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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캣브로 Jun 08. 2021

취향 저격과 역린 사이 - 쓰담쓰담 고양이 만지기

고양이가 좋아하는 스킨십

4냥꾼 캣브로, 스물세 번째 이야기




당신의 취향과 역린은 무엇인가요?


슬슬 여름이 다가오는지, 아내와 나의 취향을 저격하는 영화들이 개봉되고 있다. 우리는 공포 영화, 그중에서도 특히 오컬트 물을 좋아한다. 하루에 서너 편을 연달아 볼 때도 있다. 웃기게도 제일 좋아하는 장르이지만, 겁이 많아 혼자서는 죽었다 깨어나도 보지 못한다. 공포 영화를 보기 위해서는 팝콘과 맥주, 그리고 소리를 지르며 꼭 붙잡을 아내의 손이 필요하다.


누군가는 묻는다. 그렇게 무서워하면서 어떻게 공포 영화를 좋아할 수 있냐고. 나는 답한다. 남들보다 더 무서워하기에 남들보다 더 좋아하는 것이라고. 악령에 쫓기는 주인공을 보며 느끼는 심장 쫄깃쫄깃한 공포감, 그러나 현실 속의 나는 안전함을 이내 깨닫고 찾아오는 얄궂은 안도감, 이 극명한 감정의 전환 속에서 느끼는 카타르시스!


아내가 손을 내주지 않으면 고양이라도 붙잡는다. 그래야 소리를 지르지 않으니까.


이번에는 역린에 대해 얘기해 보자. 역린(逆鱗)이란 다른 비늘과 반대의 방향으로 자라는 용의 비늘을 말한다. 아무리 온순한 용이라도 턱 아래에 있는 이 역린을 건드리면 포악해진다고 한다. 군주나 권력자의 노여움 자체를 뜻하기도 하고, 저마다 가지고 있는 콤플렉스나 민감한 사안을 말하기도 한다.


왜 그런 친구 있지 않나. 유독 머리를 만지면 정색하는 친구. 스킨십을 싫어하는 것도 아닌데 유독 머리에만 예민하다. 유난스럽다고 흉보는 것이 아니다. 신체적인 것에만 국한되는 것도 아니다. 우리 모두는 각자 참을 수 없는 상황이나 혐오(기피)하는 대상이 있기 마련이다. 넓게 보면 가벼운 거짓말 혹은 단 일 분의 지각도 용납하지 않는 태도 등도 이에 속한다. 이는 바꿔 말하면 그만큼 정직함이나 시간관념과 같은 가치를 중시한다는 말도 된다.


나는 공들여 정리해 놓은 물건을 어지럽히는 자를 참기 어렵다. 무던하다는 얘기를 많이 듣는 편이지만 이런 사람에게는 웃음기가 사라진다. "마끼야, 너는 고양이니까 봐준다."


고양이도 취향을 탄다. 그리고 건드려서는 안 되는 역린이 있다. 우리 집 녀석들만 봐도 사료, 화장실 모래, 잠자리 등 무엇 하나 통일의 미덕을 보여 주는 법이 없다. 흔히 냥바냥이라고 하던데 냥이들의 취향을 저격하고 역린은 피하는 게 가능하긴 한 걸까. 그래서 준비했다. 4냥이와 함께하며 쌓인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냥이들의 일반적인 취향을 분석하고 호불호 상황에 대한 점수를 매겨 보았다. 이번 편에서는 먼저 스킨십에 관하여 다룬다.


효자손이 될 것인가, 못된 손이 될 것인가


집사라면 캔따개 역할뿐만 아니라 효자손 노릇도 잘해야 한다. 어느 곳을 만져야 요 녀석들의 기분을 좋게 만들 수 있을까. 서론이 길어졌다. 일단 만져 보자. 캣브로의 주관이 반영되었을 수 있음에 미리 양해를 구한다.


머리(뒷덜미) ♥♥♥ | 무난하게 만질 수 있고, 웬만해서는 고양이들도 싫어하지 않는 부위이다. 친근감을 표시할 때 제일 먼저 들이미는 곳이기도 하다. 손바닥으로 머리를 감싸고 쓸어내리는 것도 좋고, 손가락으로 정수리 부분을 시원하게 긁어 주는 것도 좋다.


집에 놀러 온 친구를 탐하는 츠동이. 머리 만지는 건 싫어하는데 의외로 코뽀뽀는 좋아한다. 냄새를 묻혀 소유권을 주장하는 것 같다. "명한다. 너도 나의 집사가 되어라!"


얼굴 ♥♥♥♥ | 턱이나 볼을 긁어 주면 굉장히 시원해한다. 스스로 그루밍을 할 수 없는 곳이기 때문이다. 턱 밑에 까맣게 여드름이 올라올 때도 있는데, 가끔 ‘턱드름용 빗’을 이용해 제거해 주는 것이 좋다. 의외로 예민할 것 같은 코는 손가락으로 아주 ‘약하게’ 톡톡 두드려 주거나 살살 만지면 좋아한다. 콧등도 손가락으로 쓰다듬어 줄 수 있는데, 털이 아래에서 위로 나 있으므로 쓸어내리기보다는 쓸어올리는 것이 바람직하다. 손으로 만지는 것과는 다르게, 코뽀뽀는 좋아하지 않는다. 눈 앞으로 다가오는 거대한 얼굴은 나 같아도 공포스러울 것 같다. 예민한 부위 중 하나인 수염도 되도록 만지지 않도록 한다.


등 ♥♥ | 머리나 엉덩이에 비해 냥이들이 딱히 선호하는 스킨십 부위는 아니지만, 보통 머리에서 시작해 엉덩이까지 쓰다듬는 과정에서 자연스레 등도 거치게 된다. 털이 난 역방향으로는 쓰다듬지 말고, 특히 옆구리 쪽을 잘못 건드려서 냥펀치를 맞는 일이 없도록 한다.


구로의 거대한 등. 태평양에서 갓 잡아 올린 참치를 보는 것 같다. 구로는 등을 긁어 주면 정말 좋아한다.


엉덩이 ♥♥♥♥♥ | 단연 고양이가 제일 좋아하는 스킨십 부위이다. (항문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있는데, 꼬리가 시작되는 ‘엉덩이 위쪽’을 말한다!) 애정을 담아 아낌없이 궁디팡팡을 해 주면 목이 없어지며 엉덩이만 높이 올라가는 특유의 귀여운 자세를 볼 수 있다. 일종의 성감대라고도 볼 수 있는데, 신경이 모여 있기 때문에 좋아하지 않는 고양이도 더러 있다. 암컷의 경우 자궁에 충격을 줄 수 있으므로 너무 세게 두드리지 않도록 주의하자.


배 ☠☠☠☠☠ | 엉덩이가 냥이의 취향을 제대로 저격하는 부위라면, 배는 냥이의 역린과도 같다. 간혹 개를 키우는 집사들이 실수로 고양이 배를 만지다가 봉변을 당하는 사례가 있다. 배를 만지면 좋아하는 개와 달리, 냥이들은 굉장히 성을 내기 때문이다. 이는 장기가 위치한 배를 약점으로 인식하기 때문인데 집사와 친밀도가 높으면 배를 보여 주며 발라당 눕기도 한다. 그만큼 집사를 신뢰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이면 된다. 만약 배를 만져도 싫어하지 않는 냥이라면 굳이 조심할 필요는 없다.


배는 냥바냥이 심하게 갈리는 부위이기도 하다. 루비는 배를 긁어 주면 세상 행복해한다.

     

꼬리 ☠ | 꼬리 또한 예민한 부위로서, 만지면 좋아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크게 싫어하지도 않는다. (꼬리를 바닥에 팡팡 내리치며 짜증을 표현할 때는 있다.) 다만 절대 꼬리를 잡아당기는 일은 없도록 한다. 척추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냥이가 크게 다칠 수도 있고, 기분이 상한 냥이가 집사를 물 수도 있다. 집사의 얼굴을 사정없이 꼬리로 치고 다니면서 자기 꼬리는 못 만지게 하는 괘씸한 녀석들 같으니라고.


다리 ☠☠☠ | 스핑크스 자세에서는 귀찮은지 만져도 가만히 있는 경우가 많지만, 누워 있을 때 건드리면 몸 쪽으로 다리를 끌어당기거나 거칠게 발길질을 시작한다. 혹시라도 발톱을 세우면 발길질에 집사의 팔은 한 달 된 스크래처처럼 될 수 있으므로 조심해야 한다.


☠☠☠☠ | 발바닥에는 신경이 모여 있어 계속 만지면 사랑스러운 냥이들이 스트레스를 받을 수 있다. 특히 냥이 입장에서는 비장의 무기를 숨겨 둔 예민한 부위이기도 하다. 발을 만지면 도망가거나 거칠게 발길질을 하는 선에서 끝나는 다른 냥이들과 달리 구로는 가차 없이 냥냥펀치를 날린다. 발톱을 있는 대로 세우고서는 말이다. 기분 좋게 골골이를 하는 도중이라도 예외는 없다. 그래도 몇 년을 같이 지냈는데...


그렇지만 발바닥의 야들야들 부드러운 젤리를 만지고 싶은 욕구를 참을 수 있는 집사가 과연 몇이나 될까. 귀여운 젤리 가운데에 손가락 하나 넣고 있으면, 세상을 얻은 것처럼 행복하다. 다행히 발의 윗부분을 만졌을 때와는 달리 구로를 제외한 다른 냥이들은 싫어하지 않는다. 참으로 다행스러운 냥바냥이다.


스킨십에 대한 고양이들의 취향 분석은 여기까지이다. 다음 편에서는 고양이가 좋아하는 환경에 대한 얘기로 「취향 저격과 역린 사이」 편을 계속 이어 볼까 한다.


오기가 생겨 구로의 발을 만지고 얼른 손을 거둔 적이 있는데, 죽일 듯이 노려보더라. 내가 참는 게 맞는 거겠지... 그것이 집사이니까. "발 만지면 그땐 깡패가 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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