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와 함께하는 크리스마스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 몇몇 추억들이 떠오른다. 여자 친구를 상상의 존재로만 여기던 형제 같은 친구들과 함께 모여 '오늘도 시커먼 남자들밖에 없냐.'라며 걸쭉하게 욕을 내뱉던 시절이 있었다. 크리스마스 시즌이 가까워지면 어김없이 '경험치 이벤트'를 하던 게임에 접속하여, 온라인 세상 속에서 외로운 전우들과 함께 몬스터를 잡기도 했다. 그러나 가장 생생하게 기억하는 것은 유치원에 다닐 때의 일이다.
우리 집안에는 불교 신자와 개신교 신자밖에 없었는데, 희한하게도 내가 다닌 유치원은 성당에서 운영하는 곳이었다. 작은 마리아상 옆에 켜 놓은 촛불을 항상 몰래 끄고 도망가다가 수녀님께 걸려서 혼났던 기억이 난다. 넓은 정원 뒤에는 으스스한 지하 창고도 있었는데, 좀 까불거린다는 친구들을 꼬셔서는 모험을 떠나자며 호기롭게 창고로 몰려가기도 했다. 그날 창고 근처에는 겁먹은 꼬맹이들의 울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유치원에서는 크리스마스가 낀 주가 오면 항상 가족들을 초대했다. 그리고 아기 예수의 탄생을 축하하고 산타클로스가 선물도 나눠주는 행사를 매년 크게 진행했었다. 크리스마스와 관련해서 내 기억 속 가장 생생한 장면이다. 그리고 이 장면이 떠오르면 어쩐지 웃기면서도 슬퍼지곤 한다.
나이가 들며 오히려 철딱서니가 되어 버린 지금과 달리 어렸을 적 나는 꽤 성숙했다. 얼토당토않은 어른들의 말에 따박따박 말대꾸를 할 때마다, '너, 몇 살이니? 말 참 잘한다.'라는 소리도 꽤 들었다. 이런 나는 산타클로스의 존재를 믿은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선물을 나눠주던 산타클로스 할아버지도 수염을 달고 옷 속 가득 솜을 욱여넣은 선생님이란 걸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내가 선물을 받을 만큼 그렇게 착한 아이가 아니란 것도.
내 선물은 왜 이렇게 작냐며 울음을 터뜨리는 친구에게 산타클로스는 인자한 미소로 내년에 더 큰 선물을 받게 될 거라고 위로했지만 선물의 크기가 다른 이유 역시 알고 있었다. 선물의 크기는 부모님의 경제력에 따라 다르단 것을. 우는 친구를 바라보며 괜히 나도 눈물이 났다. 그래서 나는 크리스마스가 오면 괜스레 씁쓸해지곤 했다. 세상을 너무 일찍 알아버렸던 어린 내가 떠올라서 말이다.
그러나 이제 더 이상 크리스마스가 씁쓸하지 않다.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호러 영화를 보며, 귤을 까먹는 오늘이 더없이 거룩하고 행복하다. 또 크리스마스의 기적이 일어나기를 바라 본다. 모든 이들이 미워하던 사람을 용서하고, 싸웠던 친구와 화해할 수 있기를 기도한다. 짝사랑하던 사람과 연인이 되고, 연봉도 오르는(?) 기적이 일어나기를 바란다.
난로 앞에 자빠져 있는 고양이 동생들을 보니, 나의 기적은 이미 일어난 것 같다. 이 녀석들이 내 인생의 기적인 셈이다. 모두가 행복해지기를 바라며, 우리 똥냥이 식구들이 전하는 크리스마스 메시지!
냥! Merry Christm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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