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면증 (64)

by 곡도




현태는 곧바로 택시를 타고 ‘사장님과 비서’로 향했다. 오랫동안 발걸음을 하지 않아 낯설고 까마득했다. 다짜고짜 술집으로 들어가 보니 오마담과 어떤 젊은 아가씨, 그리고 제법 나이가 지긋한 거구의 남자가 땅콩 한 접시를 앞에 놓고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오마담은 현태를 보더니 이만저만 놀라는 게 아니었다.

“어머머, 현태씨 아냐? 웬일이야?”

“지금 나랑 나갈래요?”

현태는 무덤덤하게 말했다. 하지만 현태의 몸은 바들바들 떨리고 있었다. 오마담은 그런 현태를 유심히 훑어보았다.

“지금?”

“같이 가요. 내가 평소보다 두 배로 줄게요. 아니, 세 배로 줄게요.”

4배, 5배, 돈은 달라는 대로 줄 생각이었다. 땅콩을 까고 있던 남자가 소리 내어 웃었다. 하지만 현태는 아무것도 창피하지 않았다. 그보다 그녀가 거절한다면 견디지 못할 것 같았다. 사지를 뻗으며 바닥에라도 구르면서 아이처럼 울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으래? 알았어, 그래. 가, 가자구. 그런데 어디서 이렇게 술을 많이 마셨어? 이왕이면 여기서 팔아주지 않구.”

마담은 보라색 줄무늬 코트를 어깨에 걸치면서 함께 있던 아가씨에게 급한 일이 아니면 연락하지 말라고 일렀다. 그리고 안주라도 좀 시키면서 술을 마시라고 키득이고 있는 남자를 면박 준 뒤 그녀는 현태의 팔짱을 끼고 술집을 나섰다. 두 사람은 택시를 타고 예전에 자주 갔던 모텔로 향했다. 이미 그의 손발은 스스로 어찌할 바를 모를 만큼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그런 현태를 오마담은 자꾸만 곁눈질로 훔쳐보았다. 아무래도 술기운 때문에 떨리는 걸로는 보이지 않았다. 어딘지 매우 기분 나쁜 떨림이었다.

현태는 모텔 방에 들어서자마자 쓰러지듯 침대 위에 주저앉았다. 그리고 자신의 떨리는 손과 오마담을 번갈아 쳐다보며 히죽거렸다. 오마담은 자리에 앉지도 못하고 엉거주춤 서서 그런 현태를 멀뚱히 바라보았다.

“앉아요.”

현태가 여전히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말투는 부드러워졌지만 말끝은 냉담했다. 오마담은 현태의 등 뒤에 가만히 앉았다. 그리고 겸연쩍게 두어 번 기침을 했다. 이루 말할 수 없이 나긋한 목소리가 현태에게서 흘러나왔다.

“파킨슨병이라고 알아요?”

“뭐?

“내가 파킨슨병이래요.”

“그게 무슨 병인데?”

“몸이 말을 안 듣는 병이에요. 평생 고칠 수도 없데요. 이거 봐요, 이거. 이 꼴이라니까요.”

현태는 다시 장난스럽게 웃으려 했지만 말을 마치기도 전에 눈물이 쏟아졌다. 한 번 터진 눈물은 그칠 줄 모르더니 결국 그는 두 손에 얼굴을 묻고 꺼이꺼이 큰 소리로 흐느꼈다. 후들거리는 두 손을 치켜들며 현태는 외쳤다.

“이래서야 섹스도 못할 걸요. 이렇게 손이 떨려서 어디 자위라도 제대로 할 수 있겠어요?”

그는 자신이 한 말에 그만 웃음이 터졌다. 꺼덕꺼덕 웃음을 삼키던 그는 눈물을 닦으며 고개를 들었다.

“미안해요. 이상하죠? 괜찮으니까 그냥 가보세요. 돈은 드릴게요.”

마담은 잠시 어물거리더니 입을 열었다.

“혹시 이거 성병 같은 거 아냐?”

“아뇨. 그런 건 아니에요.”

“옮기는 병이야?”

“아니에요. 뇌에, 그게 여기 신경에, 문제가 생긴 거라나…….”

“그럼 뭐, 못할 것도 없잖아.”

“네?”

현태는 멍해져서 말이 나오지 않았다. 오마담의 새근거리는 웃음소리가 등 뒤에서 들렸다.

“못할 거 없어. 이건 아무것도 아냐. 에이즈 환자하고도 했던 난데. 아, 걱정하지 마. 그때 콘돔도 두 개씩이나 끼고 했고, 그 뒤로도 몇 번이나 검사했으니까. 그러니까 내 말은, 못 할 거 없다고. 아까 세 배 얘기했던 건 맞는 거지?”

현태는 고개를 주억거렸지만 사실 그는 섹스를 하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었다. 섹스를 하겠다고 그녀를 여기까지 데려온 게 아니었다. 그저 자신의 병을, 마치 에이즈 환자가 애인에게 자신의 병을 고백하듯, 고백하고 싶었을 뿐이었다.

“현태씨는 아무것도 안 해도 돼. 내가 다 해줄 테니까.”

마담은 현태의 걱정을 모두 이해한다는 듯이 보들보들하게 말했다.

“불 끌까?”

현태는 고개를 저었다. 마담은 빙긋이 웃더니 아직 눈물이 마르지 않은 현태를 자신 쪽으로 끌어당겨 아이에게 해 주듯 차근차근 옷을 벗기기 시작했다. 현태는 그런 오마담과 자신을 제 3자라도 되는 것처럼 번갈아 바라보았다. 마담은 벌거벗은 그를 침대 위에 똑바로 눕혔다. 그리고 자신의 옷도 남김없이 훌훌 벗어버리고는 그의 허벅지 위에 앉았다. 그는 눈알을 굴리며 모든 걸 마담에게 맡긴 채 자신의 육체에 집중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마치 깨진 달걀 속의 내용물이 뒤엉킨 채 흔들거리다가 한꺼번에 왈칵 흘러나오듯 흘러나오려는 자신의 의식을 온몸의 근육을 총 동원해서 붙잡고 늘어졌다. 곧이어 마담의 엉덩이가 바짝 조여오자 그는 아픈 강아지처럼 끙끙거렸다. 처음에는 발기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마담은 여러 가지 방법을 구사하며 끈질기게 매달렸고 결국 그를 흥분시키는 데 성공했다. “이것 봐. 내가 된댔지?” 히르륵 웃으며 몸을 겹쳐오는 마담의 목에 그는 두 팔을 감았다. 그것은 아주 짧았고 희열보다는 고통이었지만, 그 순간이 자신의 인생의 절정인 것만 같았다.

섹스가 끝난 후 현태는 둘둘 말린 이불속에서 얼굴만 내민 채 마담이 담배 피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돈으로 섹스를 사는 건 몹쓸 짓이라고들 하지만, 돈이라도 주면 자신 같은 사람도 이렇게 섹스를 하고 벌거벗은 여자가 담배 피는 모습도 볼 수 있으니 자본주의 만만세였다.

“손발은 말을 안 들어도 그건 아무 이상 없네?”

마담은 지극히 진부한 농담을 던지고는 빙글빙글 웃었다. 그는 이것이 마담의 다정함인지 무심함인지 알 수 없었지만 저절로 미소를 지었다.

“그런데 어쩌다가 그런 몹쓸 병에 걸린 거야?”

어쩌다가? 그러게. 현태야 말로 그걸 가장 알고 싶은 사람이었다. 원인이 분명해서 누군가를 원망하거나 무언가를 후회할 수 있다면 그의 마음도 결국 진정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재판도 없이 무작정 체포와 함께 즉결 선고를 받은 사람처럼 속 시원히 억울해할 수도, 시비를 가릴 수도, 용서할 수도 용서를 구할 수도 없으니 답답해서 까무러칠 노릇이었다.

필요하면 언제든지 연락해. 몸조리 잘하고. 마담은 현태가 준 돈을 핸드백 안에 챙겨 넣고는 서둘러 방을 빠져나갔다. 주점을 지키고 있던 아가씨에게서 손님 셋이 들이닥쳤다는 문자를 막 받은 참이었다. 마담이 나가자 현태는 슬쩍 이불을 열어젖히고 자신의 벌거벗은 몸을 바라보았다. 깔깔거리는 웃음이 터져 나오려는 걸 꾹 참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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