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면증 (57)

by 곡도




의사에게 검사 결과를 들으러 가기까지 일주일 동안 그는 차라리 평온했다. 성적표를 받기도 전에 미리 자신의 성적을 알고 있는 학생처럼 말이다. 혹시나 파킨슨병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오히려 그의 심장을 덜컥 내려앉게 했다. 그 어떤 실낱같은 기대나 희망도 그에게는 버겁고 치명적이었다.

일주일 후, 현태는 출근하는 길에 병원에 들르기 위해 아침 일찍 일어났다. 그런데 침대에서 눈을 떴을 때는 이미 손발이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그는 떨리는 손을 멈추기 위해 온 힘을 쥐어짜보았지만 소용없었다. 그는 절뚝거리며 거실을 서성이다가 거울 앞에 섰다. 비틀어진 몸으로 덜덜 떨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 보였다. 세상천지에 이런 가관이 없을 정도였다. 멋대로 돌아가는 두 팔을 몸뚱이에 꽁꽁 꿰매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병신’이라는 단어가 저절로 그의 이마에 새겨졌다. 현태는 두 손을 쥐어뜯으며 허공에 대고 벌컥 쌍욕을 내뱉었다. 다시, 그리고 한 번 더, 계속해서 고래고래 욕을 지껄였다. 분하고 속이 뒤틀려서 참을 수가 없었다. 좋다. 파킨슨병인건 그렇다 치자. 그런데 왜 하필이면 오늘 이 꼴인가. 그 똑똑하고 냉담한 의사 앞에서 이런 모습을 보일 생각을 하니 죽기보다 싫었다. 이대로 병원 예약을 취소해 버릴까 심각하게 고민하기도 했다. 그러나 결국 그는 병원으로 향했다. 오늘 꼭 병에 대한 확답을 들어야 했다. 일주일을 태연하게 견뎌왔지만 이제는 단 하루도 미룰 수가 없었다. 그는 택시를 잡기 위해 떨리는 두 손을 머리 위로 번쩍 치켜올렸다. 뭐든지 시작이 어려울 뿐 이 모멸감도 곧 익숙해지고 말리라는 걸 그는 알고 있었다.

병원에 도착해 의사와 마주 앉았을 때도 그의 손은 여전히 떨리고 있었다. 하지만 의사는 그의 손에는 별 관심도 없이 차트만 이리저리 뒤적이며 가끔씩 어떤 글자나 숫자에 동그라미를 쳤다. 이미 모든 걸 알고 있다고 여유를 부리던 현태도 막상 의사를 마주하자 가슴이 뛰었다. 그는 자꾸만 뿌옇게 흐려지는 눈을 부릅뜨며 의사를 노려보았다. 하지만 의사는 좀처럼 차트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현태는 입속으로 계속 ‘파킨슨병’을 중얼거리고 있다가 의사가 차트에서 고개를 들자마자 황급히 외쳤다.

“파킨슨병인가요?”

“그게…….”

“그것부터 말해주세요. 맞습니까, 아닙니까?”

“파킨슨병이 맞습니다.”

의사는 딱 들어맞는 마지막 퍼즐 조각을 끼워 맞추듯 단호하게 말했다. 현태는 ‘아’하고 길게 숨을 내뱉었다. 순식간에 모든 것이 썰물과 함께 밀려나가고 쓰레기가 굴러다니는 메마르고 먼지투성이의 땅이 햇빛 아래 훤히 드러난 것처럼 차라리 개운하고 건조한 느낌이었다.

“그럼, 이제부터는 어떻게 해야 하죠?”

현태는 제법 담담하게 물었다. 하지만 자신의 목소리가 귓속에서 윙윙 울려서 그는 눈살을 찌푸렸다.

“치료 받으셔야죠.”

“치료만 받으면, 되는 건가요?”

“그러니까 그게, 저번에도 말씀드렸지만 이 병은 완치가 힘듭니다. 단지 지연시킬 수 있을 뿐이에요, 그러니까…….”

“그러니까, 시간문제라는 건가요?”

“아니요. 그러니까 더 열심히 치료를 받으셔야죠. 요새 좋은 약도 많이 개발되고 있으니 관리만 잘하면 평생 동안 건강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너무 걱정 마세요. 괜히 스트레스가 병을 더 악화시킬 수 있으니까요. 그럼 약을 처방해 드리죠. 우선 리킵 0.25mg과 씨메넷 사분의 일 알을 드릴 겁니다. 하루에 세 번씩 드십시오. 약을 드시고 좀 있으면 몸이 나아지는 게 느껴질 겁니다. 당분간 경과를 지켜보면서 효과가 없으면 양을 늘리거나 새로운 약을 추가해 보죠. 그리고 주의하셔야 할 점은, 몸이 말을 듣지 않을 때는 함부로 움직이지 마세요. 넘어지기라도 하면 크게 다칠 수 있으니 조심해야 됩니다. 약은 빼먹지 말고 꼭 챙겨 드시구요. 이제 평생 동안 매일 먹어야 한다는 걸 명심하세요. 2-3년 후 약에 내성이 생기면 약을 바꿔가는 식으로 진행할 겁니다. 지금은 처음이라 좀 당황스러우시겠지만 곧 익숙해지실 거예요.”

평생 동안 매일 세 번씩 약을 먹어야 한다는 사실에 그는 절로 신웃음이 나왔다. 고장이 나면 폐기하고 새로 사야 하는 데 그럴 수 없으니 그저 꾸역꾸역 써야 한다는 말인가.

“그 외에 더 해야 할 일은 없나요?”

“특별히 없습니다. 식사 잘 챙겨 드시고 잠을 충분히 주무십시오.”

현태는 피시식 비웃는 소리를 냈지만 의사는 듣지 못했다.

“아, 참. 결혼하셨나요?”

“아니요.”

“그럼 누구와 사세요?”

“혼자 사는데요.”

“아, 그건 좋지 않아요. 파킨슨병 환자는 운동신경이 무뎌지고 종종 몸이 말을 듣지 않기 때문에 일상생활 중에도 위험에 빠질 수 있습니다. 화장실이나 층계에서 넘어지는 일이 가장 흔하죠. 운전하시죠? 앞으로는 운전도 하지 않는 게 좋습니다. 자칫하면 큰 사고가 날 수도 있으니까요. 그 밖에도 어려움이 많아질 테니 누군가와 함께 생활하시는 게 좋겠습니다. 가족 중에 같이 살만한 분이 계신가요?”

“아, 네, 어머니가 지금 혼자 사시는데…….”

그는 얼떨결에 대답했다.

“그래요? 그럼 어머니하고 같이 살면서 도움을 좀 받도록 하세요. 자, 그럼 약 잘 챙겨 드시고 다음 주에 봅시다.”

그리고 의사는 입을 다물었다. 현태 역시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그런데도 현태는 그대로 꼼짝 않고 앉아있었다. 진찰실 안에는 몇 초간 정적이 흘렀다.

“나가 보세요."

현태는 자리에서 일어나 진찰실을 나왔다.

꽃집에 들어서자마자 현태는 문에 내걸린 ‘Close’ 간판을 그대로 두고 문을 걸어잠갔다. 그리고 떨리는 손에 하얀 약 봉투를 움켜쥐고서 해가 지도록 소파에 앉아 있었다. 문득 그의 머릿속에 아파트 옥상 난간 위에 서서 까마득한 발아래 허공을 내려다보고 있는 수철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 여름밤 수철의 얼굴로 불어왔을 축축하고 후끈한 바람이 그의 얼굴에도 느껴졌다. 사방으로 휘날리는 바람에 떠밀리지 않기 위해 수철과 현태는 동시에 허리를 구부리며 비틀거렸다. 한 발자국, 단 한 발자국이면 그만이었다. 이제 그 무엇도, 그 누구도, 그 이상의 요구는 하지 않을 것이다. 이 한 발자국은 얼마나 가소로운가. 얼마나 쉬운가. 수철이 그를 향해 얼굴을 들었다. 그러나 현태는 무너지듯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 안았다. 이 한 발자국이 어떻게 가능하단 말인가. 스스로 심장을 멈출 수 없는 것처럼 이 한 발자국을 스스로 내딛는 것도 불가능한 일이다. 현태는 있는 힘껏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세찬 바람 소리가 귓등을 스치고 지나갔다. 한 발은 허공에, 다른 한 발은 땅을 디디고 있었던 그 순간에 수철은 눈을 뜨고 있었을까 감고 있었을까?

그때 덜컹하는 소리에 현태는 눈을 번쩍 떴다. 누군가 가게 문을 열어젖히다가 잠겨있는 걸 알고 그대로 돌아갔다. 눈을 몇 번 끔뻑이던 현태는 약 봉투를 슬며시 잠바 주머니 속에 쑤셔 넣었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 가게 한쪽 구석에 놓여 있던 마분지 상자를 열어 신문지에 싸여있는 꾸러미들을 풀어헤쳤다. 신문지 안에는 직경 20cm 정도 되는 투명한 유리 공 같은 것들이 잔뜩 들어있었다. 테라리움 용기였다. 몇 주 전부터 만들겠다고 쌓아놓고는 몸이 좋지 않아 계속 미뤄오던 것들이었다. 현태는 흙과 식물이 들어있는 또 다른 상자를 끌어다 놓고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아 테라리움을 만들기 시작했다. 먼저 유리 용기 바닥을 스티로폼 구슬들과 자잘한 자갈들을 섞어서 채웠다. 그 위에 10cm 정도 인조 용토를 덮고 접란과 피토니아, 아이비를 심었다. 크고 작은 현무암 조각으로 보기 좋게 장식한 뒤 주변에 납작한 꽃이끼를 깔고 사이사이 빈 곳에는 노란색과 하늘색의 고운 모래를 뿌렸다. 2시간 가까이 오그라든 손으로 끙끙거리며 주물럭거린 끝에 돌과 식물과 손바닥만 한 이끼 들판이 제법 운치 있게 어우러진 테라리움이 완성되었다. 현태는 분무기로 테라리움 안에 흠뻑 물을 뿌리고는 유리 안쪽에 방울방울 맺히며 흘러내리는 물방울들을 바라보았다. 반사된 빛이 테라리움 세상에 영롱한 생기를 불어넣었다. 그는 테라리움 안에 작은 달팽이나 무당벌레 같은 것을 넣어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것들이 이 작고 완전한 세상에서 일생을 안전하고 평온하게 보내다가 아무 고통 없이 죽음을 맞이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싶었다. 현태는 떨리는 양손으로 테라리움을 감싸 안았다. 그리고 머리 위로 높이 치켜들더니 있는 힘껏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테라리움은 폭발이라도 하듯 굉장한 소리를 내며 산산이 부서졌다. 순식간에 가게 바닥은 유리조각과 흙, 식물들로 뒤덮여 난장판이 되었다. 현태는 흩어진 유리 조각 중에 제일 큰 걸 찾아내어 구둣발로 지그시 짓밟았다. 유리 조각이 와그작 소리를 내며 그의 발밑에서 잘게 부서졌다. 그 광경을 빤히 내려다보던 현태는 등 뒤에서 수철이 그것을 함께 바라보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수철은 분명 이렇게 속삭이고 있을 것이다. 거 봐. 모든 게 음모라고 했잖아. 그러나 아무리 귀를 곤두세워 봐도 가게 안은 조용하기만 했다.




(계속)



keyword
이전 14화불면증 (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