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끼가 탈출을 몇 번 시도한 후, 간단한 외출도 전쟁이 되어 버렸다. 탈출을 놀이라고 생각하는지 현관에서 신발 신는 소리만 들려도 같이 나가려는 마끼를 저지하는 일이 부지기수였다. 외출은 차라리 나았다. 마끼를 멀리 던져 놓고 재빨리 나가면 되니까. 귀가할 때가 문제였다. 이 시기에는 집으로 들어가는 그 잠깐마저도 놓치지 않는 마끼 때문에 반 뼘 이상 현관문을 열어 본 적이 없다. 마끼를 키우면서 ‘고양이 액체설’을 믿게 되었을 정도이다. 그 작은 틈으로 머리를 들이밀고 빠져나오려는 마끼를 손으로 막고 나서야 겨우 집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마끼는 영리했고, 일은 터지고 말았다. 여느 때와 같이 문을 빼꼼 열고 현관에 마끼가 없는 것을 확인했다. 최소한의 문틈만 남기고 몸을 욱여넣어 집으로 들어가려는 찰나, 신발장 밑에 숨어 있던 마끼가 닌자처럼 튀어나왔다. 그 짧은 시간, 1층에 사는 것이 후회되었다. 마끼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아파트 단지 내 지상 주차장으로 뛰쳐나갔다. 나와 아내, 그리고 운이 나쁘게도 그 자리에 있던 친구까지 우리 셋은 사색이 되어 마끼를 애타게 불렀다. 소용없었다. 불러서 올 것이었으면 애초에 나가지도 않았겠지.
외박은 안 된다. 마끼야.
우리는 각자 마끼가 좋아하는 장난감과 간식을 손에 하나씩 들고 기어다니다시피 하며 온 주차장을 뒤졌다. 한 아저씨가 이런 우리를 측은한 눈빛으로 바라봤다. 아니다. 다시 생각해 보니 그것은 미친 사람을 쳐다보는 눈빛이었다. 다 큰 어른 셋이 손에는 기다란 장난감을 들고, 시꺼메진 무릎으로 ‘마끼야’라고 외치며 돌아다니는 모습은 안타깝기보다는 괴기스러웠을 것이 분명하다.
누가 먼저 발견했는지는 모르겠다. 고양이 몰이라도 하듯 차 아래에 숨어 있는 마끼를 보고 우리는 포위망을 좁혔다. 허나 이 괘씸한 녀석은 또다시 집 앞 화단으로 도망가 버렸다. 덤불 사이에 숨어 버리니 찾을 길이 없었다. 늦저녁까지 교대로 아파트 단지 내를 샅샅이 뒤졌으나 결국 마끼는 찾지 못했다. 비가 갑자기 쏟아졌다. 이대로 마끼와의 묘연이 끝나나 싶었다.
그렇게 다음날이 찾아왔다. 비는 잦아들지 않았다. 초인종이 울렸다. 이제 막 자취를 시작한 동생이 물건을 챙기러 잠깐 들른 것이었다. 다리를 다쳐 목발을 짚고 있는 동생이 절뚝거리며 들어왔다. 갑자기 초상집 분위기가 된 건 부부 싸움이 아니라 마끼의 가출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영혼 없는 위로와 함께 동생은 물건을 챙겨 집을 나섰다.
“집사야, 문 좀 열어 봐!” 나에게 허용된 문틈, 고작 10cm
커뮤니티에 마끼를 찾는 글을 올릴지, 비가 그치면 어디를 더 찾아봐야 할지를 아내와 의논하고 있는 도중이었다. 초인종과 함께 거칠게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나갔던 동생이 한 팔에는 목발을 짚고 다시 절뚝거리며 들어왔다. 한 손에는 쫄딱 젖어 흙투성이가 된 마끼의 목덜미를 움켜쥐고 말이다. 갑자기 동생의 얼굴 뒤로 후광이 비치며, 리베라 소년 합창단의 노래 상투스(sanctus)가 들리기 시작했다.
마끼는 집 앞 화단에서 우리 주방을 바라보며 계속 울고 있었더랬다. 빗소리 때문에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았던 것이었다. 왜 마끼는 꼭 빗속에서 발견하게 되는 걸까. 그렇게 마끼의 이번 탈출도 실패로 끝났다. 따지고 보면 1박은 했으니 절반의 성공 정도로 봐야 하나.
마끼가 혹시 외출을 하고 싶은가 생각이 들어 놀이터로 나가본 적도 있었다. (목줄과 가방은 필수다.) 마끼는 계속 무서워하며 낑낑대기만 할 뿐 가방 밖으로는 나오지도 않았다. 그런데 도대체 너 왜 그래. 집 밖을 무서워하면서 왜 나가겠다고 계속 난리야.
결국 아내와 나는 특단의 조치를 취했다. 현관에 중문 설치 공사를 하기로 했다. 결과적으로는 중문이 생기고 나서 외출이 훨씬 편해졌다. 더러운 현관에 다른 냥이들이 나가는 일도 없어졌고, 탈출 때문에 불안해하는 일도 없어졌다. 물론 마끼는 중문이 생긴 이후에도 종종 탈출을 시도했지만 말이다. 간식부터 병원까지, 그리고 이제는 중문 공사, 냥이들과 함께하는 동안 큰돈은 모두 마끼 때문에 나간 것 같다. 괜찮아 마끼야. 내가 더 벌면 되지. 나보다 벌이가 더 좋은 아내를 만나서 참 다행이다.
중문이 생기면 그리 넓지 않은 집이 더 좁아 보이지는 않을까 걱정했다. 의외로 답답하지 않고 안정감이 생겼다. 1층에 살면서 사생활이 보호되는 점도 나쁘지 않다. 고맙다 마끼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