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 아, 일반화 하지 마. 난 인간도 아니고, 동물도 아니고, 그렇다고 인형도 아닌 그들의 애매모호함이 싫었으니까.
손님 물론 비유만큼이나 일반화도 위험하죠.
남편 하지만 비유와 일반화 없이 무슨 말을 할 수 있겠어요? 누구에게도 상처 입히지 않고 말하는 건 불가능 해요.
아내 옳은 말이야. 오늘 당신이 내게 몸소 보여줬지.
남편 그건 전혀 다른 얘기잖아. 내가 한 건 비유나 일반화가 아니라 진솔한 고백이었어.
아내 (남편 흉내를 내며) 난 채식주의자야. 이거야말로 더할 나위 없는 비유이자 일반화지.
남편 그러니까, 내가 나 자신을 채식주의자로 비유하고 있다는 거야? 내가 나 자신을 채식주의자로 일반화하고 있는 거라고?
아내 그래, 바로 티거와 피글렛처럼.
남편 뭐어?
아내 호랑이인 티거가 새끼 돼지인 피글렛을 잡아먹지 않는 건 그들이 친구 사이이기 때문이 아니야. 그들 모두 똑같이 솜과 천으로 만들어진 인형이기 때문이지. 호랑이 모양을 한 솜인형과 새끼 돼지 모양을 한 솜인형. 그래서 자신을 호랑이라고 생각하는 솜인형과 자신을 새끼 돼지라고 생각하는 솜인형. 그래서 호랑이처럼 용감해진 솜인형과 새끼 돼지처럼 겁에 질린 솜인형.
손님 와우, 이게 동심 파괴인지 동심 보호인지 모르겠네요.
아내 동심이란 비유와 일반화의 남용에서 비롯된 인지부조화적 오류에 불과해요. 그건 비유와 일반화가 진짜 현실에서 완전히 동떨어져있기 때문이죠. 하지만 아이들은 알아야 해요. 진짜 세상에서 진짜 호랑이는 진짜 돼지를 잡아먹는다는 걸요. 그리고 호랑이가 돼지를 잡아먹는 건 잔인하거나 부당한 일이 아니라 지극히 당연하고 옳다는 사실을 말이에요. 마땅하고, 정당하고, 심지어 정의롭죠. 그런데 이런 동화들이 아이들을 다 망치고 있어요. 아이들에게 평범한 어른이 되기보다는 특별한 어린아이가 되기를 강요하면서요.
남편 그게 그렇게 나쁜 일이야?
아내 그런 아이들이 자라서 당신처럼 채식주의자가 되지.
남편 그게 그렇게 나쁜 일이야?
아내 진짜 현실을 알려줄까? 채식주의는 채식과는 아무 상관도 없어. 채식주의자들은 채식을 하기 때문에 채식주의자가 되는 게 아니라 채식주의자가 되기 위해 채식을 하는 거니까. 만약 세상의 모든 인간들이 채식주의자가 된다면 그들은 곧바로 육식주의를 선언할 걸. (노래하며) 티거에 대해 가장 멋진 사실은 바로 세상에 티거는 나 하나뿐이란 거야.
손님 머리는 고무로 만들어졌고
꼬리는 용수철로 만들어졌지
그들은 탱탱하고, 통통하고, 퉁퉁하고, 팅팅해.
재밌어. 재밌어. 재밌어. 재밌어. 재밌어!
하지만 티거에 대한 가장 멋진 사실은
세상에 티거는 나 하나뿐이라는 거야!
남편 (잠시 침묵) 당신은 나를 전혀 모르는 사람인 것처럼 얘기하는구나. 마치 자신이 지지하지 않는 다른 진영의 정치인을 평가하듯이 냉소적이고 냉담해. 상대방의 내면에는 위선과 변덕과 계략만이 신진대사를 촉진하고 있다고 믿는 거지.
아내 그래, 맞아. 나는 채식주의자들이 타락한 정치꾼들이라고 생각해. 히틀러가 반유대주의를 택하지 않았다면 분명 채식주의를 선포했을 거야. 나는 진지한 사람이 진지한 이유로 진지한 채식주의자가 된다는 걸 믿을 수 없어. 채소 위에 기만과 가증과 가식과 교만과 허영이라는 소스를 잔뜩 뿌리지 않고는 말이야.
손님 본래 샐러드란 소스 맛이죠.
남편 이것 봐. 당신도 비유와 일반화를 쓰고 있잖아. 우리는 비유와 일반화 없이는 서로 단 한 마디도 할 수가 없어. 그것이 우리가 함께 있기 위해 끝없이 인내해야 하는 오해이자 좌절이지.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서로의 인격마저 그저 비유나 일반화인 것처럼 치부해선 안 돼. 설사 그게 사실이라고 해도 말이야. 우리는 인간의 가상적인 존엄의 막연한 가능성을 믿어야만 해. 아니, 믿는 척이라도 해야 돼. 어쨌거나 살아있으려면, 그렇게 함께 살아가려면 말이야.
잠시 침묵. 빅토리아가 무대를 가로지르며 우다다다를 한다.
아내 그래, 좋아. 알았어. 그럼 얘기나 한 번 들어보자. 당신은 도대체 왜 채식주의자가 된 거야?
남편 (잠시 망설이다가) 특별한 개기가 있었던 건 아냐. 언제부터인지도 모르겠고. 그냥 매번 고기를 먹을 때마다 입안에서는 달고 맛있었지만 뱃속에서는 체한 것처럼 소화가 되지를 않았어. 마치 내가 돼지고기가 아니라 돼지를 먹는 것 같았고, 소고기가 아니라 소를 먹는 것 같았고, 닭고기가 아니라 닭을 먹는 것 같았어. 그 돼지와 소와 닭들이 뱃속에서 한꺼번에 비명을 질러대면 결국 구역질이 나서 목구멍 밖으로 토해낼 수밖에 없었어.
아내 그러니까 대체 그 비명소리가 뭔데.
남편 글쎄, 죄의식이 아닐까?
아내/손님 죄의식?
남편 아아, 알아. 요즘에는 쓰지 않는 말이라는 거. 지나치게 문학적이지.
아내 대체 누구에 대해서?
남편 결백한 생명에게 가해지는
손님 대체 무엇 때문에요?
남편 무고한 죽음 때문에.
아내 세상에. 정말 문학적이군.
손님 마치 판타지나 SF소설 같아요.
남편 내 말은 생명을 계량하고 수준을 평가해서 가치를 차별할 수는 없다는 거야.
손님 하지만 원래 그게 여러분이 하는 일이잖아요. 생명을 계량하고 수준을 평가해서 가치를 차별하는 일.
아내 그러니까 모든 생명이 평등하다는 거야?
남편 평등은 정치적인 언어지. 모든 다름의 같음이니까. 반면에 나는 모든 같음의 다름에 대해 얘기하는 거야. 죽음을 계량하고 수준을 평가해서 가치를 차별할 수는 없다는 거지.
손님 그것도 원래 여러분이 하는 일인데요. 죽음을 계량하고 수준을 평가해서 가치를 차별하는 일.
남편 잠깐만요. 그건 내 직업과는 아무 상관 없어요. 난 지금 무고한 생명에 대해 얘기하고 있는 겁니다.
손님 군인은 무고하지 않다는 건가요?
남편 세상에 무고한 군인은 없어요.
손님 정말 미신적이군요.
아내 맞아요. 정말 미신적이에요.
손님 당연히 무고한 군인도 있을 텐데 말이죠.
아내 아니오. 저 이 말대로 이 세상에 무고한 군인은 없어요. 다만 그건 군인이 무고하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세상에 그 어떤 인간도 무고하지 않기 때문이에요.
손님 모든 인간이요? 갓 태어난 아이들도요?
아내 물론이죠. 그래서 태아를 죽이는 건 죄가 아니지만 막 태어난 아이를 죽이는 건 죄가 되는 거예요. 아기들은 태어나자마자 벌써 인권을 손아귀에 움켜쥐고 갈취하거든요.
손님 일종의 원죄 같은 건가요?
아내 비슷해요. 우리 자신이 바로 선악과라는 사실만 빼면 말이죠.
손님 아, 신학보다는 식물학의 영역인가 보군요.
아내 유전학을 보면 그 둘이 그렇게 다른 것도 아니더라구요.
손님 하긴 계보학에 대한 공통된 관심이죠.
아내 (남편을 바라보며) 그런데도 당신은 홀로 무고한 인간이 되려고 하는구나. 마치 우리에게 단 한 번이라도 무고했던 시절이 있기나 한 것처럼. 마치 최초의 인간이 무고하게 태어나기라도 한 것처럼. 마치 언젠가는 우리도 완전히 무고해질 수 있는 것처럼.
남편 하지만 신학과 식물학은 계보학에 대한 공통된 저항이기도 해. 우리에게는 선택하는 능력과 진보하려는 본능이 있으니까. 그걸 신학에서는 자유 의지라고 하고 식물학에서는 돌연변이라고 하지. 유전적으로 우리는 모두 자유 의지를 가진 돌연변이들이야.
아내 저런, 그건 고기의 반대가 채소라고 믿는 것만큼이나 유치한 착오에 불과해.
손님 그럼 고기의 반대가 뭔데요?
아내 당연히 요리한 고기죠.
남편 자기야, 이건 유치한 착오가 아니야. 오히려 지극히 이성적이고 상식적인 논리야. 꼼꼼하게 계산기를 두드려대는 것처럼 냉정한 연산이라고. 사과 한 개에 사과 한 개를 더 하면 사과 두 개가 된다는 실질적이고 체험적인 산술이지. 생각해 봐. 생명 하나를 연장하기 위해 수백수천의 무고한 생명을 끝장내야 한다는 건, 무언가 말이 되지 않아. 도무지 계산이 맞지 않는다고. 이건 심각한 모순이야. 모순이 턱밑까지 차오르면 부조리가 되지.
아내 당신 말대로 사과 한 개에 사과 한 개를 더 하면 사과 두 개가 되지. 하지만 사과 한 개를 반으로 쪼개도 사과 두 개가 된다는 사실 역시 실질적이고 체험적인 산술이라는 걸 당신은 고려하지 않는구나. 현실이란 본래 수학과 기호가 무너져 내리는 특이점이라는 걸 말이야. 모순적인 게 어때서? 생명에게 있어서 모순은 정상이고, 건강함이고, 온전함이야. 부조리가 바로 우리의 본질이고, 현실이고, 진실이란 말이야. 그런데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그걸 부정하겠다고? 모른 척 무시하겠다고? 소신이라고? 그럼 타락하게 되는 거야. 오히려 비인간적이 되는 거지. 바위에 붙어 있는 이끼처럼 오로지 절대적이고 합리적으로 무감각해 질 거야.
남편 하, 모순이 정상이고 건강함이고 온전함이라고? 부조리가 본질이고 현실이고 진실이라고? 죽지 않기 위해, 죽이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게 비인간적이라고? 말도 안 돼. 그럼 우린 국어 사전을 통째로 불태워버려야 할꺼야.
손님 아, 저의 가장 은밀한 판타지 중 하나죠.
남편 모순과 부조리는 병이야. 암같은 거라고. 병든 몸에 생기고 또 몸을 더 병들게 하지. 치료해야만 해.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