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면증 (51)

by 곡도




그녀가 떠드는 동안 그의 목은 시퍼렇게 부풀어 오르고 얼굴은 질긴 고무장화처럼 경직되었다. 너무 화가 나서 상대가 자신의 어머니라는 사실조차 거의 잊어버릴 지경이었다. 그는 찢어지는 목소리로 버럭 고함을 질렀다.

“에이 씨, 그만 좀 해요.”

미숙은 깜짝 놀라 어깨를 움츠리며 입을 다물었다. 자신의 아들이지만 새까만 얼굴을 하고 덤비는 사내는 무서운 법이다.

“엄마가 그런 말할 자격이나 돼요?”

“내가 뭘?”

“몰라서 물어요? 이놈의 집안 꼴을 좀 보세요.”

“집안 꼴? 집안 꼴이라니? 이렇게 된 게 내 잘못이냐? 너도 알면서 그러니?”

“그래요?”

“너 정말 나한테 왜 이러니?”

“아버지 지금 고시원에 있어요.”

그는 잘게 갈라지는 목소리로 외쳤다. 뜬금없었지만 사실 이 말이야 말로 지금 이 순간에 가장 합당한 말이었다. 이 한마디를 하기 위해 그는 이 집에 와서 싸움까지 벌였던 것이다.

“뭐라고? 무슨 소리야 그게?”

그녀는 순식간에 서슬이 시퍼레졌다. 금방이라도 누군가에게 달려들 것처럼 코를 일그러뜨렸다. 하지만 그런 그녀의 모습에 그는 속이 시원해졌다. 이제야 그녀가 자신의 얘기를 제대로 듣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니 아버지가 고시원에 있다고? 아니, 왜?”

“얼마 전에 그 집에서 나오셨대요. 그래서 저희 집 근처에 있는 고시원에 방을 구해드렸어요.”

“나왔다고?”

“그 여자하고 헤어졌대요.”

미숙은 확실히 충격을 받은 듯 했다. 굳은 얼굴에 잠시 눈꼬리를 씰룩이더니 이내 빽 소리를 질렀다.

“그게 어쨌다는 거야? 나한테 왜 그 얘길 하는 거야? 너는 그것까지 내 책임이라는 거냐?”

책임. 그 놈의 지긋지긋한 책임 타령. 현태는 숨이 턱턱 막혀왔다. 그녀 말대로 그녀에게는 아무런 공식적인 책임도 없었다. 인지상정의 법정에서 그녀는 무죄였다. 하지만 책임이 없다고 해서 관련이 없다고 할 수 있을까? 그녀는 습기처럼 사방에 모두에게 스며있는데 말이다.

“어쨌거나 아버지가 고시원에 계시는데, 앞으로 어떻게 할지 생각해 봐야 하는 거 아니에요?”

“아니, 내가 왜? 난 이제 그 사람하고는 아무 상관없어. 그 인간이 죽든 살든 나하고는 관계없는 일이야. 너야 자식이니까 자식노릇 하겠다면 말리지는 않겠지만, 난 아니다. 그러니까 나한테 이런 얘기 꺼내지 마. 알겠니?”

미숙과 병규의 결혼으로 이 모든 일이 시작되었는데, 미숙과 병규 모두 이제 자신과는 아무 상관없는 일이라며 발을 빼는 것이다. 그런데 어째서 현태는 아직도 그 자리에 혼자 남아 여전히 계속 당사자여야 하는가. 왜 자신이 이 모든 책임을 오롯이 짊어져야 하는가. 왜 자식은 부모와 이혼할 수 없는가. 아니, 역시나 이건 순전히 현태의 잘못인지도 모른다. 이미 모두들 약삭빠르게 자신의 위치를 선정하지 않았나. 병규는 가족을 버리고, 미숙은 이혼을 하고, 현지는 미국으로 떠나고, 그런데 자신만 엉거주춤…….

“그냥 아버지한테 다시 집으로 들어오라고 하면 안 돼요?”

이게 터무니없는 얘기라는 걸 누구보다 현태 자신이 잘 알고 있었다. 다만 이 말이 미숙을 가장 화나게 할 것 같아서 내뱉은 것뿐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미숙은 얼굴이 흙빛으로 변하더니 머리채를 흔들며 으르렁 거렸다.

“뻔뻔하구나. 어떻게 나한테 그런 말을 하니? 피해자는 나인데 왜 나한테 이러는 거야. 니 아버지는 비겁하고 비열한 인간이야. 그 인간 때문에 내 인생을 망쳤다고. 그런데 넌 어떻게 아버지 편을 들 수가 있어? 그리고 네가 나한테 이런 말할 자격이 있니? 내가 힘들 때 넌 언제나 나 몰라라 했었잖아. 늘 피곤한 표정을 짓고서 나를 깔보았으면서. 내가 모를 것 같아? 넌 이게 내 책임이라고 생각하는 거지? 내가 네 아버질 그렇게 내몰았다고 생각하는 거지? 엄마 같은 여자하고 살면 누구라도 아버지처럼 됐을 거라고 날 비난하고 싶겠지. 하지만 그건 핑계일 뿐이야. 너는 그냥 이 모든 게 귀찮은 거잖아. 너무 게을러서 행복해지는 것도 싫은 거야.”

미숙의 얘기에 현태는 혀를 내둘렀다. 차라리 ‘공식적으로’ 가해자인 병규나 ‘공식적으로’ 피해자인 미숙은 속이 편할 것이다. 가해자는 억울할 여지가 없으니 속이 편할 것이고, 피해자는 마음껏 억울할 수 있으니 그러할 것이다. 세상에서 이 두 종류의 사람들만이 진정 뻔뻔할 수 있을 터였다. 그러나 자신같이 꼼짝없이 사이에 낀 사람은 어디에도 하소연할 데가 없었다. 발언권도 없이 관심도 받지도 못한 채 양쪽의 비위를 맞추면서 동시에 양쪽의 책망을 견뎌야 했다. 이런 사람이야 말로 죄인 중의 죄인이었다.

“나는 너한테 그러지 않았다. 나는 너한테 그러지 않았어. 알겠니? 나는 네가 아니었으면 니 아버지하고 결혼하지도 않았을 거야. 네가 생기는 바람에 네 아버지하고 결혼한 거란 말이야. 너를 위해서 말이야. 너를 지울 수도 있었지만, 아니, 사실 지우려고 병원 앞까지 갔었지만, 난 그러지 않았다. 그런데 너는 아무 상관없이 이 세상에 혼자 생겨난 것처럼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니?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가 있어?”

그녀는 눈물을 쏟으며 안방으로 달려갔다. 멍하게 서 있던 현태도 그대로 미숙의 집을 박차고 나왔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현태는 창가 의자에 무너지듯 주저앉았다. 운전을 하고 오는 동안 어느 정도 흥분은 가라앉았지만 명치끝에서 단단하게 굳어버린 얼음덩어리는 녹을 줄을 몰랐다. 그는 아까 미숙이 했던 얘기를 다시금 곱씹어 보았다. 자신이 뱃속에 생기는 바람에 미숙과 병규가 결혼했으며 미숙이 자신을 낙태하려고 했었다는 건 처음 듣는 얘기였다. 아무리 마흔을 앞둔 그라고 해도 이것은 꽤 충격이었다. 더구나 미숙이 그런 비장의 카드를 숨기고 있는 줄은 꿈에도 몰랐기 때문에 - 그걸 그토록 오랫동안 숨길 수 있는 사람이라고는 더더욱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 그는 경악했다. 그러니까 미숙의 요점은 무엇인가? 결국 이 모든 게 현태로 인해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이 모든 일이 그의 생명에 대한 대가라는 것이다. 그럼 이제 그는 미숙이 생명의 은인이라도 되는 것처럼 감격해야 하는 걸까? 지금부터라도 이 모든 책임을 겸손하게 오롯이 짊어져야 하는 걸까? 돈은 다른 사람이 빌려 썼는데 서명은 자신의 것이라니, 그 빚을 자신이 고스란히 떠안은 꼴이었다.

생각에 빠져 중지손톱을 씹고 있던 그는 길 건너편에서 움직임을 알아채고 고개를 들었다. 배를 낮게 깐 고양이 한 마리가 가로수 그림자를 따라 찻길로 들어서고 있었다. 마치 곡예라도 하듯 갈지자걸음이었다. 현태는 반사적으로 펄쩍 뛰어올라 그대로 현관을 빠져나가 층계를 내달렸다. 구불구불 떨어지는 층계 복도가 오늘따라 유난히 어두워서 그는 그만 2층 난간을 헛짚고 넘어지고 말았다. 하지만 살필 겨를도 없이 허둥지둥 빌라를 빠져나왔을 때는 이미 고양이가 길을 다 건넌 뒤였다. 황색이 섞인 잿빛 털에 꼬리가 짜리몽땅하고 덩치가 커다란 고양이었다. 어디 하수구라도 돌아다녔는지 허벅지며 배 아래까지 진흙이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여기저기 긁힌 상처와 털이 빠진 자국은 산전수전 다 겪은 노장을 연상시켰지만 발걸음만큼은 날씬한 댄서처럼 재빨랐다. 고양이는 거리낌 없이 그의 옆을 지나 길게 몸을 늘이더니 순식간에 골목으로 내달렸다. 그 뒷모습이 어찌나 가볍고 경쾌한지 현태는 자신도 모르게 쫒아가려는 것처럼 한 발을 앞으로 내딛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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