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뒤 일주일 내내 현태는 몸 상태가 좋지 않았다. 남대문에 다녀왔던 그날 밤을 꼬박 새웠던 탓인지 두통과 손 떨림, 다리 굳는 증세가 점점 심해지더니 급기야 오늘 아침에는 화장실 문지방에 걸려 넘어져서 그대로 1시간이나 꼼짝하지 못했다. 가위에 눌린 것과도 비슷했는데 멀쩡한 정신이다 보니 더욱 곤혹스러웠다. 그는 1시간 동안 땀에 흠뻑 젖은 채 끙끙거리다가 겨우 움직일 수 있었고, 그러고도 2시간이나 더 휴식을 취한 후에야 자리에서 일어날 수 있었다.
억지로 출근하긴 했지만 현태의 몸은 도무지 나아지지 않았다. 당연히 기분도 엉망이었다. 그는 소파에 허리를 구부리고 앉아 오그라드는 두 손을 멀뚱히 내려다보며 불길하고 불쾌한 예감에 휩싸였다. 어딘가 잘못되었다는 건 이제 분명했다. 문제는 어디가 얼마큼 잘못되었는가였다. 그가 제일 먼저 떠올린 건 암이었다. (그가 알고 있는 치명적인 병이라고는 암과 에이즈 정도였다.) 암환자를 실제로 본 적은 없었지만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았을, 코에 굵은 호스를 끼고 하얀 시트가 깔린 철재 침대에 누워 항암제 링거를 맞고 있는 해골 같은 민머리 환자의 모습이 떠올랐다. 가망 없이 죽어 가면서도 버리지 못하고 매달리는, 항암제만큼이나 독한 희망 때문에 환자는 더욱 바삭바삭 말라갈 것이다. 생명과 물질이 아슬아슬하게 접해있는 그 희박한 경계로 무심히 흘러들어가면서 말이다. 자신이 그런 입장이라면 과연 버틸 수 있을까? 버티지 못한다면 차라리 포기할 수는 있을까? 어느 쪽이 더 쉬우며 어느 쪽이 더 어려울까?
“안녕하세요?”
그는 소스라치게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선영이 어느새 그의 앞에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자신의 두 손을 꽉 마주 잡았다.
“오늘 좀 늦게 출근하셨나 봐요?”
“아, 예. 어떻게 아셨어요?”
“오전에 와보니까 가게 문이 닫혀 있더라구요.”
“아아, 어디 좀 다녀오느라. 헛걸음하시게 해서 죄송해요.”
“아뇨, 괜찮아요. 어차피 지나가는 길이었어요. 그런데 저기, 어디 아프세요?”
“네?”
“안색이 너무 안 좋아요.”
“좀, 감기 몸살인가 봐요.”
현태는 찡그리듯 웃었다. 예전에도 선영이 자신의 안색을 알아봐 주었던 것이 생각났다.
“요새 환절기라 감기가 독하데요. 약은 드셨어요?”
“아뇨.”
“안 드셨어요? 왜요?”
“전 원래 약을 잘 안 먹어요.”
“무슨 말씀이세요. 얼굴이 너무 안 좋아요. 감기도 잘못 놔두면 큰일 난다는 거 모르세요? 그럼, 잠깐 기다리세요. 제가 요 옆에 약국 가서 감기약 좀 사올게요.”
“아니에요. 이제 나아지고 있어요.”
“그러다가 또 심해지는 게 감기라니까요.”
그녀는 현태가 말릴 새도 없이 뛰어 나가더니 잠시 후 하얀 종이봉투를 들고 돌아왔다. 그녀는 약국 봉투에서 하얀색과 파란색 알약을 하나씩 꺼내 드링크제와 함께 그에게 내밀었다.
“자, 지금 드세요. 원래 약은 혼자 챙겨 먹기 힘든 거거든요.”
이것은 주제넘은 친절이 아닐까? 그러나 그는 불쾌하지 않았다. 그는 그녀의 손에서 순순히 알약을 받아 입 안에 털어 넣었다.
“자, 여기 약 드리고 갈 테니까, 이따 저녁에도 꼭 챙겨 드세요, 하루에 세 번 먹는 거래요.”
현태는 고개를 끄덕이며 슬쩍 그녀의 안색을 살폈다. 그녀는 사심 없고 씩씩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녀가 자신을 똑바로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에 그는 갑자기 긴장이 되었다. 그녀는 정말 지금 이대로와 같은 사람일까?
“저, 꽃 가져갈게요.”
우두커니 서 있는 현태에게 선영이 자신이 온 이유를 상기시켰다. 현태는 우스꽝스러울 만큼 깜짝 놀라더니 허둥지둥 냉장고로 달려가 포장해 놓았던 꽃을 꺼내왔다. 품에 안은 국화 향기 때문인지 아니면 감기약 때문인지, 현태는 머리가 어지러워서 그만 발을 헛딛고 비틀거렸다.
“아무래도 일찍 가게를 닫고 병원에 가보시는 게 좋겠어요.”
선영이 재빨리 그의 팔을 잡아 올리는 시늉을 하며 말했다.
“아니에요. 약 먹었으니까 집에 가서 쉬면 좋아질 겁니다.”
“그럼 일찍 들어가셔서 저녁 든든하게 드시구요, 꼭 약 챙겨 먹고 푹 쉬세요.”
그녀는 돈을 치르고 돌아서려 했다.
“저기요.”
다짜고짜 그녀를 불러 세운 현태는 당황해서 말을 더듬었다.
“네?”
“저기, 혹시, 오늘 시간 되시면 저하고 저녁 드실래요?”
“네?”
그녀는 미세하게 웃으며 현태를 바라보았다.
“혼자 살다 보니 밥 해먹는 게 귀찮아서요. 어차피 사 먹어야 될 거 같은데 혼자 먹기도 좀 그렇고, 괜찮으시면 제가 저녁 살 테니까 같이 먹어주세요. 그렇지 않아도 그동안 음식 해주신 것도 있고 해서 제가 감사의 뜻으로 밥 한 번 사려고 했거든요.”
구구절절 설명을 하면서도 현태는 고개를 숙여 선영의 눈을 피했다. 자신이 너무 시건방을 떠는 게 아닐까, 과연 어디까지가 적당한 선일까, 현태는 늘 이런 부분이 어렵고 곤혹스러웠다. 그녀는 잠시 망설이는가 싶더니 현태가 막 손사래를 치려는 찰나에 입을 열었다.
“그럴게요. 그럼 몇 시쯤으로 할까요?”
“아, 그럼 저기, 6시쯤 어떠세요?”
“전 괜찮아요. 제가 6시에 가게로 올게요.”
“저, 혹시 드시고 싶은 게 있으시면…….”
“전 아무 거나 좋아요. 시끄럽지 않은 곳이면 더 좋구요.”
“아, 네.”
“그럼 이따가 뵐게요.”
그녀는 입을 둥글게 말면서 어색하게 웃음 짓고는 안경을 추켜올리며 가게를 빠져나갔다.
그제야 현태는 한숨을 길게 몰아쉬며 어깨를 폈다. 몇 달 만에 처음으로 어깨를 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는 그녀가 이미 사라진 거리를 유리문 너머로 슬쩍 넘겨보았다. 그녀가 무슨 생각으로 저녁식사 초대에 응했는지 그로서는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즉흥적이고 막연했던 기대가 배신당하지 않았다는 것만으로도 그의 가슴은 뿌듯했다.
하지만 저녁식사 중에 또다시 사지가 떨리거나 마비가 오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그를 사로잡았다. 그 생각은 곧바로 그를 공포에 가까운 상태로 몰아넣었다. 그는 가게 문을 잠그고 'Close' 간판을 내걸고는 최대한 길게 몸을 펴고 소파에 드러누웠다. 문이 단단히 잠겨있다는 사실에, 그렇게 그의 가게가 공적인 영역에서 사라졌다는 사실에, 그렇게 자기 자신도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사실에 그는 더없이 편안함을 느꼈다. 만약 사람이 문을 발명한 뒤 잠금장치를 발명하지 않았더라면 인류는 모두 신경쇠약에 걸리고 말았을 것이다.
두 손을 가슴에 얹고 최대한 바른 자세로 누은 그는 밝은 그림자가 얼룩덜룩 드리워진 천정을 텅 빈 눈길로 더듬었다. 천천히 오르내리는 그의 가슴이 부드러운 정적을 만들어냈고, 축축하고 익숙한 식물냄새가 그의 아래턱을 노곤하게 어루만졌다. 이 작은 가게에서 그는 5년 동안을 매일같이 일해 왔다. 그렇다고 딱히 이곳에 특별한 애정을 갖고 있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어쨌든 이제는 이곳을 벗어나는 것도 상상하기 힘들었다. 앞으로의 5년도, 그리고 또 그 뒤의 5년 역시도 이곳에서 보내게 될까. 여기까지 생각하자 그는 더 이상 아무것도 떠올릴 수 없었다. 5년 후는 100년 후만큼이나 까마득했고 그 이상은 영원과도 같았다. 그는 마치 그 영원 속으로 빨려 들어가듯 어느새 잠에 들었다.
푹 잠들었던 그는 5시에 정확하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한 잠 잘 자고 일어난 덕에 몸이 한결 가뿐했다. 그는 세수를 하고 이빨까지 닦고는 가게 문을 열고 선영을 기다렸다. 선영은 6시 5분 전에 가게에 나타났다. 그녀가 낮과는 다른 옷을 입고 있다는 걸 현태는 눈여겨보았다. 하얀색 가디건과 밝은 풀색 롱치마가 화사하고 깨끗한 느낌을 주었다.
“몸은 좀 어떠세요?”
그녀가 현태의 낯빛부터 살피며 물었다.
“이제 괜찮아요. 아까 먹은 약 덕분인가 봐요.”
“그래요? 다행이네요.”
“저기, 요 앞에 있는 이탈리아 레스토랑에 갈까 하는데, 어떠세요?”
“네, 저는 좋아요.”
그녀는 현태의 장소 선택이 싫지 않은 눈치였다. 사실 현태가 이탈리아 레스토랑을 생각해 낸 건 수철 덕분이었다. 여자들은 비싸기만 하고 먹을 거 하나 없는 이탈리아 레스토랑에 환장한다면서 곧잘 수철이 툴툴거렸던 게 떠올랐던 것이다. 만약 수철이 살아있었다면 분명 오늘 하루종일 자기가 더 신이 나서 현태가 넌더리를 낼 정도로 이것저것 조언하며 참견했을 것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