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면증 (59)

by 곡도




현태는 이제 꽃집 일을 하는 게 힘에 부쳤다. 열 손가락마다 두꺼운 골무라도 낀 것처럼 무뎌져서 간단한 꽃다발 하나 만드는 일도 쉽지 않았다. 그나마 약을 먹은 직후에는 좀 나아져서 그 틈에 이것저것 일을 처리하곤 했지만, 약기운이 떨어지면 몸 상태는 급속도로 나빠졌다. 약이 병세를 더 악화시키는 게 아닐까 의심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어쩌랴. 그는 오만가지 생각에 골몰한 끝에 늘 똑같은 결론에 도달하곤 했다. 의심조차 그에게는 주제넘은 짓이었다. 예전에는 소화약도 함부로 먹지 않던 그였지만 이제는 이해할 수 없는 독한 약들을 주는 대로 넙죽넙죽 받아먹고 있었다. 그에게는 더 이상 아무런 기준도, 소신도, 의지도, 고집도 남아 있지 않았다. 설사 이 약들이 그의 몸을 점점 더 망가뜨릴지라도 약기운이 조금이라도 더 지속될 수 있다면 그는 기꺼이, 그리고 겸허하게 그 약들을 받아 삼킬 것이다.

그는 꽃다발 한 개를 만드는데 무려 2시간이나 끙끙거리다가 기진맥진해져서 그대로 소파 위로 쓰러졌다. 가느다란 꽃송이들을 매만지느라 신경을 곤두세운 탓에 손가락과 양 볼이 빳빳하게 오그라들더니 잠시 후에는 양 발까지 굳어버렸다. 그는 자신이 마치 적진 한가운데 사로잡혀 있는 포로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손발을 묶어 놓은 줄이 어찌어찌 풀어진다 해도 도망갈 마음조차 먹을 수 없는 암담한 신세였다. 손님들 앞에서 손을 떠는 일도 이제는 일상이 되었다. 몸살 핑계를 대고는 있었지만 얼마나 더 오래 둘러댈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선영도 슬슬 이상하게 생각하는 눈치였다.

선영에게 생각이 미치자 현태는 머리가 지끈 아파왔다. 선영은 점점 더 친근하게 현태를 대하고 있었다. 현태 역시 그녀에게 마음이 끌렸다. 만약 이 병만 아니었다면 현태는 지금쯤 그녀의 마음을 확인하는 데 온통 정신이 팔려있었을 것이다. 아니, 성인용 기저귀를 차고 있는 이 황당한 상황에서도 현태는 하루에도 몇 번씩 선영의 마음을 점쳐보느라 얼이 빠지곤 했다. 손가락 하나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주제에 여자라니, 그는 질끈 눈을 감았다. 그때 책상 위에서 핸드폰이 울리는 바람에 그는 정신을 가다듬었다. 덜덜 떨리는 손으로 핸드폰을 집어보니 미숙이었다.

“네, 엄마.”

“현태야, 큰일 났다.”

“왜요? 무슨 일인데요?”

“현지하고 최서방이 한국으로 들어온 댄다.”

“그런데요?”

손이 너무 심하게 떨렸기 때문에 그는 소파 등받이 위에 핸드폰을 올려놓고 얼굴을 기댔다.

“그게 아니라, 아주 들어온대.”

“아주요?”

“그래, 공부고 교수고 다 때려치우고 그냥 한국으로 들어온단다. 여기서 다른 일을 구하겠대. 세상에, 4년이나 있었는데 이제 와서 포기라니. 이걸 어떻게 하니. 어떻게 하면 좋아.”

미숙은 울먹거리고 있었다. 현태도 이번만은 좀 심각해졌다. 그까짓 공부 때려치우면 어떠냐고 미숙에게 큰소리치곤 했지만 정말로 현지가 중도에 그만둘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던 것이다. 게다가 현지의 학업을 위해 현태의 희생이 아예 없었다고 볼 수도 없었다. 얼마씩 학비를 보태준 것도 있지만, 그보다 현지가 미국에 있는 동안 그가 미숙을 전담해야 했던 것이다.

“그래서 언제 온대요?”

“내일.”

“내일요? 바로 내일이래요? 어떻게 그렇게…….”

“그러게 말이다. 벌써 살던 집도 다 정리하고 짐도 한국으로 보냈단다. 그리고 비행기 타기 직전에 나한테 전화한 거야. 기가 막혀. 이 일을 어떻게 하니.”

급기야 미숙은 참고 있던 울음을 터트렸다. 현태는 흐느끼는 그녀의 울음소리를 들으며 자신의 병에 대해 알게 되었을 때도 과연 그녀가 이만큼 슬퍼할까 궁금해졌다. 오히려 불같이 화를 낼 것 같았다.

“엄마, 울지 마시고 내일 걔네들 오면 잘 얘기해 보세요. 무슨 생각이 있겠죠.”

“생각은 무슨 생각이니. 몇 년이나 그 개고생을 하다가 목표를 코앞에 두고 포기하는 애들이 제정신이니?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그거 하나 참지 못하고 중도에서 포기할 거면 처음부터 가지나 말지. 들어간 돈도 한두 푼이 아닌데. 아유, 정말 내가 못살아, 못살겠어. 도대체 내가 사는 낙이 없다.”

현태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고 미숙의 얘기를 묵묵히 듣고 있었다. 미숙을 안쓰럽게 생각하면서도 그는 벌써 미숙의 넋두리가 지겨웠다. 그리고 어머니와 같이 살라던 의사의 조언을 떠올리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설사 사지를 못 쓰고 기어 다니는 한이 있어도 미숙과 같이 살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내일 가게 좀 빨리 닫고 집으로 와라.”

“네, 알았어요. 그럴게요.”

현태는 전화를 끊고 그대로 소파에 파묻혀 눈을 감았다. 도대체 가족은 자신에게 쉴 틈을 주지 않았다. 그들은 계속해서 자신을 다그치고, 끌어들이고, 요구했다. 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아무도 만족시킬 수 없으니 정말이지 지치는 일이었다.

다음 날 현태는 저녁 7시에 택시를 타고 미숙의 집으로 향했다. 3시간 전에 현지로부터 한국에 도착했다는 전화를 받은 상태였다. 두 사람은 별다른 얘기 없이 간단히 인사만 나누고는 밍숭맹숭하게 전화를 끊었다. 4년 만에 동생을 만날 생각에 현태는 은근히 긴장이 되었다. 예전부터 그리 친한 남매 사이는 아니었던 데다가 현지가 결혼 후 곧바로 미국으로 건너가는 바람에 더 소원해졌다. 더 이상 현지를 단순히 자신의 동생이 아닌, 동생의 남편의 부인으로 대해야 할 것 같은 복잡한 기분이었다. 현태는 혹시 손이 떨리지는 않는지 자꾸만 확인했다. 출발 직전에 약을 먹어두어서 한두 시간 정도는 괜찮을 것 같았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이상한 조짐이 보이면 무슨 핑계를 대서라도 즉시 빠져나올 생각이었다.

현태가 문을 열고 집안으로 들어섰을 때 현지, 우석, 미숙은 모두 부엌 식탁에 둘러앉아 있었다. 자세히 보니 미숙은 수건에 얼굴을 파묻은 채 울고 있었고 말없이 그런 미숙을 바라보고 있는 현지와 우석의 얼굴은 무덤덤하다 못해 무료해 보였다. 현지는 현태를 보자마자 반가운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빠, 잘 있었어? 아니, 얼굴이 왜 이렇게 까칠해졌어? 많이 마른 것 같은데, 어디 아퍼? 장사하는 게 힘들어서 그런가?”

현지는 4년 전 미국으로 떠났을 때와 크게 달라진 데가 없었다. 길게 생머리를 늘어뜨린 머리모양도 비슷했다.

“형님, 잘 계셨어요?”

우석이 따라 나오면서 인사했다. 원래 하얗던 얼굴이 마치 백인처럼 창백했다.

“어, 그래. 오랜만이야.”

“오빠, 엄마 좀 어떻게 해 봐. 우리 도착하고 나서 저렇게 한 시간째 울고만 있어. 진짜 못 말린다니까.”

현지가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그리고 자신은 할 만큼 했다는 듯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현태는 울고 있는 미숙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자신보다 훨씬 더 미숙을 사랑하고 있는 현지마저도 그녀의 눈물에 건성이라고 생각하니 현태는 미숙이 조금은 안쓰러워졌다. 그는 버럭 소리를 질렀다.

“엄마, 그만 우세요. 누가 죽었어요? 뭘 그렇게 소란이에요?”

미숙은 수건에서 얼굴을 들더니 울먹이는 목소리로 외쳤다.

“참 말도 지독하게 한다.”

“운다고 뭐가 해결이 돼요?”

“교수된다던 애들이 고작 학원이나 하겠다잖니. 그런데 내가 속이 안 터지니?”

현태는 현지를 돌아보았다.

“학원?”

“어. 뭐, 딱히 할 게 있어야지. 그렇다고 이 나이에 회사에 취직하기도 그렇고.”

현지는 가볍게 대꾸했다. 현태는 그런 현지의 무던함에 깜짝 놀랐다. 현지가 예전부터 이토록 태평한 성격이었는지 의아스러웠다. 4년 동안 현지가 바뀐 건지, 아니면 4년 동안 자신이 현지에 대해 잊어버린 건지 알 수 없었다. 아니, 애초부터 현지에 대해 잘 몰랐는지도 모른다. 현태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자 현지가 얼른 말을 이었다.

“계산해 보니까 미국에서 4년 동안 공부한답시고 둘이서 날린 돈이 2억 가까이 되더라고. 내가 그 돈으로 집을 샀거나 재테크를 했으면 최소한 원금에 몇 천은 더 벌었을 거 아냐? 박사 학위 따려면 앞으로도 얼마나 더 돈이 들지 모르는데, 사실 까놓고 말해서 박사 학위 딴다고 요즘 세상에 취직이 보장되는 것도 아니잖아. 교수? 교수되는 게 얼마나 힘든데. 학력이나 실력만 가지고 되는 게 아냐. 쥐꼬리만 한 시간 강사 월급, 그거 꼴랑 몇 십만 원 받아 가면서 십 수년 동안 쥐 죽은 듯이 윗사람들 비위를 맞추어도 될까 말 까야. 더럽고 치사한 일은 또 얼마나 많은지…….”

“그래서 무슨 학원을 하려고?”

현태가 그녀의 말을 끊으며 물었다.

“영어 학원. 이 사람하고 둘이 유학 경험 살려서 영어 학원 하면 괜찮을 것 같아. 내 사업이니까 누구 눈치 볼 필요도 없고.”

현지가 떠들어 대는 동안 미숙은 아예 목 놓아 엉엉 울었다. 현태는 현지의 등 뒤에서 아무 말 없이 멀뚱히 서 있는 우석을 몇 번이나 흘겨보았다. 아무래도 우석이라는 사람을 알 수가 없었다. 미국으로 떠나기 전부터 우석은 늘 그림자처럼 멀찍이 맴도는 느낌이었다. 사람이 지나치게 조심스러운 건지 아니면 성의가 없는 건지, 다른 사람들에게 좀처럼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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