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가 골목 너머 어둠 속으로 사라지자 그는 새삼스럽게 자신이 혼자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의 머리 위에선 가로등이 뿌연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그의 그림자마저 뿌옇게 흐렸다. 그는 더듬더듬 뒷걸음질 치며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눈동자가 깜깜한 두 사람이 현태 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그들은 그저 지나가는 길이었지만 현태는 몸을 돌려 그들을 피했다. 그들이 아파트 안으로 사라지고 나서야 그는 눈을 끔뻑이며 다시 뒤를 돌아보았다. 방금 고양이가 건너온 6차선 찻길이 까마득하게 넓어 보였다. 꼭 단단하게 얼어붙은 새까만 강물 같았다. 늦여름 밤의 열기에도 불구하고 그는 아스팔트의 냉기를 느낄 수 있었다. 현태는 불쑥 찻길로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정말 얼음 위를 걷는 것처럼 조심스럽게 발바닥을 끌며 찻길을 가로질렀다. 찻길은 생각보다 넓어서 한참 후에야 건너편에 도착한 기분이었다. 그는 건너편 인도에 올라서서 다시 뒤를 돌아보았다. 잎 큰 가로수들 사이로 그의 빌라가 보였다. 붉은색 벽돌 외벽, 반창고처럼 꼼꼼하게 붙어있는 에어컨 실외기들, 하얀 철 난간들, 옅은 빛이 새어 나오고 있는 그의 5층 방 창문. 저곳에서 그는 매일 밤마다 거리를 내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사실을 아무도 알지 못했다.
그는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시간을 확인했다. 새벽 2시 40분. 1시간 정도 있으면 그는 잠자리에 들 것이다. 3시간쯤 후에는 해가 뜰 것이고, 5시간 후에는 기상, 시계가 9시를 가리키면 출근을 해야 했다. 그렇게 빡빡하지만 대수롭지 않은 일상이 또 시작될 것이다. 오직 내일 아침 일어나기 위해 오늘 밤 잠을 청하는 인생이란 오히려 성실이 아닌 오욕이 아닐까. 그는 숨을 들이켜 억지로 가슴을 부풀리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까만 밤하늘 아래로 이상하리만치 새하얀 구름 하나가 낮게 지나가고 있었다. 그 구름의 구석구석까지 손에 잡힐 듯 너무 생생하게 느껴져서 그는 자신도 모르게 입을 크게 벌렸다. 저 구름이 이 세계 위로 흘러가고 있는 게 아니라 이 세계가 저 구름 밑으로 흘러가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런데 대체 어디로 떠내려가고 있단 말인가. 영원히 멈추지 않는 러닝 머신 위에서 있는 힘을 다해 뛰고 있는 사람처럼 오직 같은 자리에 머무르기 위해 달려가고 있는 걸까?
갑자기 그는 허둥지둥 집 안으로 뛰어 들어가더니 지갑과 차열쇠를 챙겨 들고 차에 올랐다. 그리고 서둘러 시동을 걸고서 금방이라도 차를 출발시킬 것처럼 운전대 위에 두 손을 얹었다. 그는 발을 구르며 외마디 고함이라도 지르고 싶을 만큼 성마른 심정이었다. 당장 떠나야 했다. 지금 당장. 결코 죽지 않는 고양이들과, 깜빡이는 가로등 불빛과, 창가에 놓인 노란색 의자와, 오직 미워하기 위해서만 서로를 사랑하는 가족들과, 모든 염치와 책임들을 버리고, 최소한 이것과는 다른 삶을 찾아서 가야 했다. 지금 바로 떠나지 않는다면 대체 언제 떠난단 말인가.
하지만 그는 그대로 운전대 위로 얼굴을 파묻었다. 어디로 가야 하나. 이곳이 아닌 곳은 대체 어디일까. 목적 없이 살기는 쉬워도 목적 없이 떠나기는 힘든 법이다. 원하는 물건이 없이는 집 앞 구멍가게에도 갈 수가 없다. 어쩌면 수철도 그날 밤, 엉망으로 어질러진 가게의 어둠 속에 홀로 앉아 갈 곳을 궁리했는지도 모른다. 이곳이 아닌 다른 곳. 이곳만 아니라면 그 어디라도. 하지만 결국 찾아낼 수 없었을 것이다. 아니, 결국 찾아낸 걸까. 그는 고개를 들어 휘파람을 뽑아내듯 가늘고 긴 숨을 내쉬었다. 간신히 정신이 들었다. 한심하긴. 가기는 어딜 가. 어디로 가든 하나도 남김없이 다 따라올 텐데. 결코 죽지 않는 고양이들과, 깜빡이는 가로등 불빛과, 창가에 놓인 노란색 의자와, 오직 미워하기 위해서만 서로를 사랑하는 가족들과, 모든 염치와 책임들과, 이것과 조금도 다르지 않은 삶 모두. 내가 가는 곳이라면 어디든 나는 나를 따라올 것이다. 그러니 버텨야 한다. 바로 여기서. 결코 죽지 않는 고양이들과, 깜빡이는 가로등 불빛과, 창가에 놓인 노란색 의자와, 오직 미워하기 위해서만 서로를 사랑하는 가족들과, 모든 염치와 책임들과 함께. 그렇게 하루하루 지내다 보면 결국 어떤 식으로든 결론이 나지 않겠나.
어쨌든 차에는 이미 시동이 걸려있었고, 그는 도로 시동을 끄고 집으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았다. 현태는 바람이라도 쐴 겸 최소한 이 동네만이라도 좀 벗어나 보기로 했다. 어머니 집을 제외하면 이 동네 밖으로 나가본 지도 까마득히 오래되었다. 이 동네 밖에도 정말 세상이 있는지 그는 확신할 수 없었고, 그런 확신 없이도 살아가는 데는 아무런 지장이 없었기 때문이다.
잠시 눈동자를 굴리던 현태는 남대문 새벽 꽃시장을 떠올렸다. 아직 여분의 장미가 남아 있는 데다가 평소 거래하는 곳도 아니었지만, 혹시 내일 갑자기 100송이 장미 꽃다발 주문이 들어올지도 모른다고 혼자 주억거리며 그는 차를 출발시켰다. 새벽 3시의 도심은 한없이 적막했다. 불 꺼진 건물들이 양쪽으로 늘어선 침침한 도로에는 빨간색과 초록색의 신호등 불빛만이 유리보석처럼 선명하게 빛나고 있었다. 직진, 좌회전, 멈춤, 세상 모든 게 이토록 명확하다면 아무 걱정이 없으련만. 그런데도 왜 사람들은 늘 막연하고 불공정한 은유와 암시와 감상 속에서 고통받으면서도 기계적이고 겸손하고 효율적인 세상을 디스토피아라고 비난하는지 모를 일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자유, 평등, 주체성 같은 것들이 전혀 필요가 없으며 실제로 그것을 가져본 적도 가질 수도 없고 그게 뭔지조차 모르는데 말이다. 그런데도 민주주의는 반 표짜리 자질을 가진 이들에게 똑같이 한 표씩을 쥐어주면서, 그것으로 마치 완전한 자유, 평등, 주체성을 소유한 것 같은 착각을 그들에게 심어주는 아슬아슬한 도박을 이어나간다.
현태는 신세계 백화점 뒤에 차를 대놓고 D동 3층에 있는 꽃시장으로 올라갔다. 꽃이 들어오는 날이 아니어서 꽃들은 썩 싱싱하지 않았지만 그는 손에 잡히는 대로 꽃다발들을 움켜쥐고 팔 안에 쑤셔 넣었다. 커다란 꽃다발 꾸러미를 낑낑거리며 차에 실은 뒤 시계를 보니 고작 30분가량이 지났을 뿐이었다. 그는 그 자리에 주저앉고 뻗대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러나 그러는 대신 그는 주변을 좀 걷기로 했다. 정신이든 몸이든 완전히 지쳐서 마침내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질 때까지 말이다.
현태는 시청 쪽으로 방향을 잡고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길목은 온통 불 꺼진 상점들의 새까만 유리들로 둘러 싸여 있었다. 골목 끝에 위치한 편의점이 교회처럼 하얗게 불을 밝히고 있었지만 캄캄한 새벽에 활력을 주기는 부족했다. 하수구 밑바닥 같은 이곳이 몇 시간 후면 다시 햇빛과 사람들과 소음들로 붐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다.
좁은 골목을 빠져나와 별안간 확 트인 시청 광장으로 들어선 현태는 전혀 예상치 못한 광경에 깜짝 놀랐다. 텅 비어있을 줄 알았던 시청광장에 이삼백 여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부옇게 백열등을 밝힌 천막들이 여럿 보였고 어디선가 딱딱 끊어지는 음악 소리도 들렸다. 도대체 무슨 일인가 싶어 주변을 기웃거리던 그는 광장 둘레로 검붉은 글씨가 휘갈겨진 현수막들을 발견했다. 살인자 정권을 처단하라. 진상을 규명하라. 대통령과 시장은 즉각 고인 앞에 사죄하라. 현태는 이것이 얼마 전 경찰들과 대치하다가 사망한 철거민들의 죽음을 추모하는 집회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요 근래 한 달 내내 신문이며 텔레비전, 인터넷까지 온통 이 얘기로 시끄러웠다. 그의 가게를 찾은 손님들도 종종 이 사건을 화제에 올렸다. 하지만 현태는 그 뉴스를 보면서도 별다른 감회를 느끼지 못했다. 그저 철거민과 경찰 사이의 충돌로 몇 명쯤 죽었나 보다 하고 - 양쪽을 향해 공평하게 - 혀를 찼을 뿐이었다. 사고가 있고, 추궁이 있고, 진상 규명과, 징계, 이어지는 지리한 법정 싸움 등등이 별달리 새로울 것도 흥미로울 것도 없어 보였다. 하지만 자신이 그토록 무심했던 일에 누군가는 밤을 새워가며 매달리고 있다니 그는 조금 겸연쩍기도 하고 당황스럽기도 했다. 어쨌거나 이 새벽에 깨어 있는 사람이 그 혼자만이 아니라는 건 반가운 일이었다.
현태는 최대한 단정한 걸음걸이로 광장 안으로 들어섰다. 사람들은 삼삼오오 흩어져 술을 마시거나, 머리를 맞대고 얘기를 나누거나, 또 그대로 풀밭에 드러누워 잠이든 사람들도 있었다. 현태는 마치 간첩이기라도 한 것처럼 신중하게 주변을 힐끗거렸다. 하지만 그를 눈여겨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오직 자신을 눈여겨보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사실을 그 자신이 눈여겨보았을 뿐이었다.
그는 광장을 가로질러 시청 입구 앞까지 걸어갔다. 임시 무대 옆에 설치된 천막에서는 탑차에 대형 스크린을 걸어 놓고 무언가를 상영하고 있었다. 현태는 스크린 앞으로 다가가 빈자리에 앉았다. 그것은 철거민에 대한 정부의 강제 진압이 얼마나 부당하고 무모했는지를 다분히 자극적이고 선동적으로 제작한 다큐멘터리였다. 정의와 연민 때문이 아니라 고무된 열등감과 피해의식에 감화되어 잠시 영상에 정신이 팔려있던 그는 어디선가 불어오는 향냄새에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그제야 스크린 우측 뒤쪽으로 분향소가 마련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죽은 철거민 6명의 영정 사진이 눈부시게 새하얀 국화꽃다발 속에 파묻혀 있었다. 제사상 앞에는 족히 수백 개는 되는 향 조각과 재가 수북이 쌓여있었다. 현태는 분향소 앞쪽으로 - 그러나 너무 가깝지는 않게 - 슬그머니 자리를 옮겨 사진 속 인물들을 하나하나 살펴보았다. 나이 든 사람도 있었고 제법 젊어 보이는 사람도 있었다. 일부러 그런 사진을 고른 건지 아니면 그런 사진뿐이었는지, 사진 속의 그들은 모두 고단하고 울적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저건 죽은 자들의 얼굴이 아니라 산사람을 위한 거울이었다.
그때 중년 남녀 한 쌍이 분향소로 들어왔다. 검은 양복 위에 상주 완장을 찬 남자 세 명이 자리에서 일어나 그들을 맞았다. 부부로 보이는 남녀는 뉴스에서 보고 가슴이 아파 새벽 장사를 나가는 길에 들렸다며 침통해했다. 두 사람은 영정 사진 앞에 나란히 서서 고개를 조아리며 큰절을 올렸다. 마지막 반절에서 남자는 소매로 눈물을 찍어냈고 이윽고 여자도 울음을 터트렸다. 현태는 곁눈질로 그 모습을 지켜보며 혼자 고개를 갸웃거렸다. 모르는 사람의 죽음에 일부러 찾아와 눈물까지 흘리는 여유가 마냥 신기하기만 했다. 설사 다분히 자기 감상이나 자기 과시에 불과할지라도 저만큼 몰입할 수 있다는 건 놀라운 일이었다. 그는 문득 수철을 떠올렸다. 수철의 장례식도 이와 비슷했을 것이다. 새하얗다 못해 파르스름한 국화꽃에, 형식적으로 맞절을 하는 상주와 문상객에, 진동하는 향냄새. 다만 영정 사진이 어떠했는지는 전혀 짐작할 길이 없었다. 사진 속 수철은 경망하게 웃는 얼굴이었을까? 짐짓 심각한 얼굴이었을까? 옷은 늘 즐겨 입던 양복차림이었을까? 아끼던 오렌지색 에르메스 넥타이를 매고 머리에는 무스를 잔뜩 바르고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