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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루아 정씨 May 05. 2020

68세대 이웃이 있다는 건

프랑스 지방도시에서 쓰는 방콕일기 45

5월 4일(격리 50일째) 월요일 맑음


아부바카가 우리 집 담벼락에 서서 셋째의 이름을 부르며 "노올자!"라고 했던 그 순간, 이웃과의 사회적 거리는 무너진 것으로 봐야 했다. 아부바카의 엄마가 사회복지시설에서 간호조무사의 보조 일을 한다는 말을 듣고 둘이 같이 안 놀면 안 될까, 하는 소심한 걱정을 한 적도 있지만 이미 둘 사이의 우정이 자리 잡고 있다는 걸 부인할 수 없게 됐다. 이젠 아부바카의 엄마가 감염되지 않길 바라는 소심한 기대를 하는 수밖에 없다.


사실 2주 전쯤인가, 며칠 동안 아부바카가 안 보이던 때가 있었다. 이웃집의 안니는 아내에게 문자를 보냈다. 아부바카의 엄마가 일하는 복지시설에서 감염자가 나왔다며, 아부바카의 엄마도 코로나 검사를 받았고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당분간은 아부바카가 안니의 집에도 오지 않고 자기 집에만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얼마 후 아부바카 엄마의 검사 결과가 음성으로 나오자 아부바카는 더 자주 안니의 집에 왔고, 셋째와 더 자주 붙어 다녔다.


아내는 이웃집 안니와 격리 이전보다 훨씬 더 친해져 있었다. 안니는 오늘도 우리 가족 모두를 초대해 크레페를 대접했다. 안니는 브르타뉴 출신답게 크레페와 함께 약한 과일주의 일종인 사과 시드르를 내놓았다. 아내와 안니가 친해지면서 우리는 아부바카 가족의 이야기에 대해서도 더 잘 알게 됐다. 기니 출신인 아부바카의 엄마는 동네의 부족장쯤 되는 유력한 집안의 아들과 사랑에 빠져 아이를 임신하게 됐는데, 혼전임신에 대한 안 좋은 시선 때문에 쫓기듯 프랑스로 망명했다고 했다. 시선도 시선이지만 남자는 기독교도, 여자는 이슬람교도였다. 기니를 지도에서 찾아보니 아프리카 서쪽 대서양 연안에 위치하고 있었다. 주변에는 시에라리온, 말리, 라이베리아 같은 나라들이 있는데, 이들 나라의 리스트와 기니에 금이나 철광석이 많다는 설명을 보자 괜히 무서운 나라일 것 같았다. 다이아몬드 광산, 내전, 총을 든 어린이, 마약, 가난, 기아 이런 단어들이 떠올랐다. 나의 선입견과 기니의 실제 상황은 아무런 연관성이 없을 가능성이 높다. 사람의 눈을 멀게 하는 두려움은 언제나 무지에서 비롯된다.


아부바카의 생물학적 아버지와는 결혼이 이뤄지기 어려운 사이였고, 만약 그대로 남았더라면 다른 남자의 두 번째, 또는 세 번째 부인으로 시집을 가게 되는 상황이라고 했다. 남자가 구해준 항공권으로 아부바카의 엄마는 홀로 프랑스에 와서 미혼모로 지내다가 직장도 구하고, 안니와 같은 고마운 사람도 알게 돼 새로운 삶을 살고 있는 거다. 안니는 이민자 구호단체를 통해서 알게 됐는데, 아부바카가 걷기 시작할 무렵부터 돌봐주고 있다. 안니는 아부바카를 손자로, 아부바카는 안니를 할머니로 대하는 것 같다. 안니는 딸이 하나 있는데, 자녀가 없다. 아직 초등학생도 아닌 아부바카가 읽고 쓰기를 평균 이상으로 잘하는 것은 순전히 안니의 덕이라고 아내와 나는 입을 모았다. 아부바카를 보면서 엄마가 누군지 몰라도 복이 많은 사람이라고 넘겨짚었는데, 엄마의 기구한 사연을 듣고 나니 이 험한 세상을 아부바카와 헤쳐가려면 그 정도 복은 필요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옆집으로 이사 온 지 1년이 채 안 된 안니와 자키를 보면 존경심이 들 때가 있다. 남 부럽지 않은 직장 생활을 하다 은퇴를 했으니 이제 남들 신경 쓰지 않고 그냥 자기만 보면서 삶을 즐겨도 되는데 말이다. 피 한 방울 안 섞인 아부바카를 정성으로 대하는 것이나, 사회단체에서 봉사하는 모습을 보면 매주 미사에 가는 가톨릭 신자는 아니지만, 더 기독교적인 삶을 실천하고 있는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든다. 예를 들면 « 네 이웃을 사랑하라 »와 같은 계명들 말이다. 내가 보기에 안니와 자키 커플의 모습은 68세대의 전형이다. 68 혁명의 세례를 받은 사람들을 뜻하는데, 이들은 모든 권위주의에 저항하는 차원에서 웬만해서는 존댓말(vous)을 하지 않는다. 평등과 인도주의 등을 몸소 실천하는 1950년대 태생들을 만나면 68세대가 떠오른다. 종교가 있느냐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아니, 오히려 종교조차도 권위주의의 소산으로 보고 배척하는 경우가 많다. 아내가 안니, 자키를 편안하게 받아들이는 이유는 장인 장모가 나이뿐 아니라 행동에서도 이들과 비슷한 점이 많다고 여기기 때문일 것이다. 다만 장인 장모는 종교적이라는 게 다르다.


실제로 안니와 자키가 68 혁명의 영향을 얼마나 받았는지는 알 수 없다. 그들의 행동으로부터 받은 나의 느낌이 그렇다는 것이다. 그리고 가톨릭 신자인 나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을 해본다. "나는 저들처럼 사는 게 가능한가?" 자발적 가난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듯한 매우 단순한 삶. 나는 아프리카 출신의 미혼모에게 정성을 다해 도움을 줄 수 있는가. 생판 모르는 시리아 난민들을 돌봐줄 수 있는가. 어려움에 처한 이들에게 마음을 여는 데서 그치지 않고 집의 대문까지도 열어줄 수 있는가. 안니와 자키가 아부바카 가족에게 하는 것처럼. 내가 정신이 멀쩡하다면 언제든 내게 되돌아올 무거운 질문들이다.


우리 아이들은 5월 11일이 아니라 5월 18일부터 학교에 나가는 걸로 결정했다. 학교에서 보낸 편지에 두루뭉술하게 표현돼 있어 우리가 이해하지 못했던 것은, 학생 규모를 10명 이하로 하기 때문에 두 반으로 나누어 오전 또는 오후반으로 운영한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급식실을 운영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즉, 오전반은 평소처럼 8시 30분까지 학교에 와서 11시 30분경 하교하고, 오후반은 13시 30분경 학교에 와서 16시 30분경 하교한다. 집에 데려와서 점심을 먹이고 다시 오후에 학교에 데려다주는 번거로운 과정은 없다는 이야기다.


우리는 어차피 코로나 바이러스의 유행은 이른 시일 내에 사라질 것이 아니기 때문에 함께 사는 법을 배운다는 차원에서 아이들이 학교에 가는 게 낫겠다고 판단했다. 또 학교에서 보내주는 학습자료들이 날마다 온다고 해도 집에서 할 수 있는 것은 한계가 있다는 걸 깨달았다. 홈스쿨링을 하고 있는 모든 가족에게 경의를 표하는 바이다.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기로 결정은 했지만, 어쩐지 5월 11일 전국적으로 학교 문이 열리고 나서 일주일이 안 된 시점에 프랑스의 어딘가에서 학교를 중심으로 한 대감염이 발생해 5월 18일이 되기 전에 다시 학교가 폐쇄될지도 모른다는 느낌적인 느낌이 든다. 사실 아이들이 학교를 가는 것보다 나를 더 설레게 하는 것은 5월 11일부터 증명서를 쓰지 않고도 100 킬로미터 이내는 어디든 돌아다녀도 된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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