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면증 (48)

by 곡도




저녁 7시가 되기도 전에 현태는 가게를 정리하고 서둘러 집으로 향했다. 병규가 자신의 집에 있다고 생각하니 도무지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문을 열고 현관으로 들어서자마자 현관 턱에 놓여있는 검은색 남성 구두가 눈에 띄었다. 구두는 지나치게 가지런히 놓여있어서 현태의 눈에 거슬렸다. 그는 남의 집에라도 들어가는 것처럼 조심스럽게 기웃거리다가 거실 소파에 누워 잠들어 있는 병규를 발견했다. 그는 현태가 온 것도 모르고 코까지 골며 깊은 잠에 빠져있었다. 현태는 그대로 숨을 죽이고 부엌이며 거실을 살펴보았다. 집안은 아침에 나갔던 그대로였다. 딱히 병규가 손을 대는 게 싫다거나 까다롭게 굴고 싶은 건 아니었지만 자신도 모르게 눈길이 갔을 뿐이었다.

현태는 이불도 덮지 않고 단단히 팔짱을 낀 채 모로 누워 있는 병규의 얼굴을 내려다보았다. 도대체 무슨 바람이 불어서 집까지 찾아 왔을까. 거의 4년 만에 처음 보는 아버지였다. 직접 얼굴을 보고 나니 그제서야 그 얼굴을 알 것 같았다. 왼쪽 끝이 조금 찌그러진 입술에 좁고 낮은 코, 희미한 눈썹과 두툼하게 처진 눈두덩이. 하지만 4년 동안 병규의 얼굴은 조금 변해 있었다. 이제 67세이니 예전보다 나이 들어 보이는 게 당연했다. 하지만 늙은 아버지의 얼굴을 바라보는 현태의 마음은 냉랭하기만 했다. 병규가 불행하기를 바라는 건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그를 안쓰러워할 마음도 없었다.

그 때 기척을 느낀 병규가 하얗게 센 머리를 쓸어 넘기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직 피곤이 가시지 않았는지 주름지고 무거운 눈꺼풀이 눈 위에 짓물러 있었다. 병규는 이거 오랜만이구나 하고 현태를 향해 커다란 이를 드러내 보였다.

“생각보다 빨리 왔구나.”

“네. 더운데 에어컨이라도 켜놓고 있지 그러셨어요.”

“에어컨이 있는지 몰랐구나.”

“저녁 안드셨죠? 배고프세요?”

“아니, 별로.”

“기다리세요. 저녁 차릴게요.”

현태는 에어컨을 켠 뒤 부엌으로 들어갔다. 얼른 본론이 듣고 싶었지만 만나자마자 당장 얘기해 보라고 재촉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 얘기를 듣기 위해 현태는 암묵적인 모든 절차를 밟아야 할 것이다. 저녁을 먹고, 안부를 묻고, 그 간의 일에 대해 담소를 나누고, 식사 후에 커피를 마시고, 다시 자질구레한 얘기를 하고…….

그는 냉장고를 뒤져 무언가 먹을 것이 있나 살펴보았다. 밑반찬은 몇 가지가 있었지만 마저 긁어 먹으려고 남겨 두었던 오징어 찌개는 내놓을 만한 것이 못되었다. 그는 새로 김치찌개를 끓이고 냉동실에 몇 달 동안 처박아두었던 조기도 두 마리 구웠다. 생선 껍질이 타는 비릿한 냄새가 부엌에 퍼지자 그는 창문을 열었다. 밖을 내다보니 대여섯 명의 아이들이 무리를 지어 함부로 찻길을 건너면서 자신들이 대단한 불한당이라도 되는 것처럼 소리를 질러대고 있었다. 한 운전자가 차를 세워놓고 아이들에게 주의를 주었지만 그들은 도리어 운전자에게 혀를 내밀며 조롱하고는 골목으로 뛰어가 버렸다. 그 때 길 건너에는 노란색 학원 가방을 등에 맨 아이들 셋이 재잘거리며 걸어가고 있었고, 분홍색 드레스를 차려 입은 2살 남짓 된 여자아이가 엄마 손을 잡고 뒤뚱거리면서 아파트 입구에서 나오는 게 보였다. 어찐 된 일인지 오늘따라 온통 어린애들 천지였다. 아니, 오늘 뿐만이 아니었다. 거리에는 늘 어린아이들이 있었다. 세상에서 제일 흔한 게 어린애들 아닌가. 그런데도 사람들은 끊임없이 아이를 낳고 있으니 정말 이상한 일이었다. 그들은 정말로 아이가 갖고 싶은 걸까, 아니면 그저 부모가 되고 싶은 걸까, 그도 아니면 달리 할 일이 없는 건가. 나라에서는 마이너스로 떨어진 출산율에 전전긍긍하면서 – 놀랍게도 출산을 노골적으로 경제 생산성과 연결시키면서 - 갖은 협박과 혜택으로 사람들이 아이를 갖도록 부추기고 있다. 개인적 욕망과 국가적 욕망이 이토록 완전한 합일을 이루는 경우도 흔치 않을 것이다. 그렇게 해서 아이들이 태어나고 또 태어나는 것이다. 역시나 달리 할 일이 없어서 노동을 하거나 애를 낳거나 자살을 하는 아이들이.

현태는 생선을 뒤집으며 슬쩍 거실을 살펴보았다. 병규는 소파에 앉아 멍하니 딴 생각에 잠겨 있었다.

“텔레비전이라도 보고 계세요.”

현태가 리모컨으로 텔레비전을 켜며 말했다.

“뭐 볼게 있어야지.”

“뉴스라도 틀어드려요?”

“어, 그래.”

현태는 채널을 뉴스로 바꾼 뒤 리모컨을 병규에게 건네주고 다시 부엌으로 돌아왔다. 아무렇지 않게 행동하고 있었지만 조금만 움직여도 온통 바스락거리는 이 메마른 분위기가 견딜 수 없이 불편했다. 굳이 어린 시절을 돌이켜 볼 필요도 없이 현태가 병규에게 아무런 애정이 없다는 건 확연했다. 혹여 이대로 서로 다시는 보지 못한다 해도 현태는 아쉬울 게 전혀 없었다. 부자지간이라는 공식적인 직함만 아니었어도 두 사람의 인연은 4년 전 병규가 집을 나갔을 때 완전히 끝났을 것이다. 그런데도 병규는 염치 좋게 현태의 집에 찾아오고, 또 현태는 그런 병규에게 당연하다는 듯이 식사를 차려주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피가 물보다 진하다느니 따위의 감상적인 억설 때문은 아니었다. 그저 현태에게는 시시한 상식과 관습을 깨부술 만큼의 분노 역시 없었기 때문이었다. 단지 필요한 것은 약간의 인내뿐이고, 그것은 이미 그에게 익숙한 일이었다. 부모라는 역할은 선택할 수 있지만 자식이라는 역할은 선택할 수 없다는 점에서 자식들은 부모들보다 더더욱 인내해야 했다.

“식사하세요.”

현태의 부름에 병규가 텔레비전을 끄고 식탁 앞에 와 앉았다. 두 사람은 별다른 말없이 수저를 들었다. 젓가락이 딸깍이며 그릇에 부딪히는 소리가 거슬렸지만 그들은 애써 모른 척 했다.

“그래, 현지는 잘 있고?”

몇 수저 입에 떠 넣던 병규가 슬그머니 입을 열었다.

“네, 그렇죠, 뭐.”

“졸업은 언제 한다고 했지?”

“아마 2, 3년은 더 있어야 될 거에요.”

“참, 고생이 많겠다. 그, 최서방도 잘 있고?”

“네.”

현태는 병규가 현지의 남편인 우석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할 거라고 확신했다. 사실 병규가 우석의 성을 알고 있다는 사실조차 의외였다. 병규가 집을 나간 뒤 현지의 결혼식이 치러졌고, 병규는 식장에서 잠깐 자리만 지키다가 재빨리 사라졌던 것이다. 딱히 병규에게 가라고 한 사람은 없었지만 그렇다고 붙잡는 사람도 없었다. 오히려 그가 사라지고 나자 모두들 속이 후련했다. 멀쩡한 가족인 척 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닌데다가 축복받아야 할 결혼식 전체가 가증스러워지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 엄마도 잘 있니?”

미숙의 얘기가 나오자 현태는 순간 찔끔했다. 만약 미숙이 지금 이 두 사람의 모습을 본다면 불덩어리라도 삼킨 것처럼 길길이 날뛸 것이 뻔했다.

“네, 그냥, 여전하세요.”

“그래. 다행이구나.”

병규는 어느새 안색을 펴고 입맛을 쩍쩍 다시며 밥을 먹기 시작했다. 몇 마디 말로 최소한의 밥값은 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현태는 문득 병규가 정말로 순수하게 자식과 밥 한 끼를 먹기 위해 온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이가 들면 핏줄이 당긴다던데, 부인이고 자식이고 다 내팽개치더니 새삼 자식들이 눈에 밟혔던 걸까? 더 나이 들기 전에 아들과 잘 지내보려고 결심이라도 한 걸까? 그렇게 생각하니 현태는 조금 긴장이 풀렸다. 일단 크게 골치 아픈 일이 아니라는 것만으로도 다행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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