다려서 만난 아이기에 아이를 위해 강한 엄마가 될 수 있었다.


 선배 엄마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신랑과 육아관과 교육관이 맞지 않아 다툼이 자주 생긴다고 했다. 나는 육아를 독점한 덕분에 신랑과 상의하거나 조언을 구하기는 했으나 대부분의 큰 틀은 내가 정하면 됐다. 나를 믿고 따라주는 신랑 덕분에 그 부분은 큰 스트레스 없이 지나고 있다.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나니 이제 한숨 돌릴 수 있게 되었다. 점점 엄마가 혼자 있을 수 있는 시간이 많아지니 낮았던 자존감도 슬슬 올라간다. 집안을 둘러보면 어느 곳 하나 내 손길, 내 눈길이 스치지 않은 곳이 없다. 나를 잃고 살아오는 동안 엄마로, 아내로 많은 것을 해냈고, 해내고 있다. 충분히 잘했고, 잘하고 있다.


 지나온 시간을 돌이켜 보면 의미 없는 시간은 결코 없었다. 나를 잃지 않고, 엄마로서의 삶과 나로서의 삶을 균형 있게 살았다면 더 좋았겠지만, 지금 이대로도 충분하다. 엄마로만 사는 동안 나도 아이와 함께 성장했다. 앞으로 아이가 어떻게 커나갈지 궁금하고, 기대되는 것처럼 나의 성장도 궁금하고 기대된다.


 10년 후 나는 어떤 삶을 살게 될까?

 나는 어떤 할머니가 될까?

 설렘으로 인해 가슴이 두근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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