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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캣브로 Jun 16. 2021

취향 저격과 역린 사이 - 우리 집 고양이 오감 만족

고양이의 취향

4냥꾼 캣브로, 스물네 번째 이야기




행복한 고양이를 위한 공간


고양이는 시야가 확 트인 높은 곳에 오르는 것을 좋아한다. 한편 아이러니하게도 좁고 깊은 곳에 숨는 것 또한 좋아한다. 잠깐만, 캣타워와 숨숨집이 얼마였더라... 참 손도 많이 가고 돈도 많이 드는 녀석들이다. 만약 집에 캣타워 같은 가구를 들이기 어렵다면 높은 냉장고나 캐비닛을 쉽게 오르내릴 수 있도록 탁상 같은 작은 가구를 옆에 배치하는 것도 좋다. 우리 집은 냉장고 옆에 김치 냉장고를 배치하였더니 냥이들이 냉장고 위를 편하게 올라갈 수 있게 되었다. 침대 아래에 좋아하는 쿠션 하나 깔아 두면 훌륭한 숨숨집도 만들어 줄 수 있다.


기왕이면 새 구경을 좋아하는 냥이들을 위해 베란다에서 창밖을 구경할 수 있도록 수납장을 배치하였다. 스트레스도 풀고 동시에 일광욕을 통해 건강도 챙기니 휴양지가 따로 없다.


청소 후 털 하나 없이 깨끗해진 집은 집사뿐만 아니라 냥이에게도 행복한 공간이 된다. 물론 청소기 소리는 지옥과 같겠지만 말이다. 더러운 자국이 닦이고 냄새가 사라진 뽀송한 바닥에서 뒹굴뒹굴 구르며 행복해하는 냥이들을 보면 힘들어도 뿌듯하다. 특히 화장실은 매일, 필요하다면 두 번 이상 비워 주자. 「고양이 화장실 - 안전의 욕구」 편에서 소개한 일화처럼, 더러운 화장실(혹은 맘에 들지 않는 화장실 위치)에 분노한 고양이의 복수는 얼음처럼 차가우니까.


내 귀에 캔따개


대체로 고양이는 남성보다는 여성을 좋아한다. 상대적으로 고음인 여성의 목소리가 더 친숙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남성들의 크고 낮은 목소리는 몸집이 크고 위협적인 동물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우리 집 고양이를 처음 본 친구들도 저도 모르게 고음으로 말을 거는 걸 보면, 이런 습성을 본능적으로 파악한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비닐이 바스락거리거나 스크래치 등을 긁는 소리도 좋아하는데 그 이유가 재미있다. 자연에서 들을 수 있는 소리를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비닐은 나뭇잎이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스크래칭은 사냥감이 움직이는 소리를 닮았다. 모두 사냥 놀이와 관련이 있는 소리이기도 하다. 새가 지저귀는 소리, 물이 흐르는 소리도 마찬가지이다.


고양이들끼리 의사소통할 때 사용하는 주파수로 만든 ‘고양이를 위한 음악’이 있는 모양이다. 스트레스를 완화하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내 전용 캔따개의 캔 따는 소리만큼 행복한 소리가 있을까. 이 인공적인 소리가 적막한 집 안에 청아하게 울려 퍼지면, 천지가 개벽하는 것마냥 냥이들의 귀가 활짝 열리고 눈은 번쩍 뜨인다. ‘따-악’ 하는 소리와 함께 캔이 열리면, 특히 우리 마끼는 자다가도 달려와 잃어버린 자식을 찾은 어미처럼 애타게 운다. 집사의 바짓가랑이를 물고 늘어져서는 말이다. 어서 캔을 바닥에 내려 놓으라는 거겠지. 사실 소리 자체보다는 간식을 좋아하는 것이라고 봐야겠지만, 캔 맥주 따는 소리만 들어도 행복해지는 나를 떠올리면 아주 틀린 말도 아니다. 파블로프는 옳았다.


앞서 말했듯이, 청소기 소리는 냥이들에게 지옥과도 같다. 이는 고양이가 사람보다 가청 범위도 넓고 소리에 민감하기 때문이다. 길고 구불구불한 청소기가 천적인 뱀을 연상시켜서 그렇다는 말도 있는데, 그냥 청소기 소리를 싫어하는 것 같다. 청소기보다 덜한 드라이어 소리에도 기겁하고 도망가는 걸 보면 말이다. 우리 집에서는 마끼만 유일하게 청소기를 무서워하지도 않고 신경도 쓰지 않는데 정말 알 수가 없다.

 

갑자기 발생하는 큰소리에도 냥이들이 깜짝 놀라고 스트레스를 받을 수 있으므로 갑자기 소리를 지르거나 물건을 옮기다 떨어뜨리지 않도록 조심하는 것이 좋다. 우리 겁쟁이 구로는 캔 따는 소리에도 놀라 토끼눈이 되어서 도망갈 정도이니, 참으로 오묘한 냥바냥이다.


“집사야, 나도 성격이 있다. 네가 청소 제때 안 하면 그땐 길냥이가 되는 거야! 내가 길냥이처럼 집이라도 나가랴? 청소해!” “헉, 청소기 소리? 도망가야지!” 어쩌라는 걸까.


크~ 캣닢에 취한다


봉인되어 있던 캣닢 봉지가 거칠게 뜯기고 캣닢 향이 퍼지는 순간, 냥이들이 성난 황소처럼 달려온다. 겁쟁이 구로조차 두려움을 잊고 코앞까지 올 정도이니 캣닢의 위력은 실로 어마어마하다. 간식 캔이 마끼를 정밀 타격하는 미사일이라면, 캣닢은 냥이들을 대규모로 공략하는 융단 폭격과도 같다. 캣닢에 있는 특정 성분은 고양이에게 행복감을 주는데, 물고 뜯고 때로는 침도 흘리면서 난리도 이런 난리가 없다. ‘고양이 마약’이라고도 불리는 이유이다. 실제 마약처럼 해로운 중독 성분이 있는 것은 아니므로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캣닢 불법 투여 현장 검거. 마따따비도 캣닢과 비슷한 역할을 한다. 사자나 호랑이 같은 고양잇과 동물들도 캣닢에 똑같이 반응한다고 한다. 물론 양은 더 많이 필요하겠지만.


익힌 음식보다 생선회, 육회를 더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다. 내가 그렇다. 날것의 섭취로만 충족되는 이 야생 본능...이라기보다는 이상하게 익히지 않은 고기가 당길 때가 있다. 집에서 사료만 먹는 고양이들도 가끔 날것이 당기나 보다. 고기나 생선을 사 오면 장바구니 근처를 떠나지 못한다. 냄새만 맡고 다시 사라지는 다른 녀석들과 다르게 식신 마끼는 집사가 정리하는 틈을 타 몰래 음식에 손을 대다 혼난 적이 많다. 고양이에게 생선 가게를 맡기면 안 된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싫어하는 냄새는 냥바냥이 적용되지 않는 것 같다. 우리 4냥이들을 포함하여 임시 보호를 했던 냥이들을 봐도, 집사 지인들의 말을 들어봐도 그렇다. 냥이들이 싫어하는 대표적인 냄새에는 시트러스 계열의 새콤한 냄새, 그리고 후추 같은 자극적인 향신료 냄새가 있다. 특히 새콤한 냄새를 맡게 되면 얼굴을 찡그리며 저만치 달아나는데, 사람에게는 좋은 냄새이므로 스프레이 행동 방지를 위해 일부러 뿌리기도 한다. 아, 마지막으로 냥이들은 변 냄새를 싫어한다. 나도 싫다. 이유는 필요하지 않을 것 같다.


충직한 집사가 되기란 쉽지가 않다. 제각기 취향도 다양한 냥이들을 만족시키기 위해서는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야 한다. 요 귀여운 녀석들이 행복하고 안락하게 지낼 환경을 조성하려면 만만치 않다. 우리 집 상전의 오감 만족을 위한 맞춤형 케어를 시작해 보자. 냥이들이 좋다는데 여부가 있을 수 있나. 냥이들의 취향 저격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어쩌면 제일 중요하다고 할 수 있을 집사의 행동과 태도에 관한 내용이 아직 한 발 남았다.


“집사야, 캣닢 좀 더 깔아 봐라. 응?” “여부가 있겠습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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