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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곡] 채식, 주의, 자 (14)

by 곡도




손님 자, 그럼 여러분께 마지막으로 노래 한 곡 불러드리고 저는 이만 물러가도록 하겠습니다. 수많은 뮤지컬 노래들이 있지만 뭐니 뭐니 해도 가장 유명한 노래는 바로 이 곡이죠. 피날레로 이보다 더 적당한 노래는 없을 겁니다.


손님이 춤까지 추면서 열정적으로 노래를 부르는 동안, 아내와 남편은 점차 노래 가사처럼 자신들의 사랑을 재확인하다. 손님은 춤과 노래에 열중하느라 그들의 변화를 눈치 채지 못한다.


손님 (뮤지컬 '맘마미아' - 맘마미아)

당신 날 속였었지 언젠지 알거야

그때 결심 했어 이젠 끝이라고

난 언제나 정신 차릴까

왜 그랬지 그땐 너무 화가 났어

미쳐버릴 것 같았어

다시 또 보니까 생각나네

다시 또 보니까 좋아지네

워우워어

Mamma Mia!

다시 해볼까 마이마이 난 싫다는 말 못해

어쩜 좋아 나는 당신을 마이마이 그리워했었나봐

당신이 떠난 후에 내 맘 너무 아팠네

난 왜 널 떠나게했을까

Mamma Mia!

이제는 알아 마이마이 그때 안보내야 했는데

그 일이 끝이 난 뒤 너무 슬펐었어

밤을 지새우며 눈물 흘렸었지

난 언제나 정신 차릴까

왜 그랬지 그땐 너무 화가 나서

미쳐버릴 것 같았어

다시 또 보니까 생각나네

헌데 또 보니까 좋아지네

워우워어

Mamma Mia!

다시 해볼까 마이마이 나는 싫다는 말 못해

어쩜 좋아 나는 당신을 마이마이 너무 그리워했나봐

당신이 떠난 후에 내 맘 너무 아팠네

난 왜 널 떠나려했을까

Mamma Mia!

이제는 알아 그때 안보내야 했는데

다시 또 보니까 생각나네

헌데 또 보니까 좋아지네

워우워어

Mamma Mia!

다시해볼까 나는 싫다는 말 못해

어쩜 좋아 나는 당신을 너무 그리워했나봐

당신이 떠난 후에 내 맘 너무 아팠네

난 왜 널 떠나려했을까

(숨을 헐떡이며) 자아, 이제 제가 할 일은 다 한 것 같군요. 저로서는 최선을 다했습니다. 제 평생 어느 무대에서도 오늘처럼 최선을 다 했던 적이 없어요. 그럼 이제 저는 그만 가보겠습니다. 그럼, 여러분, 모두 안녕히…….


손님이 돌아보니 남편과 아내는 어느새 진한 키스를 나누고 있다.


손님 와우, 와아, 와우,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이죠? 전혀 예상하지 못했는데요.


아내 자기야, 미안해. 내가 너무 심했지?


남편 아니야. 내가 미안하지. 처음부터 자기한테 모든 걸 솔직하게 말했어야 했는데.


아내 아냐, 정말 내가 정신이 나갔었나봐. 어떻게 내가 자기하고 헤어질 수 있겠어?


남편 나도 마찬가지야. 당신하고 헤어지는 건 상상조차 할 수 없어. 난 자기 없이는 단 하루도 살 수 없으니까.


남편과 아내가 강하게 포옹한다.


손님 부부싸움은 칼로 물 베기라더니, 정말인가봐요. 어쨌든, 잘 됐네요. 축하드립니다. 정말 사랑이란 알 수가 없어요. 더하기나 뺄셈이 불가능하죠. 사랑에 미움을 더하면 덜 사랑하기는커녕 더 사랑하게 되고, 미움에 사랑을 더하면 덜 미워하기는커녕 더 미워하게 되니, 저로써는 검은 상자처럼 알 수 없는 공식이네요.


아내 (손님에게) 이게 다 당신 덕분이에요.


남편 (손님에게) 맞습니다. 정말 고마워요.


손님 뭘요. 전 그저 지켜본 것뿐인데요.


아내 하지만 아무도 지켜보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죠.


남편 마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서 아무도 지켜보지 않은 것 처럼요.


아내 무슨 일인가 벌어져야 누군가가 지켜보고


남편 누군가가 지켜봐야 무슨 일인가 벌어지죠.


손님 에, 하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본 사람으로서 공정하고 또 솔직하게 말씀드리자면, 해결된 건 아무 것도 없는데요. 채식주의도, 부부관계도, 남녀문제도요. 네, 물론 사랑, 여전히 사랑이 있지만, 과연 사랑으로 뭘 할 수 있을까요? 매일 저녁 식사 메뉴로 사랑을 요리해 드시겠어요? 사랑탕, 사랑구이, 사랑조림, 사랑무침, 사랑지짐, 사랑찌게, 사랑볶음, 사랑찜, 사랑튀김, 사랑절임으로 식탁을 차리시겠어요? 우리가 배고플 때, 사랑만큼 빨리 물리는 게 또 있을까요? 우리가 목마를 때, 물보다 싱거운 게 사랑이라구요.


아내와 남편은 당황해서 서로를 쳐다본다.


아내 그래, 맞는 말이야, 우리는 아직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했어.


남편 그래, 우리는 여전히 제 자리야.


아내 당신은 앞으로도 채식주의자일 거고


남편 당신은 앞으로도 고기를 먹을 거야.


아내 당신이 두부 스테이크를 썰 때


남편 당신은 안심 스테이크를 썰겠지.


아내 결국 집은 전쟁터가 되고


남편 식탁은 최전선이 될 거야.


손님 아이고, 또 시작이군. 모든 걸 처음부터 다시 되풀이할 셈이에요? 이래서는 곤란해요. 모든 공연에는 공연 시간이라는 게 있고, 영원히 관객석에 앉아있고 싶어 하는 관객은 없거든요.


아내와 남편이 서로를 바라보며 침묵한다.


손님 에, 사실 저에게 좋은 생각이 하나 있긴 한데요.


아내/남편 어떤 생각이요?


손님 아예 새로운 식재료를 찾아보면 어때요?


아내 새로운 식재료요?


손님 그러니까 고기도 아니고 야채도 아닌, 뭐 그런 거요.


남편 고기도 아니고 야채도 아닌?


손님 그럼 두 분이 함께 먹을 수 있잖아요.


아내 (반색하며) 그래요, 맞아요. 바로 그거에요. 우리가 결코 싸움을 멈출 수 없는 건 양보할 수 없는 것을 타협하려고 하기 때문이에요. 고기와 야채, 너와 나, 삶과 죽음에 중간이란 없으까요. 결국 아무도 만족할 수 없는데도 그 중간 어디쯤을 찾아 헤매느라 끝없이 삶을 허비하죠. 그러니 우리는 둘 사이의 어딘가가 아닌 전혀 다른 곳을 향해 눈을 돌려야해요. 고기와 야채의 중간이 아니라 고기도 야채도 아닌 어떤 것으로요.


남편 고기도 아니고 야채도 아닌 어떤 것이라니, 그건 불가능해.


아내 아니, 사랑에 불가능은 없어.


손님 사랑에는 남자들보다 여자들이 더 유능하죠.


아내 그건 사실이에요.


손님 사랑은 모든 다름의 법칙을 무력화하고, 죽음에서 생명을 일으키고, 어제 뿐만 아니라 미래도 새롭게 하죠. 사랑이란 결국 그 무엇도 일어날 수 없는 불가능 속에서 그 무엇도 일어나는 게 불가능하기 때문에 반드시 무언가가 일어날 수밖에 없는 어떤 것이예요.


아내 (갑자기 손님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그 무엇도 일어날 수 없는 불가능 속에서 그 무엇도 일어나는 게 불가능하기 때문에 반드시 무언가가 일어날 수밖에 없는 어떤 것. 정말 옳은 말씀이에요. 지금 방금 어떤 생각이 제 텅 빈 머릿속으로 번개처럼 떨어져 내렸거든요.


남편 무슨 생각인데?


아내 오늘 아침에 당신과 내가 같은 요리로 함께 식사를 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


남편 푸우,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야.


아내 아니야, 자기야, 한 번 생각해 봐. 당신이 고기를 먹지 않는 건 이 세상 모든 동물들이 무고하기 때문이라고 했지?


남편 그렇지.


아내 그런데 당신이 사람을 죽일 수 있는 건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무고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고?


남편 그렇다니까.


아내 자기야, 그럼, 당신이 먹을 수 있는 고기가 딱 하나 있는 거잖아.


남편 어?


아내 유일하게 무고하지 않은 동물.


아내와 남편이 손님을 바라본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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