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이 밝자마자 현태는 집 근처에 있는 고시원으로 병규를 데려갔다. 밤사이에 얌전해진 병규는 묵묵히 현태를 따라나섰다. 골백번을 생각해도 그는 당장 갈 곳이 없었고 아들이 예상외로 완강했기 때문이다. 아침식사와 저녁식사가 포함되어 있다는 고시원 관리인의 말에 현태는 두말없이 돈을 치렀다. 그리고 열쇠를 받아 안내받은 방문을 열었을 때 이제껏 기세등등했던 현태도 그만 말문이 막혀버리고 말았다. 방은 그야말로 짐짝처럼 작고 초라했다. 낡은 책상과, 책상에 맞붙어 있는 싱글 침대만으로도 방은 발 디딜 틈 없이 꽉 차 있었다.
“이건 뭐 방이 아니라 관이네, 관.”
병규가 투덜거렸지만 현태는 못 들은 척했다. 사실 달리 할 말이 없었다. 한쪽 벽면에 나 있는 작은 창문이 아니었다면 병규의 말대로 영락없이 관이나 다름없었다.
“더 좋은 곳을 알아볼 때까지 당분간만 계세요.”
금방이라도 주저앉아 울어 버릴 것처럼 축 늘어진 병규를 현태는 이렇게라도 달래지 않을 수 없었다.
두 사람은 근처 마트에서 라디오며, 양말, 슬리퍼, 수건, 비누 등의 물건들을 구입한 뒤 해장국을 한 그릇씩 먹었다. 병규는 화도 나고 기도 죽어서 입을 꾹 다물고 있었고, 반면 현태는 자꾸만 쓸데없는 말들을 떠들어댔다. 두 사람 모두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억울하다’고. 하지만 두 사람은 그것에 대해선 한마디도 하지 않은 채 꾸역꾸역 식사를 마쳤다. 병규를 다시 고시원 앞에 데려다주면서 현태는 애써 밝게 말했다.
“무슨 일 있으면 바로 전화하세요.”
현태는 병규의 와이셔츠 가슴 주머니에 5만 원을 꽂아주었다. 두 손에 커다란 마트 봉투 하나씩을 든 병규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은 영락없이 불쌍한 노인네였다. 현태는 어기적거리며 돌아서는 병규의 뒷모습을 떨떠름하게 바라보았다. 늙고, 지치고, 외롭고, 원망하고, 후회하고, 체념하고……. 하지만 현태는 대충의 감상에 젖어 병규를 불쌍히 여기고 싶은 마음이 추호도 없었다. 어쨌든 병규를 떼어냈다는 사실이 기쁘기만 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도저히 통할 수 없는 어긋나고 단절된 틈이 있어서 참으로 섭섭하다고들 하지만, 사실 대부분의 경우 그것은 참으로 요긴하고 또 다행한 일이었다.
그날부터 현태는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병규의 전화를 기다렸다. 최악의 경우 짐을 다시 싸들고 집으로 쳐들어 오는 것까지도 각오하고 있었다. 그러나 며칠이 지나도록 병규에게서는아무런 연락도 오지 않았다. 잘 지내고 있기 때문인지 아니면 단단히 화가 나서인지는 알 길이 없었지만 현태도 병규에게 연락하지 않았다. 괜히 빈틈을 보였다가 다시 들러붙기라도 하면 큰 낭패였기 때문이다. 하다 못해 병규가 고시원 생활에 대해 이런저런 불평이라도 늘어놓으면 그는 몸 둘 바를 알 수 없어 안절부절하다가 결국 화가 폭발하고 말 것이다. 정 마음에 안 들면 멀리 안 보이는 곳으로 꺼져버리라고 악담이라도 퍼부을지 모른다. 그는 자신이 정말 그런 말을 내뱉기라도 한 것처럼 손끝이 부르르 떨렸다. 병규에 대해 아무런 잘못도 애정도 없는데 이런 고민에 빠져야 한다는 사실이 한심하기만 했다.
현태는 며칠 동안이나 찝찝한 기분을 떨치지 못하다가 일찌감치 가게를 닫고 어머니 집으로 향했다. 갑작스러운 현태의 방문에 미숙은 물색 모르고 반가워했다. 그녀의 태평한 모습을 보자니 현태는 속이 더 뒤집어졌다.
“아니, 한동안 아예 발길을 끊더니 주말도 아닌데 웬일이니?”
그는 아무 대답 없이 그냥 미소를 지었다.
“저녁은 먹었니?”
“아뇨, 아직 안 먹었어요.”
“그래? 잘됐다. 같이 밥 먹자.”
그는 식탁 앞에 앉아서 부산하게 상을 차리는 반백의 뒷모습을 잠자코 바라보았다. 그는 자신이 왜 그녀를 방문했는지 잘 알고 있었다. 지금도 그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가 처신만 잘해준다면 조용히 밥만 먹고 돌아갈 수도 있었다. 그는 진심으로 그렇게 되기를 바라고 있었다.
식사가 다 차려지자 두 사람은 마주 앉아 수저를 들었다. 젓가락 부딪히는 소리와 우물우물 씹는 소리만이 들리는 정적 속에서 현태는 조금씩 마음이 진정되었다. 이대로 식사가 끝나고 나면 그도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무사히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나면 어머니와 아버지에게 좀 더 잘해주고 싶은 기분이 들지도 모른다. 고비를 넘기면 사람은 스스로 자책도 하게 되고 다른 사람에게도 너그러워지기 마련이니까. 사실 사람은 누구나 기꺼이 용서하기를 바라며 그 핑계만을 애타게 찾고 있다. 용서받아야 하는 상대방이 조금만 도와준다면 말이다. 그럼 용서하는 사람은 자신이 용서한 상대에게 오히려 미안하고 감사한 마음이 들어서 필요 이상으로 더 용서해버리고 만다. 그래서 이 세상이 망하지 않고 돌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밥을 몇 숟가락 떠 넣기도 전에 미숙이 불쑥 입을 열었다.
“아까 낮에 현지가 전화했더라.”
그리고는 미숙은 여봐란듯이 크게 한숨을 쉬었다. 현태는 속이 매슥거렸지만 모른 척 콩나물국을 입 안으로 떠 넣으며 대꾸했다.
“그래요? 잘 있데요?”
“말도 마라. 글쎄, 얘가 전화하다 말고 막 울더라. 공부도 힘들고, 돈도 너무 많이 들고, 뭐, 앞으로 전망도 불투명하다나. 정신 상태가 많이 해이해졌어. 빨리 정신 차려야지 그러다간 죽도 밥도 안 되겠더라. 독한 마음먹고 덤비는 애들이 얼마나 많은데 벌써 핑계거리나 생각이나 하고 있으니. 그래서 내가 따끔하게 그랬다. 괜한 엄살 부리지 말고 정신 똑바로 차리라고 말이야.”
현태는 입술을 꾹 다물고 듣고 있었지만 이미 속은 뒤틀리고 있었다. 미숙이 힘들 때 현지는 온 힘을 다해 그녀의 편을 들어주었는데, 엄마라는 사람은 도리어 힘든 딸에게 또박또박 입바른 소리나 하고 있는 것이다.
“그냥 가만히 좀 계세요. 애한테 쓸데없는 얘기하지 말고.”
그는 불시에 버럭 언성을 높였다. 미숙은 깜짝 놀라 밥을 뜨던 숟가락을 멈추고 현태를 쳐다보았다. 머쓱해진 현태가 애써 목소리를 낮추었다.
“애가 힘들다는 데 그렇게 밖에 말 못 해요?”
“내가 뭘 어쨌다고 그러니?”
그녀가 날카롭게 맞받아쳤다.
“그러면 힘드니까 다 때려치우라고 해? 그게 맞는 거냐?”
“누가 그러래요? 그냥 위로나 좀 해주면 안되냐구요.”
“모르는 소리 마라. 위로해준답시고 징징거리는 애를 편들어주면 사람 마음이 더 나약해지는 거야. 가까운 사람일수록 제대로 말을 해줘야 그게 진짜 걔를 위한 거다.”
현태는 아무래도 미숙의 머릿속에는 무언가 꼭 필요한 부속품 하나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면 자신의 머릿속에 불필요한 부분 하나가 더 들어 있거나. 정말 자신이 지나치게 예민한 걸까? 어쩌면 사람들은 그가 생각하는 것만큼 그렇게 매 순간마다 무방비하거나 결정적이지 않으며 쉽게 상처받지도 않는 걸까. 현지 역시 엄마 말에 그저 한숨 한번 늘어지게 쉬었거나 남편에게 몇 마디 툴툴거리고는 지금쯤 까맣게 잊고서 공부에 전념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먼 훗날 물렁해진 자신의 마음을 확실하게 다잡아줘서 고맙다면서 미숙을 치켜세울지도 모르는 일이다. 하지만 설사 그렇다고 해도 현태는 속이 끓어올라서 견딜 수가 없었다.
“때려치우면 또 어때서요? 그까짓 거 정 힘들면 안 하면 그만이지. 그게 무슨 대단한 일이라고 그렇게 힘들게 살아요.”
현태의 악다구니에 미숙은 차갑게 번들거리는 눈으로 현태를 빤히 쳐다보았다. 그러더니 입속에서 무언가를 잔뜩 씹고 있는 것처럼 입술을 찌푸렸다. 그것은 노골적인 경멸이었다.
“도대체가, 그러니까 네가 이러고 사는 거야. 아무런 기대도 의욕도 없이, 그냥 하루하루 닥치는 대로 말이야. 넌 꿈도 없니? 무슨 계획 같은 건 있어? 만날 꽃집에 처박혀서 풀떼기나 만지작거리고 리본이나 붙이는 게 젊은 놈이 할 일이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