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를 키우면서 공간·시간·관계적인 면에서 많은 변화가 생겼다. 공간적인 면에서 장난감부터 캣타워까지 다양한 고양이 용품들이 집 안에 가득해졌다. 고양이와 오래 지낼수록, 혹은 고양이가 많아질수록 용품도 많아지기 마련이다. 시간적인 면에서 내 일과에는 옷에 붙은 털 정리나 화장실 청소처럼 고양이 때문에 또는 고양이를 위해서 해야 하는 일들이 생겼다. 모두 하루도 거를 수 없는 일이다. 관계적인 면에서 고양이와의 유대를 위해 놀아주어야 하는 때가 있고, 반대로 고양이에게 내가 위로받는 순간들도 있었다.
아내가 없던 어느 날, 혼자 집 청소를 하다가 잠시 쉬는 사이 깨끗해진 거실을 둘러보았다. 고양이와 함께한 시간, 고양이를 생각하는 마음이 집이라는 공간을 통해 드러났다. 그리고 여기에는 공간과 시간을 더 효율적으로 활용하고, 고양이와의 좋은 관계를 위한 아내의 아이디어들이 구석구석 숨어 있었다. 아내는 참 대단한 사람이다.
서툴렀던 초보 집사 티를 막 벗은 지금 정말 사소하지만 유용한, 집사들을 위한 우리 집의 작은 아이디어들을 소개한다.
우리 집의 작은 아이디어를 소개합니다
| 털뿜 방지를 위한 이불 보관용 행거 | "츠동아 미안해. 너는 털이 너무 빠져서 어쩔 수 없어."
원래는 이불을 장에 따로 넣지 않고 침대 머리맡에 잘 개어 두기만 했었다. 그런데 출근한 사이 냥이 녀석들이 자꾸 이불을 헤집고 들어가는 바람에 이불 걸이용 행거를 설치하게 되었다. 흐트러지는 것은 상관없으나 털이 너무 붙었다. 주로 츠동이가 많이 들어가는데 하필이면 털이 제일 많이 빠지는 녀석이다. 행거를 설치한 후 이불을 덮을 때 얼굴에 붙는 털이 굉장히 줄어들었다. 생각보다 미관이 흉측하지 않아 벽에 구멍을 뚫어도 좋다면 추천하는 방법이다.
| 루비 습격 방지용 붙박이장 물뿌리개 | "그만 좀 들어가자. 루비야."
출근을 준비할 때마다 붙박이장을 습격하는 마끼와 루비 때문에 각 칸마다 물뿌리개를 구비해 두었다. 혼을 내면 더 깊숙이 들어가기 일쑤고, 강제로 빼내면 정리해 둔 옷들이 흐트러지거나 발톱에 찍혀 상처가 생긴다. 그때는 의기양양하게 장 안에 걸어둔 물뿌리개를 뽑고, 대한민국 예비역 병장의 사격 자세를 보여 주면 된다. 보통은 물을 뿌리지 않아도 혼비백산하여 도망간다.
| 루비 탈출(감시)용 종 | 루비가 갇히면 청아한 종소리와 함께 귀여운 울음소리가 들린다.
시도 때도 없이 붙박이장으로 숨어 들어가는 루비 때문에 내가 낸 아이디어이다. 안에서 움직이면 종소리가 나기 때문에 루비가 갇히게 되는 일이 많이 줄어들었다. 가뜩이나 정신없는 아침에 매번 장을 열어 루비가 없는지 확인하지 않아도 되니 출근 준비가 편해졌다.
| 냥이들의 가출 방지를 위한 중문 | "마끼야 고맙다."
작은 아이디어라고 할 수는 없지만, 매번 가출 시도를 하는 냥이와 함께 사는 집사에게는 중문이 큰 도움이 된다. 우리 집의 경우, 「탈출왕 마끼 – 넌 날 찾을 수 없을걸」 편에서 썼듯이 가출 시도를 밥 먹듯이 하는 녀석 때문에 필수적이다. 겁쟁이 구로는 시도조차 하지 않지만 혹시라도 밖으로 나가게 되면 영영 찾을 수도 없을 것이다. 가출과 별개로 신발로 더러워진 현관에서 냥이들이 뒹굴거나 쉬는 상황도 방지할 수 있어 좋다. 1층에 산다면 사생활도 보호할 수 있다는 점이 장점이다.
| 벽과 만난 스크래칭 매트 | 발상의 전환, 사냥 본능 100% 충족
바닥에 두고 사용하는 스크래칭 매트를 중문 옆 벽에 붙여 보았다. 바닥에 두고 사용할 때보다 보기가 좋다. 무엇보다 매트가 냥이들에게 치여 이리저리 굴러다니지 않아 청소할 때 굉장히 편리하다. 이미 기둥형 스크래처가 있어 하나를 더 두기에는 부담스럽다면 스크래칭 매트를 벽에 부착해 보자.
| 일렬종대 애물단지 낚싯대 | 고양이 낚는 집사의 필수품
접어서 보관하기 어려운 긴 낚싯대는 현관 신발장 옆에 보관하자. 양면테이프만 있으면 어렵지 않다! 낚싯대는 방치해 둘 경우, 고양이들이 혼자 가지고 놀다 목에 걸릴 수도 있기 때문에 손에 닿지 않는 곳에 보관하는 것이 좋다.
| 깔끔한 벽결이 선반 | 수납과 인테리어 두 마리 토끼 잡기. 거실 선반에는 먼저 떠난 마끼, 그리고 물고기 친구들인 랜슬롯과 아서가 쉬고 있다.
고양이 집사들 중에는 이상하게(?) 미니멀리스트가 많다. 아마 사고뭉치 냥이들 때문에 반강제적으로 미니멀리스트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은 아닐까. 우리도 미니멀리즘을 추구하기로 마음을 먹은 이후, 가구를 점점 줄여 나가게 되었다. (사실은 흉내만 내고 있다.) 식탁과 화장대. 그리고 종국에는 수납장도 한 개만 남기고 모두 없애게 되면서, 일부 물건들이 거처를 잃고 방황하는 일이 생겼다. 고민 끝에 결정권자인 아내의 동의를 얻어 시범 사업으로 설치한 벽걸이 선반은 아주 만족스러웠다. 횡으로 공간을 가르는 선반 덕에 오히려 집은 더 시원해 보였고, 갈 곳 잃은 물건들도 제자리를 찾았다. 이후 벽걸이 선반에 중독되어 집 안 곳곳에 더 설치하게 되었다. 주의할 점이 하나 있다. 고양이가 올라가지 말아야 할 곳이라면 가급적 선반은 폭이 좁은 것으로 고르거나 아예 높은 곳에 설치하는 것이 좋다.
| 안방 출입용 간이문 | 오랜만에 보는 우리 나리
문을 닫아도 냥이들이 안방을 언제든지 출입할 수 있도록 작은 구멍을 내었다. 문짝을 떼어 낸 후 작업을 해야 하기 때문에 중문과 마찬가지로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다. 원래는 플라스틱 문도 달려 있었으나, 소리가 시끄러워 떼어 버렸다.
| 고양이 출입용 베란다 간이 문 | 견문(犬門)이라 적고 고양이 문이라 읽는다.
집에 처음 온 손님들은 모두 이 간이 문을 보고 웃는다. 설치한 모양새가 우스꽝스러워서 한 번 웃고, 견문이라 적혀 있어서 두 번 웃는다. 이름이야 어떻든 무슨 상관인가. 고양이가 드나들 수만 있으면 제 역할은 하는 것이니까. 고양이 화장실은 베란다에 있고, 한여름이나 한겨울에 문을 계속 열어둘 수는 없어 설치하게 되었다. 냥이들이 처음에는 어색해하더니만 지금은 조금의 주저함도 없다. 조그만 머리를 들이밀고 문을 여는 모습이 꽤 귀여운 광경을 선사한다.
| 냥이들의 일광욕을 위한 베란다 창틀 선반 | "제발 창틀로는 가지 말아 줄래?"
새소리를 들으며 따스한 햇볕 속에서 일광욕을 만끽하고 있는 냥이들을 보면 집사의 기분도 좋아진다. 베란다에 높은 구조물이 없다면 창틀 선반을 달아 보자. 아마 고양이가 제일 좋아하는 장소가 될지도 모른다. 우리 냥이들의 경우 자꾸 창틀에도 누우려 해서 결국 떼어낸 것은 비밀이다. (대신 거대 선반이 생겼다.)
준비한 내용은 여기까지이다. 너무 작은, 아무것도 아닌 것들을 소개한 것 같아 괜스레 겸연쩍다. 공간·시간·관계의 세 가지 측면에서 내용을 분류하고 싶었는데 아쉽다. 모든 아이디어에 결국은 각 요소 전부가 스며 있어 억지로 떼어내면 조잡한 구성이 될 것 같았다. 서술 방식이야 어찌 되었든 집사들에게 작은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뿐이다. 글을 쓰다 보니 다른 집사들의 사는 모습이 궁금해졌다. 내 이야기는 여기서 줄이고, 다른 집사들의 일상을 훔쳐보러 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