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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테두리e Mar 20. 2024

긴긴밤 :  작은 발자국으로 걸어가던 이를 생각하는 밤

동화 '긴긴밤'을 읽고

출처  '긴긴밤'

수많은 별이 지켜보는 가운데 촘촘히 이어진 두 발자국,  어디를 향해 가는 것일까? 어떤 의미로 서로 동행을 택한 것일까?


작은 걸음으로 걸어가는 이를 큰 발자국으로 걸어가는 이는 한결같은 간격을 유지하며 함께 한다. 가는 길을 가로막는 것은 없는지, 위험한 것은 없는지 온몸의 촉각을 곤두세우는 큰 발자국으로 걸어가는 이는 몸의 긴장과는 달리 입가의 근육은 아주 느슨해진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헤벌쭉 벌어지는 입, 자신도 못 느낀다. 작은 발자국으로 걸어가는 이는, 동행하는 이의 염려와 사랑 속에서 마음껏 탐색해 나간다.


긴긴밤- 망고열매 색깔 하늘

작은 발자국으로 걸어가는 이는 아침나절 내도록 두 발 자전거를 타며 운동장을 돌고 있다.  큰 발자국으로 걸어가는 이는 자전거 뒤 쪽을 잡으며 작은 이의 자전거가 달리는 대로 뛰어간다.  "손 놓지 마!" 천천히 가던 자전거는 어느새 속도가 빨라져 있고 큰 발자국이는 쫓아가려고 해 보지만 이내 헛발질을 하며 손을 놓고 주저앉고 만다. 작은 이는 잡아주는 길에 대한  믿음으로 이제 넘어지지 않고 앞으로 쭈욱 나아간다. 마음을 굳히고 비장하게 큰 발자국 이에게 말한다.

"나 혼자 해 볼게요. 나 혼자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정말 괜찮겠어?"

"내가 괜찮은지 계속 봐줘야 해요"

"그럼"

작은 이는 천천히 원을 그리며 달린다. 자전거와 한 몸이 된 것처럼 아주 가볍게 움직여나간다. 내 앞을 앞서던 공기를 모두 뒤로 보내며 달려가는 기분은 지금껏 느껴보지 못한 기쁨일 것이다. 이제 두려울 것이 없어진 작은 이는 운동장을 자유자재로 달리기 시작했다. 멀리서 걱정하고 있는 큰 발자국 이에게 슬쩍 시선을 준다. 하지만 조금 더 달리고 싶다.  새로운 풍경에 완전히 매료된 작은 이는 시간 가는 줄 모른다.

"대단해!  너 혼자 해낸 거야!"

큰 발자국 이와 작은 발자국 이는 하늘이 망고열매 색깔로 물들 때까지  함께 달리고, 쫓아가고 웃고 넘어졌다.


밤이 가장 길었던 날도 기억한다.

작은 이가 밤에 갑자기 불덩이가 되면 큰 발자국이는 급한 마음에 물에 적신 수건으로 밤새도록 닦아내며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우기도 했다. 공부방 꺼지지 않는 스탠드 불빛을 보며 큰 발자국이 도 쉽사리 잠들지 못하며 긴긴밤을 함께 보냈다.



 '긴긴밤'은 제21회 어린이 문학상 대상 수상작이다.  이 책은 지구상의 마지막 하나가 된 흰 바위코뿔소 노든과 버려진 알에서 태어난 어린 펭귄이 수없는 긴긴밤을 함께하며, 바다를 찾아가는 이야기이다. 울퉁불퉁한 길 위에서 엉망인 발로도 다시 우뚝  일어설 수 있게 한 것은, 잠이 오지 않는 길고 컴컴한 밤을 기어이 밝힌 것은 사랑 같은 기적이고 연대임을 알리는 동화책이다. 긴긴밤을 이겨내고 나아갈 수 있는 것은 서로 각자 너무나 다른 '우리'의 힘을 보여준다. 코뿔소 노든은 펭귄과 함께 하며 작은 이 가 자신만의 바다를 찾아 나아갈 수 있도록 함께 한다.


그 여정은 부모와 자식의 우리네 여정과 무척이나 닮았다.

 

이제 어린 펭귄은 코뿔소 노든과 헤어지고  혼자만의 바다에 뛰어들 것이다. 혼자만의 바다에서 자기 몫의 두려움을 안고 감당하며 자신만의 세계로 나아갈 것이다.


내가 동행했던 작은 발자국으로 걸어가던 이는 어느새 나보다 발자국이 커졌다. 나란히 걸어간 발자국들은 퇴색하여 일 년에 몇 번 있을까 말 까다. 한 때 작은 이는 이제 성장하여 홀로 수많은 긴긴밤을 견뎌나가고 있고 앞으로 견뎌내야 할 것이다. 작은 이를 응원하고 보살폈던 수많은 '우리'라는 연대는 어쩌면 '사랑'이라는 이름하에 기적을 만들어 내었는지도 모른다.


자신의 소중한 모든 것을 잃고도 마지막 하나 남은 생명, 어린 펭귄이 마땅히 있어야 할 곳인 바다를 찾기 위해 길을 떠나는 노든, 한 번도 본 적 없는 바다를 향해 떠나는 노든의 마음은 내가 '부모'여서 많은 공감이 되었다.



코뿔소의 바다인 초록의 평원은 펭귄의 바다와 다르다.


"나는 여기에 남을게"

"뭐라고요? 여기가 어딘지도 모르잖아요"

"저기 지평선이 보여? 초록색으로 일렁거리는. 여기는 내 바다야."

"그러면 나도 여기에 있을게요"

"아니야, 는 네 바다를 찾으러 가야지. 파란색 지평선을 찾아서"

 

-긴긴밤 발췌 -



나의 작은 이는 자신만의 푸른 바다를 찾아 떠나간다. 긴긴밤을 헤매다 어느 날 자신만의 반짝이는 별을 찾을 것이다. 큰 발자국으로 걸어가며 작은 이만 보던  나는 이제 나만의 초록 바다를 찾아야겠다. 초록색으로 일렁이는 지평선과 망고열매색깔 하늘이 있는 나만의 바다를.



※ 글과 그림이 너무 좋았던 '루리'작가님의 책을 읽고 단상을 올렸습니다. 어른이 읽어야 할 동화책이란 생각이 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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