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그게 바로 여섯 해 전이다.
이 이야기를 나는 지금껏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다. 슬퍼질 때면 피곤 때문이라고 스스로 둘러대곤 했다. 이제 내 슬픔도 조금 가시었다. 아니, 가셨다기보다는 적응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여전히 나는 아침에 잠에서 깰 때마다 똑같은 충격을 받는다. 다만 그 충격에 적응이 되었을 뿐이다.
내가 이 글을 쓰고 있다는 건 내가 자살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나는 자살하지 않았고 아이를 유산하지도 않았다. 나는 살아남았고 아이를 낳았다. 어린왕자가 그토록 신신당부했는데도 소용없었다. 그래, 내가 비겁하고 이기적이라는 걸 나도 안다. 어리석고 부당하다는 것도 인정한다. 그러나 나도 어쩔 수 없었다. 홀로 죽고 싶지 않았고, ‘최후’가 되고 싶지 않았고, 계속 ‘인간’으로 남고 싶었다. 설사 이 아이가 홀로 죽어야 하고, ‘최후’가 되어야 하며, 결국 자신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게 된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그러나 이건 비단 나만의 잘못은 아니다. 원래부터 모든 부모들이 하던 짓거리가 아닌가. 죽어야 할 아이를 낳고 죽도록 내버려 두는 것. 다만 내가 그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그런 짓을 모성이라느니, 사랑의 결실이라느니, 자식을 위해 목숨도 바칠 수 있다느니 따위로 미화하거나 정당화하지 않는 것이다. 오히려 반대로 나는 그것이 얼마나 끔찍한 죄악인지 똑똑히 인식하고 있으며 매일매일 죄의식에 짓눌린 채 살아가고 있다.
생명은 태어나지 않는 것이 좋다. 모든 생명은 사라지는 것이 좋다. 그것이 옳은 일이다.
나는 마지막 날 어린왕자가 내게 주었던 유리병을 지금도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 언젠가 때가 되면 내 아이에게 물려줄 것이다. 그리고 어린왕자가 내게 했던 얘기를 아이에게도 똑같이 하게 될 것이다.
“마음대로 해. 계속 살아가든지, 아니면 자살하든지.”
아이도 나와 같은 고통과 절망을 느끼겠지. 자신의 목숨을 가지고 저울질하며 번민하겠지. 나를 영원히 원망하고 증오하겠지. 그것이 나를 슬프게 하지만 한 편으로 위로가 되는 것도 사실이다.
세상은 아직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