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태는 며칠 째 꽃집에 나가 앉아만 있을 뿐 아무 일도 하지 못했다. 층계에서 넘어질 때 다쳤던 팔이 퉁퉁 부어오른 탓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몸의 경직이 점점 더 심해지고 있었다. 그는 더 이상 꽃집을 운영할 수 없다는 사실을 직시했다. 그동안 깨 먹은 화분만 해도 수십 개였고, 가위에 손가락을 베인 적도 셀 수 없이 많았다. 무엇보다 몸놀림이 부자연스러운 그를 손님들이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쳐다볼 때면 그는 그들의 얼굴에 달려들어 와락 고함이라도 지르고 싶은 걸 참느라 얼굴이 시뻘게지곤 했다.
사실 현태는 자신의 병명을 알게 된 순간부터 가게를 정리하기로 마음먹고 있었다. 지금은 꽃다발 수요가 적은 계절이라 어찌어찌 버티고 있었지만 해가 바뀌고 졸업과 입학, 어버이날이 다가오면 감당할 수 없을 게 뻔했다. 차라리 하루라도 빨리 팔아버리는 편이 이익이었다. 그런데도 곧바로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차일피일 미루어 온건 어느 정도는 선영 때문이기도 했다. 꽃집을 그만두면 선영을 만날 구실이 사라져 버리는 것이다. 지금도 그는 소파에 기대앉아 선영이 꽃을 가지러 오기를 기다고 있는 중이었다.
물론 그는 - 확연하게도 - 선영에게 신경 쓸 상황이 아니었다. 치료에도 전념해야 했고, 불투명해진 앞날에 대한 대책도 세워야 했고, 가게도 처분해야 했고, 가족들에게 병을 알리는 일도 시급했다. 그것만으로도 골치가 아프고 속이 뒤집히는데, 그런 문제들은 모두 차치하고서 그는 그녀에 대한 생각에 며칠 째 골몰해 있었다. 과연 그녀는 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그것이 마치 자기 인생의 최종 성적표라도 되는 것처럼 말이다. 물론 설사 그녀가 그에게 마음이 있다 해도 그의 병에 대해 알자마자 곧바로 내빼리라는 걸 그도 잘 알고 있었다. 만에 하나라도 그녀가 자신 곁에 남지 않을까 하는 허황된 생각 같은 건 추호도 없었다. 말도 되지 않을뿐더러 그것은 현태 본인에게도 끔찍한 일이었다.
그때 문이 열리더니 선영이 성큼 가게 안으로 들어왔다. 목에는 하늘색 머플러를 둘렀고 진주색 블라우스에 딱 붙는 갈색 치마를 입고 있었다. 치마 위로 엉덩이 곡선이 둥그렇게 드러났다.
“아, 오셨어요?”
선영의 등장에 현태는 저절로 얼굴이 달아올랐다. 그는 혹여나 선영에게 들킬까봐 깊이 고개를 숙였다.
“아니, 손이 왜 이래요?”
선영은 현태의 팔목에 둘러져있는 보호대를 발견하고 깜짝 놀라 외쳤다.
“아, 저, 별거 아니에요. 층계에서 넘어져서 팔을 좀 다쳤어요.”
현태는 차라리 화젯거리가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어머, 큰일 날 뻔했네요. 다른 데 다친 데는 없구요?”
“네, 별일 아니에요.”
“별일 아니긴요. 손이 많이 부은 것 같은데요. 떨리는 거 봐요. 병원에는 가봤어요? 뼈를 다쳤을지도 몰라요.”
“네, 괜찮데요.”
“그래요? 그래도 그만해서 다행이네요. 당분간은 무리하지 마세요. 덧나면 큰일 나요.”
“네.”
“저기, 혹시 생강차 좋아해요? 제가 이번에 생강차를 만들어 봤는데 맛있게 된 것 같아서 한 병 가져왔어요. 인스턴트커피보다는 나을 거예요.”
선영은 가방에서 작은 유리병을 꺼내더니 현태에게 묻지도 않고 전기 주전자에 물을 끓여 차를 타기 시작했다. 등 뒤로 쏟아지는 햇빛을 받고 있는 그녀의 옆모습을 현태는 곁눈질로 바라보았다. 늘 수철이 커피를 타던 자리에 그녀가 서 있으니 묘한 기분이 들었다. 갑자기 수철이 타주던 달콤한 커피가 떠올라 현태는 자신도 모르게 입맛을 다셨다. 어째서 수철이 타주던 인스턴트커피는 그토록 맛있었을까?
선영은 곧 따끈한 생강차 두 잔을 만들어 왔다. 정신이 번쩍 들 정도로 매콤한 생강 향이 그의 코를 찔렀다. 생강 향은 어딘지 비현실인 데가 있었다.
“한번 드셔보세요. 설탕을 많이 넣지 않아서 조금 쌉싸름할지도 몰라요.”
현태는 김이 피어오르는 하얀 종이컵을 입가로 가져가면서 선영의 얼굴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다시 말하지만 그녀는 예쁘게 생긴 얼굴은 아니었다. 특히 큼지막한 코가 그녀의 인상을 퍽이나 둔하게 만들고 말았다. 하지만 오늘따라 그녀는 제법 예뻐 보였다. 반짝이는 먼지가 뒤섞인 햇빛 때문일까? 아니, 그건 기분 탓이 아니었다. 그녀가 예쁜 옷을 골라 입고, 한껏 머리를 매만지고, 화장을 꼼꼼히 했기 때문이었다. 두 사람은 잠시 말없이 생강차를 마셨다. 생강차를 두어 번 만에 단숨에 들이켠 현태가 입을 열었다.
“저기, 실은 이 가게 내놓으려고 해요.”
“네? 가게를요? 어머나, 왜요?”
선영은 깜짝 놀라 현태를 바라보았다. 동그래진 그녀의 눈을 보니 현태는 가슴이 뛰었다. 그는 최대한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말을 이었다.
“그냥 좀, 개인적인 사정이 생겨서요. 기자재비 정도만 받는 걸로 하고 싸게 내놓을 거니까, 아마 금방 나갈 겁니다.”
“아니, 갑자기, 무슨 일인데요?”
현태는 말문이 막혔다. 수 십 가지 문장들이 혀끝에서 휘청거렸다. 마음 같아서는 그녀에게 단번에 자신의 마음을 고백해버리고 싶었다.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똑바로 묻고 싶었다. 하지만 대답을 들은 뒤에 - 더구나 그녀의 대답이 긍정적이라면 더욱더 - 어떻게 병에 대한 얘기를 꺼낼 수 있겠는가. 어떻게 병에 대한 얘기를 숨길 수 있겠는가.
“무슨 새로운 사업이라도 하시려구요?”
“아뇨. 그런 건 아니에요.”
“그런데 왜 꽃집을 그만두세요? 여기 자리도 잘 잡혀 있고 손님도 꽤 있는데 아깝잖아요.”
“근데, 사정이 생겨서.”
“집에 무슨 일 있으세요?”
“아뇨, 그런 건 아니고.”
“그런데 굳이 그만 두실 필요가 있어요? 정 사정이 있으시면 사람을 써서라도 운영을 계속하는 게 좋을 것 같은데.”
“그렇지만, 그게, 힘들 것 같아서…….”
그녀가 다그치자 그는 새하얗게 질려서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만 같았다. 숨을 몰아쉴 때마다 이마가 순식간에 끓어올랐다가 숨을 내쉴 때마다 순식간에 얼어붙기를 반복했다.
“그럼 대체 무슨 일인데요?”
“제가 파킨슨병에 걸렸어요.”
그는 말을 꺼내놓고는 두려워서 입을 다물었다. ‘날 어떻게 생각해요?’라는 말이 입술 끝까지 나왔다가 쑥 빨려 들어가고 갑자기 이 말이 재빨리 튀어나왔던 것이다. 깊이 생각하고 내린 결정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즉흥적인 것도 아니었다. 어느 쪽을 먼저 얘기하든 그는 똑같이 비참했을 것이다.
“네? 뭐라구요?”
그녀는 별달리 놀라지도 않고 활달하게 반문했다. 그는 다시 한번 더 또박또박 말해야 했다.
“파킨슨-병이요.”
“그게 무슨 병인데요?”
“신경에 이상이 생기는 병인데, 근육이 경직되고 심해지면 마비도 오구요, 자칫하면 치매가 될 수도 있데요. 드물지만 전신마비가 되는 경우도 있고. 실은 이렇게 손을 떠는 것도 손을 다쳐서가 아니라 그 병 때문이에요.”
현태는 최대한 담담하게 대답했다. 하지만 곧 불쾌감이 아랫배에서부터 거꾸로 역류해 올라왔다. 이제껏 조심해서 들고 있던 좁쌀 한 상자를 바닥에 쏟아버린 것처럼 역정이 나고 난감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기분에 신경 쓸 여력도 관심도 없었다. 현태는 선영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선영은 미간을 흉하게 일그러뜨리고 현태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는 그녀의 표정을 흉내 내지 않으려고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몸이 마비될 수도 있고, 치매에 걸릴 수도 있다구요?”
“예, 지금도 가끔 몸이 마비될 때가 있어요. 팔도 그래서 다친 거예요. 마비가 와서.”
선영은 완전히 질린 얼굴이었고, 현태는 떨리는 손으로 들고 있던 빈 종이컵을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그럼 치료를 받거나, 뭐, 무슨 수술 같은 걸 받으면 되지 않아요?”
“파킨슨병은 치료가 불가능하데요. 그냥 더 심해지지 않게 조치만 하는 거죠. 꽃집도 그래서 그만두는 거예요. 이렇게 손이 떨리는 데 어떻게 꽃을 만지겠어요.”
현태는 냉정하게 대답했다. 자신에게 병명을 알려줬던 그 의사라도 된 듯 조금 뻐기는 태도였다. 어이없어하는 그녀의 표정을 보자니 의사들이 이 맛에 의사노릇을 하는구나 싶은 생각까지 들었다.
그녀는 아무것도 없는 가게 구석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저 그뿐인데도 그는 그녀가 눈앞에서 사라진 것 같은 인상을 받았다. 그는 마주 잡고 조물락거리고 있는 그녀의 작은 두 손을 바라보았다. 저토록 예쁜 손을 지금에야 알아차렸다는 게 억울할 정도였다.
“저하고 사귀실래요?”
그의 말이 입에서 떨어지자마자 그녀는 자리를 박차고 가게를 뛰어 나갔다. 그녀가 어떤 얼굴을 하고 있는지 미처 볼 새도 없었다. 현태는 종이컵 두 잔을 앞에 둔 채 혼자 멀뚱히 앉아 그녀가 앉아 있던 소파의 눌린 자국을 바라보았다. 아무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다. 사실 딱히 생각할 것도 없었다. 모든 게 그가 예상했던 그대로였다.
현태는 곧바로 부동산에 전화를 걸어 가게를 내놓았다. 그리고 가게 문을 닫고 집으로 돌아와 약을 먹은 뒤 침대 위에 쓰러져 죽은 듯이 잠들었다. 8시간 동안 한 번도 깨지 않았을 정도로 깊은 잠이었다. 하지만 밤 11시가 되자 그는 저절로 눈이 떠졌다. 현태는 순순히 침대에서 일어나 냉동 만두 몇 개를 넣고 끓인 라면으로 식사를 해결하고는 약도 챙겨 먹었다. 약기운이 돌자 그는 진하게 탄 커피 한잔을 손에 들고 빌라를 빠져나왔다. 별도 달도 구름도 없는 밋밋한 밤이었다. 뿌옇게 흐려진 하늘을 멀끔히 올려다보고 있자니 그는 자신이 알고 있는 사람들은 물론이고 세상 사람들 모두가 측은하게 여겨졌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 봐도 제일 불쌍한 사람은 자기 자신이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