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면증 (58)

by 곡도




침대에 대자로 누운 채 현태는 멍하니 창문을 바라보며 약기운이 돌기를 기다렸다. 아침 8시가 넘었는데도 방안은 눅진한 회색빛으로 침침했다. 날씨가 흐린 모양이었다. 기압이 낮은 탓인지 약기운도 더 늦게 도는 것 같았다. 벌써 와글와글한 창밖의 소음이 그의 몸을 둔중하게 두드렸다. 그는 감각이 없는 발가락을 꼼지락거렸다. 창밖을 내다보고 싶었지만 뻣뻣해진 팔다리는 침대에 딱 붙어버린 것처럼 꼼짝하지 않았다. 오늘은 괜찮을까. 이틀 전 내장이 터진 채 죽어 있던 검은색 고양이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했다. 차바퀴에 절반이 짓뭉개진 내장은 신선하다고 해야 할지 생생하다고 해야 할지 찌를 듯이 선명한 선홍빛이었다. 그는 눈을 감았다. 그냥 이대로 꿈도 없이, 한 100년쯤만 푹 잠들었다가 일어나고 싶었다. 그럼 이 피로와 싫증이 조금은 가시려나. 그러나 이 성가신 육체는 그 단잠마저 방해하고 말 것이다.

20분이 지나자 서서히 핏줄을 타고 약기운이 번져오는 게 느껴졌다. 근육의 결들이 가느다란 실처럼 가닥가닥 갈라져 비비 꼬이는 듯한 미묘하고 불쾌한 감각이 온몸으로 퍼져나갔다. 눈이 파르르 떨리더니 울렁증과 구역질이 치밀어 올라 현태는 고개를 돌려 헛구역질을 했다. 하루에 세 번, 약을 먹을 때마다 이 난리였다. 온몸 구석구석이 내부에서부터 무자비하게 뒤틀렸고 때로는 두통이 너무 심해서 머리를 벽에 찧고 싶을 때도 있었다. 그는 이불에 얼굴을 묻고 이를 악다물다가 결국 참지 못하고 큰 소리로 고함을 질렀다. 아무도 보는 사람은 없었지만 비참하고 수치스러웠다.

그렇게 한참을 뒤척이고 나니 점차 몸이 편해졌다. 메마른 잎에 물이 도는 것처럼 쪼그라들었던 팔다리에 천천히 근육이 붙었다. 상체에 힘을 주자 정말로, 알 수 없는 원리에 의해 놀랍게도, 몸이 일으켜졌다. 현태는 침대에 기대앉아 막 수리를 끝낸 로봇처럼 자신의 팔을 이리저리 움직여 보았다. 조금 뻐근하기는 해도 이제야 팔다리가 자신의 몸뚱이에 붙어있다는 게 실감이 났다. 그래도 죽는 병은 아니니 너무 염려하지 말라던 의사의 위로가 머릿속을 둔탁하게 긁어내려 갔다.

현태는 침대에서 일어나 창턱에 기대어 밖을 내다보았다. 어둑한 아스팔트 도로 위로 그림자 없는 차들이 빠르게 미끄러지고 있었다. 특별히 눈에 띄는 건 없었다. 그의 눈가에 잔상으로 남아있던 선홍색도 감쪽같이 사라지고 없었다. 그는 밤새 묵혀두었던 숨을 가만히 내보냈다. 이제 하루를 시작할 준비가 된 것이다.

간단하게 준비를 마치고 집을 나선 그는 아직 온전히 감각이 돌아오지 않은 왼쪽 다리를 질질 끌면서 버스정류장으로 향했다. 차를 몰지 않은 지는 거의 한 달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 잘난 의사의 경고 때문은 아니었다. 완전히 손발이 말라비틀어질 때까지 어떻게든 운전은 계속할 생각이었다. 이런 몸으로 버스를 이용하는 건 죽기보다 싫었다. 그러나 자신이 몰던 차에 고양이가 치어 죽는 꿈을 꾼 뒤, 그는 그날로 운전을 그만두었다. 꿈속에서조차 그는 파킨슨병 환자였다. 브레이크를 밟으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발이 말을 듣지 않았다. 손가락 끝까지 시멘트처럼 굳어서 핸들을 돌릴 수도 없었다. 헤드라이트 불빛에 반사되어 유리알처럼 반들거리던 청푸른색의 두 눈과 그 덜컹하는 이물감이 잠에서 깬 뒤에도, 그리고 그 뒤로도 오랫동안 온몸에 생생하게 남아있었다. 그는 기억하지 못하지만 어쩌면 그동안 이 꿈을 수없이 되풀이해서 꾸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매일 밤마다 고양이를 구하고, 또 매일 밤마다 꿈속에서 고양이를 치어 죽이는 일을 반복하고 있었던 걸까.

그는 가던 길을 멈추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짙고 두터운 구름이 하늘을 빽빽하게 뒤덮고 있었다. 창밖으로 내다보았던 것보다 더 우중충한 날이었다. 그는 갑갑증을 느끼며 자동차 매연과 마른풀 냄새를 가슴 깊이 들이마셨다. 가로수는 어느새 천연하게 단풍으로 물들고 하나둘씩 낙엽을 떨구기도 했지만, 늦게까지 살아남은 매미들은 아직도 어디선가 악착같이 울어대고 있었다. 그 소리가 주파수가 맞지 않는 라디오 소음처럼 사방으로 퍼져나가며 얼떨떨한 진동을 만들어냈다. 그 탓인지 매일 오가는 익숙한 길인데도 그는 자꾸만 주변을 흘끔거렸다. 건물도, 아스팔트도, 사철 푸른 가시나무도, 사람들의 옷차림도, 우중충한 하늘만큼이나 진득한 잿빛이었다. 낮도 아니고 밤도 아닌, 빛도 그늘도 사라진 세상은 낡고, 무겁고, 딱딱한 물질 그대로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놓고 있었다. 그것은 너무나 현실적이어서 도리어 비현실적이었다. 나무들, 건물들, 표지판, 담벼락, 전신주, 자갈, 잡초, 간판들, 누군가 구겨 버린 종이컵, 담배꽁초……. (당연한 얘기지만) 저것들도 분명하게 실재하고 있었다. 아니, 가장 실재하고 있었다. 그 존재감에 압도되어 실용적인 용도나 가치 같은 건 실재의 저것들과는 아무 상관도 없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가령 저 15층짜리 유리 건물은 ‘건물’이라고 불리지 않아도, ‘건물’로서 사용되지 않아도, 누가 쳐다보지 않아도, 그대로 완전하며 스스로 독립적이었다. 필요 때문에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진 게 아니라 원래부터 그 자체로 존재하고 있던 것을 사람들이 건물로, 전신주로, 벤치로, 쓰레기통으로, 신호등으로, 자동차로 이용하고 있는 것 같았다. 담배꽁초의 기원이 담배가 아닌 담배꽁초인 것처럼 말이다.

현태는 길모퉁이에서 자신의 앞길을 가로막고 있는 우체통을 마주 보았다. 그의 어깨정도 높이의 우체통은 새로 도색한 자줏빛으로 멋지게 번들거리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저 우체통보다 불분명하고 저열하며 저렴한 존재인 것 같아 몸서리를 쳤다. 정신이 물질보다 높은 차원이라는 태곳적부터의 정언도 물질들의 무심하고 견고한 침묵 앞에서 지레 자백해 버리고 마는 그의 열등감을 막아주지는 못했다. 정신을 가지고 있다는 건 도리어 결함이 아닐까? 그만 완전히 물질이 되지 못한 결핍과 부패의 증거가 아닐까? 자신이 충분히 물질도 아니고, 그렇다고 충분히 정신도 아닌, 부적절하고 소용도 없는 곤죽 덩어리인 것 같아 현태는 맥이 빠졌다. 질문도 대답도 없는, 문제도 해결도 없는, 삶도 죽음도 없는 이 비현실적인 곳에서 지극히 실재적인 사물들과 함께 영원히 갇힌 것만 같았다.

현태는 구역질이 올라와 담벼락을 붙잡고 침을 뱉었다. 커다란 덩어리가 그의 발치에 아슬아슬하게 떨어졌다. 그는 자신이 뱉어놓은 침을 홀린 듯이 바라보았다. 갈색 점액질의 끈적함이 마치 육체의 절대적인 위세인 것처럼 그를 조롱하는 듯했다. 그는 자신이 뱉어놓은 가래침 앞에서 머리라도 조아리고 싶었다. 어쩌면 이제껏 그를 이끌어 온건 그 자신이 아니라 이 육체였는지도 모른다. 육체가 시지프의 바윗덩어리인 줄 알았더니, 오히려 육체가 시지프이고 자신이야 말로 끝없이 곤두박질치는 바윗덩어리였는지도 모른다. 그런 자신을 육체가 인내심을 가지고 잡아끌어주고 또 잡아끌어주었는데, 이제는 배은망덕한 그가 지긋지긋해지기라도 한 걸까. 또다시 구역질을 하자 이번에는 쓴 물이 왈칵 쏟아져내렸다. 황급히 허리를 굽혀 가방에서 손수건을 꺼내려는데 갑자기 두 다리가 딱딱하게 굳어버려 그는 그 자리에 나무토막처럼 주저앉았다. 약 먹은 지 채 한 시간도 되지 않아 벌어진 일이라 현태는 버둥거리며 어쩔 줄을 몰랐다. 지나가는 행인들이 많았지만 주정뱅이라고 생각했는지 현태를 도와주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현태도 어떤 도움을 요청해야 할지 몰라 어떤 도움도 요청할 수 없었다. 그는 담벼락에 매달려 바쁘게 움직이는 수많은 발들을 숨을 죽인 채 바라보았다. 그림자 없는 회색 발들이 마치 허공을 날아다니는 것 같았다.

“혹시 내일이 바로 내가 죽는 날이 아닐까 하고 소름 끼친 적 없어요?”

현태는 문득 예전에 수철과 나누었던 대화가 떠올랐다.

“젊은 놈이 무슨 그런 생각을 하냐?”

“왜에, 죽는 게 나이랑 무슨 상관이야. 가는 데는 순서가 없어요. 생각해 보면 말이지, 만약 내일 죽는다면 난 얼마나 별 볼일 없는 인생일까. 스무 살 때만 해도 서른 살이 넘으면 뭔가 번듯한 게 돼있을 줄 알았거든. 그런데 마흔이 돼도 쉰이 돼도 난 계속 이 모양 이 꼴일 거라고 생각하면 진짜 지랄 같지 않아요? 그래도 열심히 살아온 것 같은데 왜 맨날 이 타령인지 모르겠어. 나도 이것저것 안 해본 거 없어요. 백화점 매장에서도 일해 봤고, 트럭 몰면서 술집에 맥주 배달도 해봤고, 잠깐 포장마차도 해보고, 아, 냉장고 만드는 공장에서 몇 달 동안 일한 적도 있어요. 이 정도면 열심히 산 거 아닌가?”

“그렇지.”

“쳇, 그렇긴 뭐가 그래요? 그건 열심히 산 게 아냐. 병신같이 시간만 낭비한 거지. 하루에 12시간 일하고 10만 원 받는 놈하고 하루에 2시간 일하고 10만 원 받는 놈 중에 누가 더 열심히 사는 거겠어요? 당연히 하루에 2시간 일하고 10만 원 받는 놈이 더 열심히 사는 거라구요.”

“글쎄, 그런가?”

“나는 어디서도 오래 일하지 못했어요. 씨팔, 거기서 평생 짱 박히게 될까봐 무서웠거든. 그렇게 인생 종칠까봐, 그렇게 만족하게 될까봐, 견딜 수가 없었다구요. 그래도, 딴 건 몰라도, 내가 자존심 하나는 지키면서 살았는데.”

“그래, 그것도 중요한 거지.”

“아니, 아니야. 사실 그렇지도 않았어. 솔직히 말하면 딱, 딱 한 번 자존심을 버린 적이 있었어. 백화점 매장에서 일할 때인데, 손님이 계산하고 간 100만 원짜리 수표 한 장이 없어진 거예요. 그런데 씨팔, 내가 수표가 들어있는 서랍을 여는 걸 봤다고 누가 점장한테 꼰지른거야. 점장이 날 세워놓고 사람들 다 보는 앞에서 추궁을 하더라고. 그때 있는 대로 썅욕이라도 때려 박고 가게를 다 엎어버렸어야 하는 건데. 진짜 그랬어야 됐는데. 그런데 내가 어떻게 했는지 알아요? 어떻게 했는지 알아? 글쎄 울어버린 거야. (수철이 가지런히 이빨을 다 드러내놓고 웃었다.) 상상이 돼? 내가 사람들 앞에서 질질 짰다니까? 그게 그 상황을 모면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거든.”

그러면서 수철은 실실 웃었고, 그 야릇한 웃음을 보면서 현태는 정말로 수철이 그 수표에 손을 대지 않은 걸까 내심 의심했었다. 그때 수철에게 솔직하게 물어보았더라면 좋았을 텐데. 그럼 지금 이 순간 이 얘기를 떠올리지 않았을 텐데. 바지가 소변으로 젖어드는 걸 보면서 현태는 생각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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