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숙은 저녁을 먹는 동안에도 눈물과 한숨으로 식탁을 어지럽혔고, 식사가 끝나자마자 현지와 우석은 우석의 부모님을 만나러 가야 한다며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났다. 미숙과 단 둘이 되는 걸 잠시라도 피하고 싶었던 현태는 택시를 잡아준다는 핑계로 현지와 우석을 따라나섰다. 택시 정류장에 거의 다 왔을 때 현지가 현태의 팔을 잡아끌며 속삭였다.
“오빠, 저, 미안하지만.”
“어?”
“혹시 돈 좀 있어?”
“돈?”
“학원을 열려면 돈이 좀 필요해서. 혹시 돈 좀 빌려줄 수 있어?”
“어느 정도 필요한 데?”
“한 7천만 원 정도.”
“그렇게 많이?”
“우리가 가진 돈하고 시댁에서 보태주는 돈을 다 합쳐도 모자라서 그래.”
“처음부터 너무 무리하는 거 아냐? 그냥 가진 돈으로 조그맣게 시작하는 게 어때?”
“모르는 소리 마. 요새는 학원도 얼마나 고급화되고 기업화 됐는지 알아? 특히 영어 학원은 삐까번쩍하지 않으면 사람들이 거들떠보지도 않는단 말이야. 영어는 원래 99퍼센트가 폼이거든. 그러니 인테리어비에, 시설비에, 원어민 강사도 써야 되고, 초반에 돈이 이만저만 많이 드는 게 아냐.”
학원에 대해 잘 모르는 현태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내가 여유 돈이 있어야 말이지.”
“저기, 오빠. 그럼 말이야, 미안한데, 대출 좀 받아주면 안 될까?”
“대출?”
현태는 그 단어에 감전이라도 된 것처럼 수철을 떠올렸다.
“부탁해, 오빠. 나 정말 이번 일 잘 돼야 돼. 만약 잘못되면 나하고 우석씨는 정말 큰일 나는 거야. 제발 한 번만 도와줘, 응? 부탁이야.”
아까까지만 해도 여유 있어 보이던 현지의 돌변한 태도에 현태는 당황했다.
“잘 돼야 엄마 기분도 풀릴 거야. 나도 엄마한테 면목이 설 거고.”
현지는 미숙까지 끌어들이며 안간힘을 썼다. 하지만 현태는 무어라 입을 열 수가 없었다.
“일단, 생각해 볼게.”
현태가 재빨리 대답했다.
“알았어, 알았어. 부탁해, 오빠.”
현지는 다시 한번 간절한 눈빛으로 현태를 바라본 뒤 손을 한번 꼭 잡아주고는 택시에서 기다리고 있던 우석에게 뛰어갔다. 두 사람은 현태에게 꾸벅 인사를 하고는 택시를 타고 사라졌다.
현태는 곧바로 미숙의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아파트 앞을 서성거렸다. 마음이 진정되지 않았다. 자신의 일에, 현지의 일에, 미숙까지 더해져서 모든 게 엉망진창이었다. 어디에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집으로 들어가 보니 미숙은 부엌 테이블에 앉아 커다란 머그컵으로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이미 그녀의 얼굴에서 눈물은 말끔히 사라지고 없었다. 어쩌면 아까의 난리가 모두 쇼였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현태는 슬쩍 말을 건넸다.
“이 컵 새로 사셨어요? 못 보던 거네.”
미숙은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녀의 눈동자는 김이 올라오는 머그컵에 고정되어 있었다.
“어차피 이렇게 된 거, 마음 푸세요. 어쩌겠어요. 지들이 결정한 건데.”
여전히 미숙은 대답이 없었다. 그렇게 두 사람은 말이 끊겼고 미숙이 커피를 홀짝이는 동안 현태는 소파에 앉아 텔레비전을 봤다.
그렇게 30분쯤 지났을 때 리모컨을 들고 있는 현태의 손이 조금씩 떨리기 시작했다. 그는 턱을 치켜들고 이를 악문 채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이러다가 나아지는 경우도 있었기 때문에 그는 숨을 죽이고 자신의 손을 노려보았다. 하지만 떨림은 점점 더 심해지더니 결국 리모컨을 잡고 있기조차 힘들 지경이었다. 현태는 겨드랑이 사이에 양손을 넣어 단단하게 팔짱을 끼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엄마, 저 그만 가봐야겠어요. 내일 아침에 예약되어 있는 꽃다발이 있어서요.”
미숙이 고개를 들었다. 늙고 지친 얼굴이 역광 때문인지 더욱 일그러져 보였다.
“꽃다발, 꽃다발, 꽃다발이 뭐 대수라고, 어떻게 맨날 그놈의 꽃다발 타령이니. 진짜 너무들 한다. 너희는 내 생각은 조금도 하지 않는구나. 지들 엄마 생각은 조금도 하지를 않아. 내가 니들 엄마인데.”
그녀는 눈썹을 치켜올리며 사납게 말했다. 그리고 똑똑히 들리지 않는 몇 마디를 더 웅얼거렸다. 하지만 현태는 금방이라도 두 손이 멋대로 앞으로 튀어나올 것 같았기 때문에 그녀의 말이 전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하여간 저는 지금 가봐야 돼요. 죄송해요. 다음에 뵐게요.”
팔짱을 낀 채로 현태는 허둥지둥 미숙의 아파트를 뛰어 나갔다.
택시를 잡아타고 한달음에 집으로 돌아와 현관문을 닫자마자 현태는 신발도 벗지 못하고 그대로 주저앉아 마음껏 숨을 헐떡였다. 하루 종일 적에게 쫓겨 다니다가 겨우 따돌렸을 때처럼 격심한 피로가 몰려왔다. 그는 늘어지는 몸을 추스르며 자신의 고요한 집안을 둘러보았다. 예전부터 이곳은 그에게 있어 둘도 없이 안락한 은신처였지만 이제는 그 이상이었다. 마음껏 몸을 떨고, 우스꽝스럽게 걸어 다니고, 여차하면 나뒹굴 수도 있는, 세상에서 유일한 장소였다. 그는 창문 앞에 앉아 손발이 멋대로 뒤틀리도록 내버려 둔 채 창밖을 바라보았다. 오늘은 21층의 불이 환하게 밝혀져 있었다. 사진작가이거나, 화가이거나, 작곡가이거나, 어쩌면 고아일지도 모르는 사람의 창문을 그는 물끄러미 올려다보았다. 혹시 창문으로 얼굴을 내밀지 않을까 눈을 떼지 않고 기다렸지만 아무도 창문 근처에 얼씬하지 않았다. 저 방주인은 어떤 중요하고 의미 있는 일에 매진하느라 창밖을 바라볼 시간도 흥미도 없는 모양이라고, 현태는 부러운 마음으로 짐작했다. 알고 보면 사람 사는 게 다 거기서 거기라고 사람들은 얘기하지만 현태는 믿을 수 없었다. 모든 사람들의 삶이 하나같이 이토록 고되고 막막하고, 지루하다면 왜 사람들은 자신들처럼 고되고, 막막하고, 지루한 아이들을 끊임없이 낳고 있는 걸까. 누군가는, 어디에 사는지 어떤 사람인지는 모르지만 분명 이 세상 어딘가 누군가는 흥미롭고, 근사하고, 능숙하게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모두들 실낱같은 기대나마 품고서 하루하루를 살아갈 수 있는 게 아니겠는가. 그래야만 수철의 선택도 용기가 아니라 비겁이라고 마음껏 손가락질할 수 있는 게 아니겠는가.
그때 길 건너편 아파트 담장 위로 고양이 한 마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발걸음이 마치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 그림자처럼 가볍고 홀가분해서 하마터면 현태조차 눈치채지 못할 뻔했다. 흰색 바탕에 커다란 갈색 점박이 무늬가 있는 고양이는 왼쪽 귀 한쪽과 꼬리 끝이 잘려나가고 없었다. 녹녹지 않은 삶이었던 모양이지만 정작 고양이 자신은 아무 유감도 없는 듯했다. 고양이는 담장에서 씩씩하게 뛰어내리더니 초록색 음식물 수거 쓰레기통 뒤에 몸을 숨기고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현태는 직감적으로 고양이가 길을 건널 작정이라는 걸 알아차리고는 곧바로 벌떡 일어나다가 그대로 방바닥으로 굴러 떨어졌다. 두 다리가 돌처럼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구부릴 수도 펼 수도 없었다. 현태는 창문턱에 매달려 간신히 몸을 일으키고는 발레리나처럼 발끝을 세우고서 잔걸음으로 현관을 달려 나갔다. 하지만 복도 층계를 몇 발자국 내딛기도 전에 그는 다시 앞으로 고꾸라졌다. 왼팔이 층계 모서리에 부딪치며 크고 둔탁한 소리를 냈다. 그는 허우적거리면서 자리에서 일어나 다친 왼쪽 팔목을 오른손으로 받쳐 들고 더듬더듬 기다시피 층계를 내려왔다.
그가 빌라를 빠져나왔을 때, 아니나 다를까 고양이는 이미 중앙선을 가로질러 길을 건너고 있는 참이었다. 아까까지 경계하던 모습은 간데없고 꼬리를 높이 세운 채 한들한들 걷는 모습에 현태는 저도 모르게 이가 갈렸다. 마음 같아서는 고양이를 힘껏 걷어차버리고 싶었다. 발을 휘두르는 시늉이라도 해서 단단히 겁을 줘야겠다고 마음먹으며 찻길로 내려서는 순간, 자주색 승용차 한 대가 쏜살같이 그의 코앞을 스치고 지나갔다. 실제로는 2미터 정도 떨어져 있었지만 워낙 속도가 빨라서 아슬아슬하게 스치고 지나간 듯한 인상을 주었다. 차가 접근하는 걸 전혀 눈치채지 못했던 현태는 차가 지나가고 나서야 뒤늦게 뒤로 벌렁 나자빠졌다. 개자식, 처박고 뒈져버려라. 시커먼 악담이 그의 뱃속에서부터 튀어나왔다. 결코 농담이 아니었다.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킨 현태는 다시 한 발을 앞으로 내딛으려다가 그대로 멈추었다. 그리고 멀겋게 괴이한 얼굴로 아스팔트를 노려보았다. 숨길 수 없는 피가 박살 난 머리쯤에서부터 솟구쳐 오르고 있었다. 그제서야 아까 차가 지나가던 순간 얼핏 들었던 괴상한 소리가 부메랑처럼 다시 돌아와 현태의 귓속으로 파고들었다. 수백만, 수천만의 숨결이 불어넣어져 커다랗게 부풀어 올랐던 풍선이 일시에 납작하게 찌그러지는 외마디 소리. 현태는 고양이 앞에 무릎을 꿇고 더러운 아스팔트바닥 위로 아낌없이 흘러내리는 피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는 이 고양이를 아주 오래전 부터, 새끼 고양이일 때 부터, 이 고양이의 어미 때부터, 그 어미의 어미 때부터, 훨씬 더 오래 전부터 알아온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기어이 뻗어가던 핏줄기는 그의 무릎 왼편에 작은 웅덩이를 만들더니 이윽고 멈추었다. 피의 양은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그는 이것보다 5배는 더 많은 피를 예상했었다. 하지만 5배라고 해봐야 지저분한 얼룩 자국이 좀 더 커질 뿐이었다. 현태는 돌연 혼미해져서 흥건히 고인 피 웅덩이 속에 자신의 왼손을 담갔다. 아직 따듯했다. 그는 손을 들어 자신의 손바닥을 들여다보았다. 현실 속의 진짜 현실인 것 같은 비현실적으로 선명한 붉은색. 그는 갑자기 그 핏물을 자신의 온몸에 마구 칠하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그리고 이 아스팔트 길을 따라 그냥 앞으로 앞으로 앞으로 마냥 달려 나가고 싶었다. 한없이 새푸른 바다가 나올 때까지. 아니, 어쩌면 이 세상 모든 핏물들이 흘러드는 그 바다도 온통 붉은색일까.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