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테두리e Mar 27. 2024

의식(儀式) : 삶을 풍요롭게 하는 나만의 룰

의식을 치렀다.

병에 걸려서 언제 병원에 실려 갈지 모를 상황에 있었던 어느 여성에 관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이 여성은 20년 동안 매일 저녁 입원 준비를 했다고 한다. 다음 날 먹을 음식을 준비해 놓고, 옷가지를 챙기고 , 청소를 하고, 작은 여행 가방을 꾸려 현관에 갖다 둔 뒤에야 잠자리에 든 것이다. 그녀는 자기가 병원에 입원하더라도 가족들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기를 원했고, 그렇게 자신의 운명을 담담하게 받아들인 것이다. 혹시 일어날지도 모를 일에 대비가 되아 있으면 마음이 훨씬 편하다.

 

그녀는 혹시 일어날지도 모르는 일에 대한 대비를 어떻게 매일 했을까? 아픈 내가 가족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만일의 경우를 대비하는 것이며 그로 인해 자신도 편안한 잠자리에 들 수 있었을지 모른다.

 

먹고 이야기하고 설거지를 하는 것처럼 일상의 평범함 속에서도 의식을 치르듯이 한다면 단순하고 반복적인 행동에 신성함을 부과할 수도 있다.


의식 : 행사를 치르는 일정한 법칙, 또는 정하여진 방식에 따라 치르는 행사


기상 의식 :  

아침에 일어나는 일은 언제나 힘들다. 조금 더 자고 싶고, 눈을 뜨기가 힘들고, 몸을 이리저리 비틀다가 손을 첫 번째로 뻗는 곳은 핸드폰이다. 핸드폰의 기사를 검색하다 의식의 흐름대로 넘어가는 곳은 인스타크램의 짧은 릴스로 넘어간다. 릴스의 세상에 빠지면 30분은 훌쩍 넘어간다. 일단, 아침 기상의식은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블루투스 스피커에 연결을 한다. 스피커를 작동시킨다.  좋아하는 음악이 흘러나오는 순간 머리는 맑아지고, 몸은 조금씩 꿈틀꿈틀 요동을 친다. 머리와 몸이 깨이는 순간, 침대를 벗어나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진하고 구수한 커피 한잔도 덩달아 생각난다.

 

글쓰기 의식 :

글을 쓰는 행위도 의식으로 만든다. 의식화해 놓지 않으면 일상의 편안함 속에 잠식되어 쓰기는 강 저편에 가버린 지 오래가 된다. 연재를 시작한 것도 글쓰기 행위를 의식처럼 각성시키기 위함이다.

우선, 따뜻한 커피나 차를 준비한다. 텔레비전이나 흘러나오는 음악을 모두 잠시 멈춤 한다. 내가 좋아하는 집안의 초록 소파에 몸을 기대고 첫 문장부터 생각한다. 첫 문장을 생각해 냈다면 다음은 좀 쉽다. 때로는, 집이 아니라 아침 일찍 문을 여는 카페를 찾아 나서기도 한다. 카페의 창가 자리에 앉아 길게 뻗은 초록 잎들 사이로 비치는 햇살을 만끽하며 오고 가는 사람을 구경하면서 글을 쓰는 것은 소소한 즐거움을 준다. 쓰고 퇴고하고 발행하면 오늘 하루 뭔가는 했다는 성취감은 그저 따라온다 ,



장보기 의식 :

사실 장보기가 제일 힘들다. 자취하는 아들의 장보기까지 함께 하다 보니 두 집 살림의 식재료를 해치워야 하기 때문이다. 일주일의 장을 한 번에 보는 편이라 일주일 식단을 해결하려면 만만찮게 머리를 써야 한다.

그래서, 장보기 전 의식은 내가 자주 애용하는 블로그나 인스타 그램의 레시피를 활용하기 위해 검색을 한다. 건강식단과 다이어트 레시피, 빠른 시간 안에 조리하는 음식메뉴가 넘친다. 무엇보다 SNS에 올라와 있는 사진은 군침을 돌게하고 사진 속에서도 맛있는 향기가 전해져 온다. 사진을 보며 음식을 만들어 먹고 싶다는 상상 속에 나를 먼저 빠뜨린다. 그리고 장보기 마켓에 들어가면 즐거운 마음으로 클릭을 할 수 있다.


일어공부 의식 :

일어공부를 8개월째 하고 있는데 올해는 일본어능력시험 5급에 도전하려고 한다. 문제는 늦깎이 공부가 그리 쉽지 않다. 아니, 무척이나 어렵다. 언어 공부의 의식은 일어공부를 하는 방을 따로 마련했다. 군대에 간 작은 아들 방 책상에 일어 책을 항상 펼쳐 놓고 아끼는 주황색 스탠드도 한편에 둔다. 진하고 부드러운 질감의 하얀색 블랙윙 연필도 자리를 마련한다. 내가 앉기만 하면 되는 상태로 세팅을 해 두는 것이다. 공부란 힘든 작업이라 내가 마음에 드는 것들로 안락하게 마련해 놓은 공간은 일어를 하는 순간을 황홀한 의식처럼 만드는 것이다.

 



일상적인 일도 의식처럼 만들면 좋을 것 같다.  화장을 하고 옷을 입는 순간, 오랫동안 갖고 싶었던 물건을 사는 순간, 먹을 간식을 잔뜩 사놓고 비디오로 영화 한 편을 보는 주말 저녁, 비 오는 어느 날의 몽상, 매주 하지만 언제나 새롭게 다가오는 월요일에 처리해야 할 일들,



당신의 삶에는 어떤 의식이 있는가?

그것들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

평범한 것들도 의식을 통해 특별하게 만들면 더할 나위 없겠다. 그로 인해 우리의 삶이 더 의미 있고 풍요로워지지 않을까.

이전 07화 긴긴밤 : 작은 발자국으로 걸어가던 이를 생각하는 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