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둘째를 위한 육아서를 주문했다. 둘째는 발로 키운다더니 정말로 첫째에게 쏟은 정성에 비해 반의 반도 안 하고 있었다. 속죄하는 마음으로 따끈한 육아서 경전을 읽어내려갔다.
요즘 엄마들은 아이가 맞고 오면 너도 때리라고 가르칩니다. 그건 옳지 않아요. 아이의 마음을 공감해주고....
응? 때리라고 하면 안 된다고?.. 나 벌써 그렇게 키운 지 10년째인데..
나는 첫째의 순둥이 같은 행동이 싫다. 나를 닮은 것 같기 때문이다.
이 망할 놈의 DNA가 우리 딸한테 간 것이냐.. 맘속으로 한탄하고 있었는데, 퇴근길에 우연히 반 친구들과 노는 큰애를 발견했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하는데 이렇게 하는 게 맞네.. 저렇게 하는 게 맞네.. 서로목소리를 높이고 있었다. 당연히 내 눈은 첫째에게로 꽂혔다. 이왕이면 리더십 있고 (상처 받기보다) 깍쟁이 같이 당당하게 목소리를 내길 바랬다.
그런데 이게 웬 일? 헐랭이처럼 헤헤 거리며 친구들이 이러자면 '끄덕' 저러자 하면 '끄덕'.. 휴.. 정말이지 맘에 들지 않았다. 속상해서 고개를 돌리려는데 키는 작지만 때글때글한 여자애가 눈에 들어왔다.
고놈 참 야무지네.. 나도 저렇게 키워야지..
그리고 6년 터울로 둘째를 낳았다. 그런데 이놈은 떡잎부터 뭔가 다르다. 그래 성공했어! 둘째는 어렸을 때부터 야무졌다.
그래! 내 헐랭이 DNA 따위는 둘째 놈한테 섞이지 않은 거야! 쾌재를 불렀다. 어린이집에서 전화도 받았다.
“어머니~ 친구를 때렸어요~ 친구와 잘 지낼 수 있게 집에서도 말씀해 주세요~”
전화에 대고는 연신 ‘죄송합니다’를 반복했지만.. 사실 마음 한편에선..
‘됐어! 드디어 우리 집에도 야무진 놈이 나왔어’라며 승리감 비스무리한 감정이 느껴졌다.
내 십 년 먹은 체증이 사라진 듯한 느낌! 바로 그 느낌이었다!
사실 내가 헐랭이 과다. 언제 한번 ‘아니요’를 시원하게 뱉어본 적이 없다. 그래서 내 20대를 그렇게 보냈을까..
‘계약직인 내가 감히 이런 업무를 해도 돼?’ 할 정도로 막대한 주요 업무를 맡았다. 석사학위도 없는 내가 대한민국 굴지의 대기업 사원을 위한 비즈니스 영어 집중강좌를 계획하고 운영도 해보았다. 내 사수인 연구원은 박사학위를 호주에서 하나.. 영국에서 하나.. 두 개나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가 하루 종일 하는 일이라곤 그냥 대학생 알바도 할 수 있는 그런 일이었다. 모두가 혀를 내둘렀다.
나는 신규강좌가 오픈할 때면 빨강 날이 웬 말이냐! 추석이고 설날이고 자진 반납을 하고 직장에 나왔다. 물론 사수가 설날에도, 추석에도 나오라고 직접 말한 적은 없었다. 하지만 그때 나오지 않으면 절대 할 수 없는 업무의 양이였기 때문에 책임감이 내 발길을 회사로 이끌었다. 그런데 어째 일을 열심히 하면 할수록 내일은 더욱더 늘어만 갔다. 마지막 퇴사하는 날, 업무 인수인계를 3명한테 할 정도로 말이다.
그렇게 열심히 내 20대의 반을 보낸 곳에서 모두가 퇴사할 때 받는 송별회와 격려금을 받지 못했다. 사수가 내가 마지막으로 맡은 프로그램에서 두 반이 서로 교재가 바뀌어 출판됐다는 사실을 마치 ‘내가 나라를 팔아먹은 매국노’인 것처럼 발표했기 때문이다.
난 직장을 그만둔 마지막 날 울면서 퇴사했다.
그 후로도.. 직장에선 나에게 여러 번 전화가 왔다.
마지막에 받은 전화는.. 모의 토익시험 볼 때 학생들에게 나눠준 4B연필 다발을 어디다 두었냐는 것이다.
그래, 하다 하다 별 전화를 다하네.. 라며 ‘네가 찾아봐라 연필!’을 엄청 친절하게 돌려가며 잘 설명해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