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곡도 Jan 11. 2021

22






     소녀가 떠난 후 어린왕자는 그 자리에 오랫동안 앉아있었다. 무언가를 생각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아무 생각도 하지 않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그건 그에게는 불가능한 일이었기 때문에 어린왕자는 어떤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때 한 낯선 사람이 어린왕자에게 다가왔다.


     “드디어 만났구나.” 


     그가 감격해서 말했다.        


     “누구지?”


     어린왕자가 시큰둥하게 물었다. 어린왕자는 지금 누구와도 대화를 나누고 싶지 않았다.      


     “나는 연구소장이란다. 널 만나서 반갑구나. 연구실에 네가 없어서 한참이나 찾아다녔단다.” 


    “나를 알아?”  


     “알다마다. 내가 너를 만들었는 걸.”


     어린왕자는 그제서야 연구소장을 제대로 바라보았다. 큰 키에 커다란 코트를 겹겹이 겹쳐 입은 그는 입이 웃고 있을 때는 눈이 웃지 않았고 눈이 웃고 있을 때는 입이 웃지 않아서 종잡을 수 없는 얼굴이었다.


     “당신이 나를 만들었다고?”


     어린왕자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그는 인간이 자신의 창조자라고는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물론 슈퍼컴퓨터 뒤에는 인간의 의지가 있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특정 개인의 실존을 떠올린 적은 없었다.


     “아, 물론 직접 실행에 옮긴 건 슈퍼 컴퓨터였지. 하지만 내가 기획하고 지시를 내렸단다. 너에게 ‘어린왕자’라는 이름을 지어준 것도 나인 걸. 그러니까 너는 애초에 내 머릿속에서 태어난 거나 다름이 없어. 이렇게 완성된 실체를 보니 기쁘기 그지없구나. 마무리가 덜 된 점이 다소 아쉽기는 하다만.” 

소장은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고는 어린왕자의 둘레를 돌며 어린왕자를 꼼꼼히 살펴보았다.


     “왜 나를 만든 거야?”


    어린왕자가 물었다. 이것은 정말이지 너무나 오랫동안 품고 있던 질문이었다.


     “아, 넌 무기로 만들어졌단다.”


    여전히 어린왕자를 살펴보며 소장이 말했다.


    “무기?” 


    어린왕자가 되물었다. 


    “내가 무기란 말이야?”


    “그래, 그렇다니까. 자부심을 가져도 좋아. 너는 최고의 살상 무기니까.” 


    “인간이 다른 인간을 죽이기 위해 날 만들었단 말이야?” 


    “뭐, 당연하잖니. 인간의 수준이라는 게 말이야. 살인 아니면 섹스 생각뿐이지. 아, 섹스 로봇도 만들긴 했는데 너처럼 성공적이지는 못했어. 너무 완벽했기 때문인가 봐.” 


     소장은 대수롭지 않게 말하며 어린왕자에게 손을 뻗었지만 어린왕자는 바짝 옆으로 물러났다.


    “하지만 이상하잖아. 무기라면서 왜 날 어린아이의 모습으로 만든 거지?” 

 

    어린왕자가 외쳤다.


    “저런, 뻔하잖니. 누구도 어린아이는 의심하지 않기 때문이야. 사람들은 어린아이가 순수하고 선하며 무해하다고 믿고 있거든. 하, 낭만주의자들과 소위 작가라는 작자들이 사람들의 머릿속에 심어 넣은 가장 어리석고 조잡한 미신이지. 심지어 모자 비스무리한 걸 그려놓고는 아이들은 그 그림에서 보아 뱀이 삼킨 코끼리를 볼 수 있다느니 어떻다느니 헛소리를 지껄이는 인사도 있었다니까. 나도 실험해 봤지만 그런 대답을 한 아이는 단 한 명도 없었어. 쳇, 천사일 필요가 없는 아이들을 굳이 천사라고 치켜세우면서 오히려 아이들을 얕보고 바보 천치 취급하는 건 바로 그들이 아닌가.”


    소장이 혀를 차는 동안 어린왕자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잠시 그대로 서 있었다. 자신의 탄생 이유와 본질이 딱히 유쾌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제 와 달라질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런데 왜 나를 찾은 거야?” 


    어린왕자가 물었다.


    “지금까지 뭘 들은 거니. 내가 다 설명했잖아. 넌 무기로 만들어졌다고. 무기를 어디에 쓰겠어?” 


    “누구를 죽일 생각인데?” 


    “모두 다.” 


    “모두 다라고?” 


    “그래, 모든 인류를 다 말이야.” 


    어린왕자는 어안이 벙벙했다.


    “하지만 왜 그렇게 해야 하지? 보다시피 세상은 이미 멸망했잖아.” 


    “그래, 세상은 멸망했지. 그런데도 사람들은 아직 살아있어. 지저분하게 말이야.” 


    “지저분하다고?”


    “생명 말이야.”


    “생명이 지저분해?” 


    어린왕자는 인간의 언어 사용 방식에 다시 한 번 경탄하며 물었다.


    “물론이지. 이 세계를 봐. 엉망진창이잖아. 하지만 세계가 엉망진창인 게 아니야. 바로 생명이 엉망진창인 거지. 그중에서도 가장 엉망진창인 건 바로 인간의 생명이야.”


    어린왕자는 잠시 생각한 끝에 말했다.


    “그건 사실이야.”


    “하, 이제야 우리가 의견 일치를 보는구나.”


    소장이 또다시 어린왕자에게 손을 뻗으려 했지만 어린왕자는 다시 그 손을 피했다.


    “하지만 인간을 모두 없애는 게 과연 옳은 일일까?” 


    어린왕자가 물었다.


    “세상에. 무기가 옳고 그르고를 따지다니. 인격은 정말이지 거추장스럽구나. 인내심을 가지고 대답하자면, 물론 그것은 옳은 일이란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들이 원하고 있기 때문이지.”


    소장이 지휘자처럼 손을 휘저으며 말했다.


    “하지만 인간은 죽고 싶어 하지 않아.” 


    어린왕자가 말했다.


    “아니, 인간은 죽고 싶어 해.” 


    소장이 똑똑한 목소리로 말했다.


   “물론 몇몇은 죽고 싶어 하긴 하지만…….” 


    어린왕자는 빨간 원피스의 소녀를 떠올리며 더듬거렸다.


    “아니 아니, 모든 인간이 죽고 싶어 해. 하나도 빠짐없이 모두. 단지 그걸 깨닫지 못했을 뿐이지.” 


    “모든 인간이?” 


    “물론이지. 그건 인간인 내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단다. 원한다면 보증서를 써줄 수도 있어. 물론 미시적으로 보면 인간이 죽고 싶어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 하지만 그건 단지 그들이 나약하고 비겁하기 때문이야. 그래서 죽고 싶은데도 죽지 않으려고 발버둥 치는 거야. 그것이 바로 인간의 모든 모순과 부조리와 기만의 본질이란다. 사실상 인간은 인류의 거대한 자살을 기다리며 살아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야.”


    “그럼 왜 사람들은 계속해서 아이들을 낳는 거지?” 


     “인류를 자살시켜줄 구세주의 탄생을 기다리고 있는 거지. 그리고 내가 바로 그 구세주가 될 거야.”


    어린왕자는 소장의 주장이 도무지 이성적이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동시에 인간의 진리란 본래 이성적이지 않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자살이라니, 인간은 정말 이상해.”


    어린왕자가 말했다.


    “아니, 너도 이해할 수 있을 거야. 너에게도 자폭 기능이 있으니까.”


    어린왕자는 순간 굳어버린 것처럼 꼼짝도 하지 않았다. 다만 붉은 눈동자만이 더 붉게 타올랐다. 어린왕자는 뻣뻣하게 고개를 들었다.


    “내가 자살할 수 있다는 뜻이야?”


    “뭐, 정 그 단어를 쓰고 싶다면, 그래. 네가 자살하면 대도시 하나쯤은 거뜬히 날려버릴 수 있단다. 대단하지?”


    “지금 당장이라도 가능해?”


    “아니, 안타깝게도 마지막에 자살을 작동시키는 명령 코드를 완성하지 못했지 뭐냐. 그놈의 슈퍼컴퓨터가 갑자기 정지하는 바람에 말이야.” 


    어린왕자는 고개를 숙이고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조용히 입을 열었다.


    “당신 말대로 자살이 인간의 본질이라면, 인간은 정확하게 나를 그들의 형상대로 만든 셈이군. 나는 인간과 전혀 닮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나는 내 생각보다 훨씬 더 인간적이었던 거야.”


    “완벽하게 인간적이지.” 


    소장이 말했다. 어린왕자의 얼굴에 옅은 미소가 떠올랐다.


   “그럼 모든 인간이 자살당한 후에 당신은 어떻게 할 셈이지?” 


    어린왕자가 물었다.


    “물론 나도 자살할 거야. 모든 인류의 시체 더미 가장 꼭대기에서 말이야. 나는 인류의 최후를 지켜볼 것이고, 그 최후를 완성할 것이며, 최후 그 자체가 될 거야.” 


    소장이 희열에 차서 말했다. 어린왕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알겠어. 이제 난 모든 걸 이해했어.” 


    그리고는 소장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당신이 옳아.”


    소장은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그리고 두 주먹을 흔들며 수많은 대중에게 연설하듯 외쳤다.


    “자, 이제 인류에게 더 이상 실패의 역사는 없을 거야. 아니, 아예 역사란 게 없는 거지. 이것이야말로 인류의 실현이고, 문명의 정점이며, 역사의 완성인 것이야.” 


     소장이 또다시 어린왕자에게 손을 뻗었다. 이번에는 어린왕자도 피하지 않았다. 


    “그래. 나는 지구상의 모든 사람들을 죽일 거야.” 


    어린왕자가 말했다. 


    “하지만 순서는 조금 바꿀 거야.”


    어린왕자는 소장의 목을 비틀어 버렸다.          





(계속)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