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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캣브로 Dec 25. 2021

고양이 화장실 - 캣브로의 똥간 관리

고양이 화장실 관리

4냥꾼 캣브로, 마흔여덟 번째 이야기




화장실의 부동산학적 고찰


건물의 부동산 가치를 결정하는 데 가장 큰 기준이 되는 것은 무엇일까? 브랜드? 세련된 외관과 잘 갖추어진 첨단 설비? 품위 있는 이웃과 좋은 학군? 건물의 가치를 결정하는 조건은 실로 다양하지만, 아무래도 그것이 위치한 부지가 제일 영향이 큰 것 같다.


고양이 화장실도 다르지 않다. 월세 십 원도 내지 않고 무전취식을 일삼는 냥이들에게도 나름의 노른자 위치가 있다. 적합한 화장실과 모래를 고르는 것만큼 위치 선정도 중요하다는 얘기다. 별수 있나. 우리 상전들 원하시는 대로 다 해 드려야지. 고작 똥간 하나에 고려할 것이 이렇게나 많다니. 괜찮다. 위치는 한번 잘 잡으면 어지간해서는 바꿀 일이 없으니까. 요 조그만 녀석들이 선호하는 노른자 땅의 조건을 알아보자.


"똑똑, 저기... 사장님, 부동산 보러 왔는데요."


[ 조망권 - 위협적 존재의 유무를 확인할 수 있는 탁 트인 시야 ]

강한 자만 살아남는 치열한 야생에서는 볼일을 보는 것조차 호락호락하지 않다. 집사가 주는 사료를 먹으며 방에서 뒹굴거리기나 하는 녀석들이지만 천적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려는 습성만은 여전하다. 일을 보면서도 적의 동태를 살필 수 있는, 어느 정도 트인 곳에 화장실을 두는 것을 추천한다. 부끄러움을 감수하고 안전을 택하는 냥이들의 생존 전략은 나도 좀 배울 필요가 있을 것 같다.


[ 일조권 - 언제나 뽀송뽀송한 모래를 유지할 수 있는 찬란한 햇살 ]

화장실은 습한 곳에 두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 종류를 막론하고 대부분의 모래는 습기를 빨아들인다. 그것이 고양이 모래의 존재 이유이니까. 잘 마르지 않은 모래는 냄새는 둘째 치고 세균이 번식하기에 좋은 환경을 조성한다. 축축한 모래를 밟는 고양이들의 기분도 썩 좋지는 않을 것 같다.


해도 잘 들고 조망도 나쁘지 않다. 이 정도면 나름 호텔 뷰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똥을 치우는 아내의 뒷모습이 아름답다.


[ 통풍권 - 변 냄새와 모래 먼지를 한 방에 날려줄 쾌적한 바람 ]

통풍이 잘 이루어지면 고양이만큼이나 집사도 행복하다. 냄새와 모래 먼지가 비교적 해소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고양이의 변 냄새만큼은 절대 사랑할 수 없을 정도로 독한 편이다. 다묘 가정이라면 그 위력은 배가 된다. 다른 녀석들의 변 냄새까지 코앞에서 맡아야 하는 녀석들을 위해 화장실은 꼭 통풍이 잘 되는 곳에 두자. 뽀송한 모래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은 덤이다.


[ 소음 공해 방지 - 방해받지 않고 일을 볼 수 있는 평화로운 적막 ]

시끄러운 장소는 나오던 것도 들어가게 만든다. 가뜩이나 예민한 녀석들이라 화장실도 조용한 곳에 자리해야 한다. 소심냥 구로는 일을 보다가 조금만 소리가 나면 끊고(?) 나온다. 명심하자. 그 피해는 우리가 본다. 사찰에서는 똥간을 해우소(解憂所)라 한다. 보살의 마음으로 녀석들이 근심과 번민을 해소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자.


캣타워 겸용 원목 화장실. 화장실을 거실에 둔 적도 있었다. 창문을 열어 놓을 수 없는 여름이나 겨울에는 냄새가 잘 빠지지 않았다.


[ 접근성 - 도보 1분 거리, 입구 넓고 쾌적함, 투룸 ]

집이 100평 정도 되지 않는 이상, 접근성이 웬 말이냐 할 수도 있겠지만 어쩔 수 없이 고양이 화장실을 사람 화장실에 두는 경우도 있다. 문을 열고 일을 보면 모를까, 공교롭게 배변 시간이 겹친다면 냥이 혼자 문밖을 서성이며 끙끙댈지도 모르는 일이다. 한편 접근성은 화장실의 물리적 형태와 개수도 포함한다. 아깽이라면 턱이 너무 높은 화장실은 적합하지 않다. 다묘 가정이라면 마릿수에 맞추어 화장실을 여러 개 구비하는 것이 적절하다. 나도 높은 평수로 이사 가고 싶다...


아이러니하게도 접근성은 좋아야 하는 반면, 화장실이 나름 기피 시설이라 식사하는 곳이나 자는 곳에서는 멀어야 한다. 이건 뭐, 이해가 가는 바이다. 변 냄새 맡으면서 먹고 싶지 않은 건 나도 마찬가지이다. 이 모든 조건들을 아우르는 똥간계의 노른자 땅이 바로 베란다이다. 가정마다 환경이 다르겠지만, 베란다라면 집사와 고양이 모두 만족할 것이라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이 집사가 똥 치우는 법


단군 할아버지도 무릎을 탁 칠 만한 기가 막힌 화장실 터를 찾았다면, 주저 없이 모래를 부어 보자. 어차피 고민을 거듭해도 더 좋은 자리가 나오지 않을 것이다. 모래를 세팅하는 데는 별다른 요령이 필요 없다. 모래를 붓다가 허리를 다치는 일이 없도록 요추 전만을 유지하고(이게 제일 중요하다.), 10cm 정도 높이가 될 때까지 살살 쏟아 주면 된다. 급한 마음에 들입다 부어 버리면 모래 요정이 되어 버릴 수도 있으니 조심하자.


Tip! 아무리 잘 터는 고양이도 흔적을 남기기 마련! 사막화 현상이 심할 경우, 사막화 방지 매트를 화장실 앞에 깔아 주면 좋다. 공간에 맞추어 잘라서 사용할 수 있는 제품도 있다.


얼마 전, 사막화 방지 매트를 깔았다. 화장실 옆 큰 선반에는 클라이밍 운동 장비와 각종 화장실 청소에 필요한 용품들을 보관해 두고 있다.


더러운 화장실을 이용할 때 기분이 썩 좋지 않은 건 고양이도 마찬가지이다. 빨리 화장실 좀 치우라고 집사를 괴롭히며 우는 건 차라리 낫다. 화장실을 치울 때까지 변을 보지 않으며 무언의 시위를 하는 까탈냥이들이 문제다. 냥이의 신장에 무리가 가고, 관계도 서먹해질 수 있으므로 하루에 한 번 이상은 반드시 청소해 주어야 한다.


귀찮아서 그렇지 응고형과 흡수형 모래의 청소법이 크게 다르지는 않다. 응고형의 경우, 모래와 함께 굳은 변이 부서지지 않게 삽으로 조심스레 내면 된다. 흡수형은 간편하다. 수분이 날아간 대변만 건져 내면 된다. 응고형의 경우, 변과 함께 일정량의 모래를 계속 버리게 되므로 바닥이 보인다 싶기 전에, 주기적으로 모래를 보충해 주는 것도 필수이다.


선반에는 비닐봉지와 종량제 봉투, 물티슈 등을 편하게 뽑아 쓸 수 있도록 구비해 두었다. 똥 삽과 똥 봉투가 바구니에 예쁘게 담겨 있다. 작은 쓰레받기도 준비해 두면 유용하다.


단, 2~4주마다 전체적으로 모래를 교체해 주어야 한다. 모래만 갈아줄 것이 아니라, 화장실 자체도 청소해 주어야 하는데 이때 향이 강하지 않은 세제를 사용하는 것이 좋다. 대부분 플라스틱 재질인 화장실에 스크래치가 많이 나면 세균이 번식하기 쉬우므로 가급적 부드러운 수세미를 사용해서 청소하는 것이 좋다.


Tip! 삽으로 떠낸 변을 바로 비닐봉지에 넣다가 흘리는 일이 부지기수다. 아내의 아이디어를 소개한다. 이럴 땐 아래와 같이 플라스틱 우유팩을 잘라서 활용해 보자.


삽으로 캐낸 감자들을 일단 우유팩에 담는다. 세 마리의 똥을 다 모아도 우유팩 하나에 들어간다. 굉장히 편리하다. 술에 취하지 않은 이상 모래 한 톨도 떨어뜨릴 리 없다.


농부의 마음으로 정성스럽게 캐낸 감자 한 봉지. 비닐봉지에 넣어 예쁘게 잘 묶고 나면, 미련 없이 종량제 봉투에 넣어 버리자.


길고 길었던 고양이 화장실 편을 마친다. 나도 다른 작가들처럼 크리스마스의 낭만을 이야기하고 싶다. 하필이면 화장실에 꽂혀서 아름다운 크리스마스이브 날, 똥간이나 논하고 있는 처지라니... 지금도 늦지 않았다. 모처럼 다시 일상적인 이야기를 시작해 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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