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면증 (63)

by 곡도




미숙의 집 비밀 번호를 누르고 대문을 열자마자 흥분한 현지의 목소리가 날카롭게 현태의 귓등을 스쳤다. 벌써 시작한 모양이었다. 거실 소파에 우두커니 혼자 앉아있던 우석이 현태를 보고 자리에서 일어나 뻣뻣하게 인사했다. 그는 가뜩이나 죄인 같은 입장인 데다가 껴들 수도 말릴 수도 없는 부인과 장모의 싸움에 염증이 난 것 같았다. 그때 다시 찌르는 듯한 현지의 목소리가 들렸다. 안방에서였다.

“이미 학교며 집까지 다 정리하고 들어왔는데 대체 뭘 어쩌라는 거예요?”

“그게 대수냐? 네가 맘만 바꾸면 그까짓 거야 다시 준비하면 되지.”

“그게 말이 돼요? 제가 지금 애들 투정이라도 부리고 있는 줄 아세요? 우리도 오래 생각하고 결정한 거예요.”

“오래 생각한 게 겨우 동네 학원이니?”

“학원이 어때서요?”

“정말 너까지 이럴래? 오빠도 저렇게 되고, 내가 너한테 얼마나 기대가 컸는데. 주변에서도 다 네가 교수되는 줄 알고 있는데 고작 학원이나 하겠다고?”

듣다 못한 현태가 안방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두 사람의 시퍼런 서슬에 입도 뻥긋할 수가 없었다.

“학원도 사업이에요.”

“사업? 하, 말이 좋아 사업이지 동네 학원이 장사지 무슨 사업이냐?”

미숙이 빽 소리를 지르자 현지는 기가 막혀 입 꼬리를 비틀었다. 비웃으려 했지만 그마저도 잘 되지 않는 모양이었다. 현지는 짓눌린 목소리로 외쳤다.

“직업이 무슨 상관이에요. 열심히 일해서 번 돈이면 다 자랑스럽고 떳떳한 거 아니에요?”

“자랑스러워? 떳떳? 말이야 번지르르하지. 그런 얘기는 누가 못하니? 막노동꾼이나 청소부들한테 물어봐라. 그 사람들도 다 자기 직업이 자랑스럽고 떳떳하다고 할 테니까. 할 수 없이 구한 일자리인 주제에 자기 합리화에는 다들 귀신같다니까. 누가 뭐래도 사람에게는 직업에 따라 정해지는 사회적인 급이라는 게 있는 거야. 넘나들 수 없는 수준이라는 게 있단 말이다. 단박에 상대방을 대하는 입모양부터 달라지는 거야. 너라고 다를 것 같니? 니가 모른 척, 아닌 척한다고 네가 바뀌고, 사람들이 바뀌고, 세상이 바뀔 것 같아? 조금 힘들다고 오만가지 핑계를 대면서 자기 인생을 포기하겠다니, 난 정말 이해할 수가 없구나.”

미숙의 말을 들으면서 현태는 내심 감탄해마지 않았다. 어째서 사악한 생각은 언제나 논리적이며, 어째서 미숙은 이토록 논리적인가.

“대체 그게 무슨 말이에요. 요즘은 많이 달려졌어요. 인생에 대한 가치평가는 사람마다 다른 거예요.”

“달라져? 1000년이 지나 봐라, 달라지나. 각자의 가치라고? 그러니까 시시한 인생일지라도 시시한 인간은 아니다 이거지? 아무리 별 볼일 없는 사람도 나는 내 인생의 주인공이다 그거냐? 헛소리들 하고 있네. 영화나 드라마를 너무 많이 본 거 아냐? 주인공이 바로 자신이고, 주인공의 대사가 바로 자신의 대사라고 착각에 빠진 거 아니냐고. 당연히 영화 속 주인공들은 시시하지 않지. 그들은 진짜 시시한 인간들이 아니라 시시한 인간들을 흉내 내는 특별한 사람들이니까. 하지만 현실에서는? 그냥 끔찍하게 시시할 뿐이야.”

두 여자는 주먹을 꼭 쥐고 서로를 노려보았다. 분하고 미운 마음을 양쪽 모두 숨길 수가 없었다. 현태는 바로 지금 자신의 병명을 그들 앞에 폭탄처럼 던져놓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그럼 마침내 모두가 입을 다물겠지.

그러나 현태가 미처 입을 열기도 전에 미숙은 방을 박차고 나가버렸다. 현지는 그대로 주저앉아 눈물을 터트렸다. 현지로서는 늘 가족들의 문제를 해결하고 중재하는 역할이었지 정작 자신이 문젯거리가 되어 본 적은 없었기 때문에 적잖게 치기가 치미는 모양이었다. 현태는 현지가 숨을 고르기를 기다렸다가 물었다.

“사는 건 어디서 살 건데?”

“당분간은 시댁에 들어가 살기로 했어.”

“시댁에서? 불편하지 않겠어?”

“어쩔 수 없지, 뭐.”

“돈은 구했어?”

현지는 대답 대신 더 서럽게 울었다.

“그 돈 내가 해 줄게.”

“뭐?”

“7천만 원 정도는 만들 수 있을 것 같아.”

“대출받으려고?”

“대출은 아니고, 실은 내가 이번에 꽃집을 팔게 됐거든. 그러면 보증금하고 권리금하고 해서 목돈이 좀 생길 거야.”

“꽃집을? 아니, 왜?”

현지는 새빨개진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현태는 미처 대답할 말을 준비하지 못했기 때문에 입술을 우물거렸다. 지금 다 말해 버릴까. 병에 대한 얘기를 꺼내기에 이보다 더 좋은 때는 없었다. 하지만 병에 대한 얘기를 꺼내기에 이보다 더 나쁜 때도 없었다.

“꽃집을 왜 넘겨? 꽃집을 그만두고 뭘 하려고? 아니, 뭐라도 하려면 돈이 있어야 할 거 아냐. 그걸 나한테 줘도 돼?”

현지가 질문을 쏟아냈지만 현태는 끝내 대답할 수가 없었다. 이 얘기를 하자면 눈물이라도 쏟아야 할 판이었다. 가슴이 아프거나 슬퍼서가 아니라 그들을 이해시키기 위해서 말이다. 그의 처지가 그만큼이나 비굴했다. 현태는 나중에 얘기하자고 얼버무렸지만 현지는 불안한 눈으로 그의 얼굴을 한참이나 들여다보았다.

현지와 우석이 돌아간 후 현태는 미숙과 마주 앉아 커피를 마셨다. 미숙이 말 한마디 없이 기계적으로 커피잔을 들어 올리는 동안 어느새 약기운이 떨어진 현태의 손이 떨리기 시작했다. 그는 두 손을 탁자 밑으로 밀어 넣고 미숙의 눈치를 보다가 어느새 하얗게 샌 미숙의 머리카락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어머니의 흰 머리카락’이라는 진부한 감상에 젖고 싶지는 않았지만 역시나 그것은 그에게 섬뜩한 인상을 주었다. 그녀의 얼굴색도 예전과는 많이 달랐다. 눅눅한 회갈색이 얼룩처럼 얼굴 전체에 퍼져 있었다. 그녀의 동그란 이마에는 찡그리지 않아도 주름자국이 선명했고 눈두덩이는 아래로 축 늘어져 있었다. 이제 누가 봐도 미숙은 노인이었다. 만약 앞으로 자신에게 최악의 사태가 닥친다면 이 늙고 찌들은 어머니 외에는 의지할 사람이 없다는 사실에 그는 기가 막혔다. 어쩌면 미숙은 그의 똥오줌 수발까지 들어줘야 할지도 모른다. 자신이 미숙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걸 감안할 때, 그리고 미숙도 자신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걸 감안할 때, 그것은 분명 염치없는 일이었다.

본격적으로 손발이 비틀어지기 시작하자 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만 가 볼게요.”

돌아서던 현태는 아무 대꾸 없는 미숙에게 부드럽게 한마디 덧붙였다.

“엄마, 현지는 그냥 자기 하고 싶은 데로 하게 두세요. 어차피 결심을 단단히 한 것 같던데. 최서방하고 둘이 잘할 거예요. 엄마도 이제 저희 신경 쓰지 말고 편하게 사세요.”

미숙은 현태를 돌아보았다. 미숙의 눈에서는 더 이상 노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그보다는 깊은 환멸이었다.

“좋은 일이라곤 아무것도 없구나.”

그는 하는 수 없이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좋은 일이 왜 없겠어요’라고 애써 자상하게 얘기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앞으로 미숙에게 좋은 일이란 없으리란 걸 누구보다 자신이 제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반병신이 된 아들의 수발을 들어주게 생겼는데 무슨 좋은 일이 있겠는가? 차라리 애초에 그녀가 그를 낙태해 버렸다면, 그래서 아버지와 결혼하지도 않았고, 지금과는 전혀 다르게 살았다면, 그녀의 삶이 훨씬 좋아졌을까? 그는 다시 웃었다.

“엄마, 갈게요.”

현태는 최대한 부드럽게 말했다. 하지만 미숙은 아예 고개를 돌려버렸다. 이미 현태의 손발이 심하게 떨리고 있었는데도 미숙은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미숙의 집을 빠져나오자마자 그는 왈칵 눈물을 쏟았다. 특별히 서운하거나 서러운 것도 없는데 그는 흐느껴 울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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