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면증 (56)

by 곡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듯 현태 역시 병원을 좋아하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병원이 아니라 의사들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들은 환자를 물리적 치료 대상으로 봐야 하는지 아니면 자신과 똑같은 인간으로 봐야 하는지 늘 혼란스러워했고, 놀라울 정도로 그 점에 냉담했으며, 그 혼란은 고스란히 환자들은 몫이었다.

현태가 안내받은 진찰실의 의사는 새하얀 가운 때문에 얼굴이 더 검어 보이는 40대 후반의 남자였다. 우습게도 의사 역시 그리 건강해 보이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는 어떤 일에도 당황하지 않을 것 같은 엄격한 얼굴을 하고 있어서 환자들에게 믿음을 주었다. 현태는 처음 만난 그에게 자기소개라도 하는 것처럼 신중하고 겸손하게 자신의 증상을 설명했다. 두통과 손 떨림, 보행의 어려움, 몇 번의 마비 증세에 대해 가감 없이 말해 주었다. 그러나 그는 의사에게 별다른 기대는 갖고 있지 않았다. 그에게 필요한 건 의사가 아니라 충분한 잠이었다. 어떤 천하장사라도 매일 밤마다 보초를 선다면 도저히 당해내지 못할 것이다. 그는 의사의 수고를 덜어주고 쓸데없는 시간낭비를 줄이기 위해 차분하게 덧붙였다.

“그런데 제가 뭣 좀 하는 일이 있어서 매일 새벽까지 잠을 잘 수가 없거든요. 그래서 체력이 많이 약해졌는데 이번에 감기 몸살하고 겹친 것 같습니다. 저, 물론 알아서 잘해주시겠지만, 약은 좀 약하게 처방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되도록 약은 안 먹으려고 해서요.”

그러나 의사는 아무런 대꾸 없이 무언가를 종이에 열심히 적어 넣었다. 머쓱해진 현태는 잠자코 의사가 필기를 끝마치기를 기다렸다. 잠시 후 의사가 고개를 들었지만 시선은 여전히 자신이 써놓은 메모를 향하고 있었다.

“외람되지만…….”

“네?”

“파킨슨병이 의심되긴 하네요.”

생소한 병명이 튀어나오자 현태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의사를 바라보았다. 파킨슨병이 뭔지는 몰라도 이렇게 의사가 다짜고짜 병명을 얘기한다는 건 결코 좋은 징조가 아니라는 걸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그게 무슨 병인데요?”

“아닐 수도 있습니다만, 아무래도 파킨슨병인 것 같습니다. 증세가 지극히 전형적이라서요. 일단 몇 가지 검사를 해봅시다.”

의사가 무언가를 다시 종이에 휘갈겨 썼다.

“파키.... 그게 무슨 병인데요?”

다시 현태가 물었다. 의사가 재빨리 현태를 흘끔 바라보더니 다시 차트로 눈을 돌렸다.

“아직 확실하지는 않으니까요.”

“그러니까 무슨 병인데요?”

현태는 세 번째 묻고 있었다. 격앙된 탓인지 공교롭게도 현태의 손이 떨리기 시작했다. 의사는 필기하던 손을 멈추고 그의 떨리는 손을 바라보았다. 의사의 차분한 표정이 현태를 얼어붙게 했다.

“그러니까, 조금 설명하기 어려운데, 중뇌에 흑질이라는 부위에 도파민을 만들어내는 세포가 있습니다. 그 세포가 퇴화하는 병이 파킨슨병입니다. 신경 계통에 문제가 생기는, 말하자면 신경 장애죠.”

“그게 무슨 말입니까?”

현태가 이를 악물며 되물었다. 다분히 시비조였다. 마치 의사의 말투나 태도가 이 병의 본질인 것처럼 화가 끓어올랐다. 마치 이 병의 주체가 자기 자신이 아니라 눈앞의 의사인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이런 환자의 얼굴을 수백 번도 더 보았을 의사는 담담하기만 했다.

“도파민은 뇌에서 신경 정보를 전달하는 물질입니다. 예를 들면 도파민은 이쪽의 신경 정보가 저쪽 길 너머로 건너갈 수 있도록 하는 횡단보도 같은 역할을 하는 겁니다. 만약 이 횡단보도가 사라지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신경들이 길을 건너지 못하게 되는 거죠.”

“그럼 오히려 안전한 거 아닌가요?”

멍청한 얼굴로 현태가 말했다.

“네?”

“찻길을 건너지 못하면 오히려 안전한 거 아니냐구요.”

“그게 아니라, 그러니까 제 말은…….”

현태가 눈을 치켜뜨며 의사의 말을 가로챘다.

“그러니까 간단히 말해서, 뇌에 이상이 생겼다는 거죠?”

“네, 말하자면 그렇습니다.”

의사가 체념한 듯 대답했다.

“그러면, 만약 제가 파킨슨병이라면, 그러니까 제 말은, 파킨스병으로 사람이 죽을 수도 있나요?”

현태는 자신의 말에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도대체 이런 질문에는 어떤 대답이 가능하단 말인가? 무덤덤하게 대꾸하는 의사의 까만 입술을 현태는 놀라울 정도로 자세히 쳐다보았다. 가능하단 말인가?

“아, 아닙니다. 파킨슨병은 직접적으로 사망에 이르게 하는 병은 아니에요.”

그러면 그렇지. 현태는 잠시 약해졌던 마음을 다잡았다.

“그럼 고칠 수 있는 거죠?”

“사실은, 그게 좀 쉽지 않습니다. 꾸준히 약을 먹으면 호전이 되고 관리를 잘하면 일상적인 생활도 가능합니다만 완치는 힘든 병입니다. 하지만 아까 말씀드렸듯이 아직 파킨슨병이라고 확진한 건 아니니까요.”

의사는 이제 그만 현태를 내보낼 생각이었다. 질문을 많이 하는 환자는 피곤할 뿐이었고 아직 검사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일일이 상대한다는 건 시간낭비였다. 하지만 현태는 의사가 무어라 입을 열기도 전에 말을 가로막았다.

“그럼, 이 병이 심해지면 어떻게 되는 겁니까? 이 병이 악화되면, 최악의 경우에는 어떻게 되는 거죠?”

“뭐든지 최악을 생각해서 좋을 건 없습니다. 더구나 계속 말씀드리지만 파킨슨병이 아닐 수도 있고.”

“그건 잘 알았으니까 대답이나 해보세요. 이 병이 심해지면 어떻게 되는데요.”

“뭐, 심해지면, 최악의 경우입니다만, 치매에 걸리거나 전신 마비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관리만 잘하면 호전될 수도 있구요. 자아, 그럼 오늘 검사하시고 일주일 후에 오십시오. 자세한 얘기는 그때 하도록 하죠.”

의사는 재빨리 간호사를 부르더니 20분 동안 쉬지 않고 끄적였던 종이를 넘겨주었다. 현태는 의사가 자신을 바보 취급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그건 확실했다. 의사는 스스로 단순한 의사가 아니라 의사인 자신과 환자를 위에서 내려다보고 있는 전지적 시점이라고 자부하고 있었다. 그 어떤 인간도 의사 앞에서는 결코 환자 이상일 수 없다는 걸, 다시 말하면 바보 멍청이 등신에 불과하다는 걸 뻔히 의식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자신은 바보가 아니었다. 현태는 의사의 말이 틀렸다는 걸, 자신이 파킨슨병 환자가 아니라는 걸 조목조목 따져서 그를 무참하게 만들고 싶었다. 의사도 결국 3인칭과 1인칭 시점 사이에서 깔아 뭉개질 수밖에 없는 바보 멍청이 등신에 불과하다는 걸 느끼게 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가 어떻게 그럴 수 있겠는가. 파킨슨이라는 병명도 방금 전에 생전 처음 들었는데 말이다. 그는 간호사를 따라 순순히 진찰실을 나왔다.

현태는 채혈실로 가서 피를 뽑고 생전 처음 MRI 기계에도 들어갔다. MRI 검사가 고가라는 데 생각이 미쳤기 때문에 그는 검사가 끝날 무렵에는 무척이나 불쾌해져 있었다. 혹시 파킨슨병이니 뭐니 협박하면서 멀쩡한 사람에게 검사비를 뒤집어씌우려는 속셈이 아닐까 의심스러웠다. 그의 어머니도 건강검진을 받을 때마다 의심소견이 나와서 추가 검사를 받곤 했지만 늘 아무 이상이 없었던 것이다. 그러면 그녀는 의사 앞에서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마치 병에 걸렸다가 치료받고 낫기라도 한 것처럼 감사의 미소를 지었지만, 집에 돌아와서는 다 도둑놈의 새끼들이라고 자못 분통을 터트리곤 했다.

현태는 꽃집에 도착하자마자 컴퓨터에 매달려 파킨슨병에 대해 검색하기 시작했다. 일주일 후 의사를 다시 만나면 파킨슨병에 대한 전문지식들을 늘어놓아 코를 납작하게 해 줄 생각이었다. 그러나 곧 그는 의사가 허튼소리를 한 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만성 피로’ ‘무력감’ ‘손발 떨림’ ‘보행의 불편함’ ‘근육 강직’ ‘평형감각 저하’ 등등 파킨슨병의 증상들은 현태의 몸 상태를 그대로 받아 적어놓은 것만 같았다. 변명의 여지조차 없어서 의사가 아닌 사람도 현태를 파킨슨병 환자라고 확진할 수 있을 정도였다. 파킨슨. 그는 익숙해지기라도 하려는 듯 계속해서 이 단어를 중얼거렸다. 영어인지 독일어인지 알 수 없는 괴상한 단어였다. 파킨슨. 원인도 확실치 않고 완치될 가망도 없는, 죽을 때까지 손 떨림과 근육 마비에 시달려야 하는, 심해지면 치매와 전신 마비를 일으킬 수도 있는, 파킨슨. 외부로부터 감염된 것도 아니고 치료할 수도 없다면 과연 이걸 ‘병’이라고 할 수 있을까? 파킨슨, 이건 마치 출생의 비밀처럼 알지 못했던 자신의 본명 같은 게 아닌가. 갑자기 왼쪽 눈꺼풀이 발작처럼 파르르 떨렸다. 그는 고개를 들어 쇼윈도 창밖을 내다보았다. 특별할 것 없는 거리의 풍경이었다. 코끼리 떼가 몰려오는 일 따위는 일어날 리 없는 평범한 하루. 오늘이 이 모든 것의 새로운 시작인지 아니면 이 모든 것의 최종적 결말인지 그는 궁금해졌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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