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면증 (44)

by 곡도




현태는 오늘 예정에도 없이 오마담과 갑작스레 약속을 잡았다. 수철이 죽었다는 소식을 전해주었던 날로부터 3주 만에 처음이었다. 하지만 딱히 섹스를 하고 싶었던 건 아니었다. 오늘 새벽에 또 한 마리의 고양이가 차에 치여 죽었고, 꼭 그 때문은 아니지만, 머릿속이 자꾸 울렁거려서 무작정 그녀가 떠올랐던 것이다. 그녀와 술이라도 한잔 하면서 쓸데없고 시시껄렁한 얘기나 실컷 떠들어대고 싶었다. 그런데 - 자신도 전혀 예상치 못하게 - 현태는 모텔방에 들어서자마자 곧바로 마담에게 달려들었고 옷도 제대로 벗지 않은 채 허둥지둥 그녀 안으로 파고들었다. 당황한 마담이 까르륵 비명을 질렀지만 그는 막무가내였다. 단지 그녀의 두툼한 육체와 그를 붙들어 올리는 억센 팔다리가 너무나 기꺼울 뿐이었다.

그것은 참으로 길고 집요한 섹스였다. 행위가 끝나기도 전에 벌써 지쳐 버린 오마담은 현태씨가 이런 남자인지 몰랐다는 둥, 오늘은 돈을 곱절로 받아야겠다는 둥의 천박한 농담을 해댔다. 현태 역시 이렇게 온 힘을 다해 섹스에 열중해 본 건 오랜만이었다. 사실 그것은 첫사랑이었던 정민에게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오래된 기억이었다. 자신을 통째로 허공에 던져버린 듯 까마득하다가 결국 새하얀 바닥으로 인정사정없이 고꾸라져 나가떨어지는 섹스.

마침내 기력이 소진된 그는 끙끙대며 마담에게서 떨어져 나왔다. 그리고 미처 이마의 땀을 닦아내기도 전에 돌연 살 의욕도 죽을 의욕도 없는 무기력한 상태에 빠져들었다. 그는 마담에게서 돌아누워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썼다. 온몸이 축 늘어지면서 금방이라도 깊은 잠에 빠져들 것 같았다. 하지만 어찌 된 셈인지 점점 정신이 또렷해지더니 곧 이불 속에서 말똥말똥 눈이 떠졌다. 살 의욕도 죽을 의욕도 없이, 심지어 잠잘 의욕마저 사라져버린 것 같았다. 그는 슬그머니 이불 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오마담이 침대 머리에 기대앉아 뭉개진 립스틱으로 울긋불긋해진 입술에 담배를 물고 불을 붙이고 있었다. 평소 담배 연기라면 질색하는 현태였지만 오늘만큼은 콧구멍을 열고 씁쓸한 담배 향을 맡아 보았다. 역시나 역겨운 냄새였다. 하지만 그는 일부러 몇 번이나 폐 속 깊숙이 숨을 들이켰다.

“안 잤어? 아, 담배 때문에 그래? 끌까?”

현태가 담배 연기를 싫어한다는 걸 알고 있는 마담이 재떨이로 손을 뻗었다.

“아니요. 괜찮아요.”

그는 오마담의 허리를 덥석 끌어다가 그녀의 허벅지에 머리를 올려놓았다.

“아유 참, 진짜 오늘따라 왜 이러는지 모르겠네.”

마담은 콧소리를 내면서도 순순히 허벅다리를 내주었다. 그는 그녀의 다리를 베고 누워 그녀가 내뿜는 회색빛 담배 연기를 물끄러미 올려다보았다.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담배 연기가 나른하고 부드럽게 허공으로 퍼져나갔다. 그는 문득 마음이 놓였다.

“현태씨는 참 순진한 거 같아.”

마담이 협탁 위에 놓여있던 생수병을 따서 몇 모금 마시고는 물병 안에 담뱃재를 털어 넣으며 불쑥 말했다.

“그래요?”

딱히 기분 좋은 평가는 아니었지만 현태는 순순히 대꾸했다.

“나 같은 여자하고 모텔 들락거리는 게 이제까지 했었던 일 중에 제일 나쁜 짓이지?”

마담은 약간 깔보는 듯한, 그러나 다정하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렇지도 않아요.”

“에이, 뭘 아니야. 보나마나 죽 범생이처럼 살았겠지.”

“아니에요. 저기, 예전에 구치소에 들어갔던 적도 있어요.”

“어머, 구치소? 정말? 아니, 왜?”

현태는 입을 다물었다. 어린애 어르듯 자신을 놀리는 마담의 태도에 발끈해서 그만 쓸데없는 말을 해버리고 만 것이다.

“왜? 무슨 일로 구치소에 갔는데?”

현태가 얼른 대답하지 못하자 마담은 더욱 흥미가 끌리는지 피던 담배를 끄고 새 담배에 불을 붙이며 재촉했다.

“응? 말해 봐. 샌님 같은 현태씨가 구치소에 갔었다니 믿겨지지 않아서 그래. 무슨 일 때문이었어? 술 마시다가 싸움이라도 했어?”

“아뇨. 그게 아니라, 저기, 그게, 고발을 당하는 바람에.”

“고발? 무슨 일로 고발을 당했는데?”

“스토커요.”

“스토커? 현태씨가? 누구를 따라다녔길래?”

“헤어진 여자 친구요.”

“와아, 옴마나, 진짜야? 그러니까 헤어졌는데 현태씨가 그 여자를 못 잊고 계속 따라다닌 거야? 세상에. 늘 말도 없고 점잖은 현태씨가 그랬다니 상상이 안되네.”

마담은 퍽이나 재미있는지 까르르 웃어재꼈다.

“대체 어떻게 했길래 구치소까지 잡혀갔데?”

“그냥, 따라다닌 것밖에 없어요.”

“도대체 얼마 동안이나?”

“한 4개월 정도요.”

“그럼 그 여자가 경찰에 신고한 거야?”

“네.”

“그래서 어떻게 됐어?”

“그 여자 집 앞에서 경찰들한테 붙잡혀서 구치소에 있다가 접근 금지 명령 받고 180만원에 합의 봤어요.”

현태는 최대한 건조하게 말했지만 마담은 또 다시 웃음을 터트렸다.

“아이고야, 4개월씩이나 따라다니고 180만원에 합의 봤으면 싸게 먹혔네. 여자 쪽에서야 질겁할 일이었겠지. 어쨌거나 현태씨 다시 봤네. 진짜 의외야. 그런 면이 있는 줄은 전혀 몰랐어.”

마담은 담배 연기를 풀풀 날리며 웃음을 멈출 줄 몰랐다. 결국 현태 역시 그녀를 따라 웃지 않을 수 없었다. 뭐가 웃긴 건지는 알 수 없었지만 웃고 있자니 정말 웃겨졌다.

“저기요.”

“응?”

마담이 현태의 얼굴을 피해 담배 연기를 길게 내뿜으며 대답했다. 현태는 마담의 허벅지 안쪽을 한 손으로 슬슬 쓰다듬었다.

“우리 같이 살까요?

“뭐?”

“우리요, 같이 살까요?”

그리고는 재빨리 덧붙였다.

“생활비는 내가 댈게요.”

다분히 즉흥적인 얘기였지만 그는 침착했다.

“무슨 얘기야?”

마담은 재채기가 나오기 직전 같이 우스꽝스럽고 멍청한 표정을 지으며 그를 내려다보았다.

“그냥, 같이 살아도 좋을 것 같아요. 서로 잘 맞는 것 같고.”

“잘 맞는다고?”

마담은 낄낄거리며 웃었다. 천박하다 싶을 정도로 크게, 그리고 너무 오래 웃었기 때문에 그는 그녀의 허벅지에서 몸을 일으켰다. 결국 그녀는 현태가 수치심을 느낄 때까지 실컷 웃어 재끼다가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며 말했다.

“현태씨 그렇게 안 봤는데, 사람 되게 웃기는구나? 싱거운 데가 있네?”

“아뇨. 진짜로요. 같이 살아요.”

“허튼 소리 그만 해. 내가 왜 현태씨 하고 같이 살아? 오냐 오냐 해줬더니 너무 기어오르네.”

마담은 빙글빙글 능글맞게 웃으며 고개를 돌려버렸다. 기다렸다는 듯이 단박에 허락해 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조롱당할 거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에 현태는 잠시 말문이 막혔다. 하지만 얘기를 꺼내 놓고 이대로 물러설 수도 없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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