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면증 (46)

by 곡도




그날 이후 그는 마담에게 아무런 연락도 하지 않았다. 반면 마담은 몇 번이나 그에게 문자를 보냈다. ‘혹시 화난거야?’ ‘마음 풀고 연락해’ ‘불쾌했다면 미안해’ 등등의 식이었다. 마담으로서는 정기적으로 꼬박꼬박 들어오던 수입을 포기하기 어려웠을 것이고, 현태가 이렇게 연락을 끊을 줄 알았다면 그렇게 입찬소리는 하지 않았을 거라는 후회도 했을 것이다. 현태는 마담의 문자를 받는 족족 삭제해 버렸다. 다시는 만나지 않을 참이었다. 하지만 섹스를 할 만한 상대가 없다는 건 역시 곤란한 일이었다. 물론 마음만 먹는다면 다른 술집에서 어리고 예쁘장한 여자를 구할 수도 있겠지만 누군가와 다시 처음부터 관계를 만들어가야 한다는 사실이 지긋지긋하기만 했다.

슬슬 휴가철이 끝나가고 있는 거리에는 일찌감치 사람들의 발길이 뜸해졌다. 하루 종일 켜놓은 에어컨 바람 때문인지 저녁이 되자 두통이 심해지더니 한동안 감감했던 손 떨림이 또 시작되었다. 현태는 그만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아직 밖이 대낮처럼 환했기 때문에 그럴 수가 없었다. 해가 지기도 전에 자신의 가게만 일찍 문을 닫는 건 주변사람들과 공동체에 대한 나태함과 냉담함을 내보이는 것 같아 부끄럽게 여겨졌다.

원래 현태는 이번 주 월요일부터 일주일 정도 가게 문을 닫고 휴가를 가질 계획이었다. 집 안 깊숙이 틀어박혀 원하는 만큼 늦잠도 자고 내키는 대로 낮잠도 자면서 일주일을 빈둥빈둥 보내려 했다. 그런데 어쩐지 어영부영하다 보니 벌써 수요일이었다. 내일부터라도 가게 문을 닫고 나흘 정도 쉬어볼까 곰곰이 생각에 빠져 있는 차에 누군가 문을 열고 가게 안으로 들어왔다. 다름 아닌 선영이었다. 집에서 나오는 길인지 하늘색 면 티에 베이지색 면바지를 입고 머리를 하나로 틀어 올린 가벼운 차림이었다.

“안녕하세요.”

“아, 선영씨. 어쩐 일이에요. 이번 주는 수업 쉰다고 하지 않으셨어요?”

“예, 꽃 때문에 온 건 아니구요, 다른 게 아니라, 저, 집에서 부침개를 만들었는데, 좀 넉넉하게 만들어서 드셔보시라고 가져왔어요.”

그녀는 현태의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고 들고 있던 종이 가방에서 빨간색 뚜껑의 찬통을 꺼내 그에게 내밀었다. 갑자기 먹을 걸 싸왔다는 선영의 말에 현태는 당황스러웠다. 따로 볼일이 있었다면 모를까 음식을 주기 위해 일부러 왔다는 건 의아한 일이었다. 현태는 일단 넙죽 인사하며 찬통을 두 손으로 받아 들었다. 그런데 음식을 건네고 돌아갈 거라고 생각했던 선영이 건너편 소파에 자리를 잡고 앉자 그는 정말로 놀라고 말았다.

“제가 먹고 그릇은 나중에 드릴게요. 기다리지 않으셔도 돼요.”

현태가 손사래를 쳤지만 선영은 멋쩍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혼자 먹으면 맛이 없잖아요.”

하는 수 없이 그는 엉덩이를 엉거주춤 소파 끝에 걸치고 어색한 손놀림으로 찬통 뚜껑을 열었다. 찬통 안에는 해물파전과 김치파전이 마름모 모양으로 가지런히 썰어져 담겨 있었다.

“혹시 벌써 저녁 드셨어요?”

그녀가 종이 가방 속에서 나무젓가락을 꺼내며 물었다.

“아, 아니, 아직이에요.”

현태는 여전히 어리둥절했지만 그녀가 껍질까지 까서 건네주는 젓가락을 받아 들고 얼른 김치부침개 하나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그것을 베어 물 생각도 못하고 한 입에 통째로 넣고는 재빨리 우물거리며 씹었다. 하지만 맛에 전혀 집중할 수 없었기 때문에 부침개는 기름에 절여진 골판지처럼 입안에서 헛돌았다. 그는 그것을 억지로 꿀꺽 삼키며 말했다.

“맛있네요.”

“그래요? 다행이에요. 좀 싱거운 것 같아서 걱정했는데.”

“아니에요. 제가 원래 싱겁게 먹는 편이라서요. 짜게 먹는 게 제일 안 좋다고 하잖아요.”

그리고 두 사람은 더 이상 할 말이 없어서 입을 다물었다. 난처해진 현태는 계속 부침개를 집어먹었고, 그동안 그녀는 소파 옆에 놓여있는 화분들을 구경하는 척했다. 분위기가 어색하다는 건 두 사람 모두 알고 있었다. 상대방이 그것을 알고 있다는 것 또한 서로 잘 알았다. 그런데도 왜 그녀가 버티고 있는지 그로서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는 빨리 찬통을 비워 주기 위해 꾸역꾸역 부침개를 입 안으로 밀어 넣었다.

“벌써 다 드셨어요?”

“네. 아, 잘 먹었습니다. 마침 오늘 도시락을 안 가져와서 컵라면으로 때울까 했거든요.”

얼떨결에 현태는 불필요한 거짓말까지 늘어놓았다. 도시락은 책상 밑에 멀쩡하게 놓여 있었던 것이다. 그가 찬통을 정리해서 내밀자 그녀는 그것을 도로 종이 가방 안에 넣었다. 이제 가려나 싶어 현태는 엉덩이를 들썩였지만 그녀는 미적거리며 태평하게 말했다.

“커피 한잔 마실까요?”

무슨 할 말이라도 있는 건가? 당장 그의 뱃속에서 소화되지 않은 채 쌓여있는 빈대떡처럼 거북하고 느글거리는 불안감이 그를 사로잡았다. 그는 얼른 커피 두 잔을 만들어 한 잔을 그녀에게 내밀었다. 선영은 현태가 건네준 뜨거운 종이컵을 이리저리 만지작거리다가 입을 열었다.

“저기, 옆 가게 사장님하고 친하셨어요?”

“네?”

“핸드폰 가게 사장님이요.”

“네?”

“자살하셨다면서요.”

갑자기 수철에 대한 얘기가 나오자 현태는 반사적으로 몸을 움츠렸다. 그는 얼떨떨하게 그녀를 쳐다보았다.

“예전에 꽃 사러 왔을 때 가게에 옆집 사장님이 와계신 걸 본 적이 있어요. 사장님께서 그분한테 노닥거리지 말고 빨리 가서 핸드폰이나 팔라고 하셔서, 아, 옆에 핸드폰 가게 사장님이시구나, 했었어요. 그때 보니까 두 분이 많이 친해보이더라구요.”

그는 반박하기 위해 반사적으로 입술을 달싹였다. 평소에 다른 사람들에게 그랬듯이 수철과 별로 친하지 않았다는 걸 못 박아둘 참이었다. 그러나 그는 이것이 수철에 대해 제대로 얘기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는 걸 알았다. 그와 수철이 정말 친했었는지 여전히 확신할 수 없는 것도 사실이었지만, 현태는 결국 인정하기로 했다.

“네, 친했다고 할 수 있죠. 3년 가까이 옆에서 지냈으니까요.”

“네.”

“제일 친한 친구였어요.”

그는 생각지도 않았던 얘기까지 해버리고는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무슨 자백이라도 한 것처럼 지쳐서 멍하니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미지근하게 식어버린 종이컵을 손가락으로 꼼지락거리며 입을 열었다.

“며칠 전에, 사장님한테 옆집 사장님이 자살하셨다는 얘기를 들은 후로, 계속 마음이 편치 않았어요. 저 혼자 부풀려서, 괜한 오지랖인지도 모르지만, 꽃집 사장님도 좀 걱정이 됐구요. 아마 본인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놀라셨을 거예요.”

그리고 그녀는 잠시 숨을 멈추더니 말을 이었다.

“우리 언니도 자살했거든요.”

현태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것처럼 그녀 쪽으로 몸을 숙였다. 그러나 그녀는 별다른 미동이 없었다.

“제가 열여섯 살 때요. 언니는 저보다 두 살이 많았는데, 그쯤에 성적도 잘 안 나오고, 친구들하고 문제도 좀 있었던 것 같은데, 아니, 사실 정확한 이유는 잘 모르겠어요. 모르겠어요."

그녀는 마치 누군가를 얕보는 것처럼 콧바람을 내뿜었다.

"인터넷에서 만난 어떤 여자하고 남자 하고, 이렇게 셋이서 모텔에서 약을 먹었는데 남자는 살아났고 저희 언니 하고 그 여자는 못 깨어났어요. 뉴스에도 나왔으니까 보셨을지도 몰라요. 혹시 아세요?”

현태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들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 아니라 너무나 흔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장례를 치르고도 한동안은 언니가 그렇게 됐다는 게 너무 이상했어요. 슬프지도 않았어요. 그냥, 뭐랄까, 황당하다고 해야 할까. 좀 웃기다고 해야 할까, 어이없다고 해야 할까.”

막상 말을 꺼내긴 했지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그녀는 입을 다물었다. 기껏 늘어놓은 말도 상투적이고 모호하기만 했다. 두 사람은 고개를 숙이고 말없이 앉아있었다. 잠시 후 현태가 불쑥 입을 열었다.

“언니 되시는 분이, 돌아가시고 나서, 혹시 그런 생각도 해보셨어요? 그러니까, 혹시 내가 뭘 잘못한 건 아닐까 하고…….”

“죄책감이요?”

“말하자면 그런 거요.”

“글쎄요. 솔직히 말하면 죄책감 같은 건 없었어요. 내 책임으로 돌리기에는 너무 엄청난 일이라…….”

“책임은 없지만, 막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그런 생각은 안 들었어요?”

현태가 그녀의 말을 참을성 없이 가로채며 물었다. 자신의 목소리가 남의 목소리처럼 뻣뻣하게 들렸다.

“모르겠어요. 그런 생각이 얼핏 떠올랐던 것 같기도 한데, 만약 막을 수 있었다고 해도 대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는 건지……. 이럴 바에야 차라리 언니가 아예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거라는 생각도 들고, 아니, 실은 정작 언니 생각은 별로 안 했던 것 같아요. 아무 생각도 안 했어요. 그냥, 처음부터, 모든 게 까마득히 처음부터, 이상하기만 하더라구요.”

그녀의 목소리는 처음과 별반 다름이 없었다. 표정도 여전히 차분했다. 어찌 보면 진심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그녀는 건조해 보였다. 하지만 현태는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떤 부분에 대한 동의인지 그 자신도 알 수 없었다. 그녀는 더 이상 할 말이 없는지 입을 다물었다. 현태도 할 말이 없었다. 두 사람 사이에는 무겁고 긴 침묵이 이어졌다. 잠시 후 선영이 입을 열었다.

“그거 아세요?”

“뭐요?”

“전 세계적으로 40초마다 한 명씩 자살하고 있데요.”

“그래요?”

“그러니까 지금 우리가 얘기를 나누는 동안에도 50명 정도가 자살한 거예요.”

그것은 이제껏 현태가 들어 본 얘기 중에 가장 끔찍하고 비극적인 얘기였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그는 곧바로 웃음이 터졌다. 선영도 웃었다. 두 사람은 웃음을 멈출 수가 없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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