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왕자가 이야기를 마쳤을 때, 나는 공포에 휩싸여 눈을 부릅뜨고 어린왕자를 바라보았다. 어린왕자는 천진한 얼굴로 나를 가만히 올려다보고 있었다. 어린왕자의 이 어린아이 같은 외모가 나에게 얼마나 절대적인 착각을 불러일으켰는지를 깨닫자 걷잡을 수없이 몸이 떨려왔다.
“믿을 수 없어.”
나는 겨우 목소리를 짜내었다. 그러나 몸의 떨림은 멈추지 않았다.
“정말 네가 사람들을 죽였어? 그 어린 소녀도?”
어린왕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정말 세상 사람들 모두를 죽일 셈이야?”
내가 외쳤다. 그러나 두려움 때문에 목소리를 겨우 알아들을 수 있을 정도였다. 나도 죽일 거냐는 질문은 차마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어린왕자는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입을 열었다.
“나와 함께 가자.”
어린왕자는 자리에서 일어나 앞장서서 걷기 시작했다. 나는 그 뒤를 홀린 듯이 따라나섰다. 한밤중이었다. 도시는 땅 밑으로 깊이 가라앉은 것처럼 어둡고 조용했다. 어린왕자는 문득 멈추어 서서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무너진 건물들 사이로 별들이 쏟아질 듯 가득했다.
“별들을 보면 무슨 생각이 들어?”
어린왕자가 물었다.
“아름답지.”
진부했지만 다른 대답은 생각나지 않았다. 어린왕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아름답다’는 게 무슨 뜻인지 모르지만 별들을 보면 알 것만 같아.”
어린왕자가 말했다. 그리고 잠시 잠자코 있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
“하지만 실은 별들이 아름다운 게 아니야. 만약 사람들이 모두 사라진다면 별들은 여전히 하늘 높이 빛나겠지만 아름다움도 영원히 사라지는 거야.”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 와중에 별이니 아름다움 따위에는 아무 관심도 없었다. 내 머릿속은 어린왕자로 부터 인류를 지켜내야 한다는 생각과 어린왕자에게 그저 내 목숨이라도 구걸해야 한다는 생각들이 뒤섞여 뒤죽박죽이었다.
“사라지는 거야.”
어린왕자는 한 번 더 중얼거리더니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우리는 몇 시간이고 걷고 또 걸었다. 얼마쯤 걸었을까. 해가 뜨기 시작할 무렵 우리는 막 도시를 벗어나고 있었다. 언덕 아래로는 아침 햇살을 받아 새하얗게 빛나는 사막이 끝도 없이 펼쳐져 있었다. 거대한 사막은 마치 이 작은 도시를 제외하고 온 지구를 뒤덮어버린 것 같았다. 어린왕자는 망설임 없이 터벅터벅 그 사막을 향해 나아갔다. 나도 뒤를 따라갔다. 그리고 마침내 사막에 도착했을 때 나는 그것이 모래가 아니라 온통 사람의 뼈라는 것을 알았다. 새하얀 뼈가 온 땅을 뒤덮고 있었다. 나는 그만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