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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이 시골마을을 깨우다

시골살이의 즐거움

by 바람마냥

조용한 산골 마을, 부산한 날갯짓에 목소리 높여 울어대는 닭 울음소리가 고요한 시골마을을 잠에서 깨운다. 언제나 산골짜기에 내려오는 도랑물 소리만 갈갈대는 마을에 가끔 들려오는 닭 울음소리는 여기가 사람 사는 동네임을 알게 해 준다. 언제나 자기 영역을 지키려 부단히 몸짓을 하고, 커다란 울음소리로 자신의 존재를 과시하는 닭의 울음소리는 오래전 초가집의 추억을 불러오고 만다.


허름한 헛간에 매달려진 닭의 보금자리에, 수북이 자리한 달걀을 따스한 온기로 품어 주는 어미 닭이 사방을 경계하며 두리번거리고 있다. 얼마 전 어머니가 간간이 모아 온 달걀을 넣어 닭의 종족번식 본능을 만족스럽게 해 준 덕이었다. 여느 닭과 달리 답답한 울타리에 갇히지 않고 마음대로 뛰며 자란 암탉은 사는 것이 자유분방해서인지 여기저기에 달걀을 낳고 목청을 높여 울어대곤 했다. 대개는 헛간의 볏짚이 쌓인 포근한 곳에 낳는 것이 보통이지만, 엉뚱하게도 모래밭에 낳아 놓기도 하고, 아무 곳에나 알을 낳기도 한다. 알을 낳는 곳이 일정하지 않기에 달걀을 찾아내는 것은 쉬우면서도 어려운 일이지만, 달걀을 발견하는 일은 반가운 일이기도 하다. 어느새 낳았는지 달걀은 따스한 온기를 품고 있어 주먹 안에 넣으면 따스함을 전해줌이 마냥 행복하기도 하다.


따스한 달걀을 찾은 어머니는 아이에게 달걀을 내밀며 날로 먹으라 하신다. 아이는 망설임 없이 송곳니로 달걀의 긴 부분의 모서리를 깨고 손으로 막은 후, 반대 방향을 송곳니로 깨서 입으로 가져간다. 반대편 막은 손을 떼며 살짝 빨면 약간 비릿하지만 고소한 노른자와 흰 자가 입으로 빨려 들어온다. 노른자를 살짝 씹고 목으로 흰자와 함께 넘어가는 촉감은 따스하면서도 고소함을 전해 주어 아이는 계란을 먹는 재미가 쏠쏠했다.


잠시도 쉴 새 없이 쏘다니며 낳은 달걀은 모아져 여러모로 쓰이는데, 가장 쓰임새가 으뜸인 것은 5일 장의 나들이였다. 한 줄에 보통 10개의 달걀을 꾸러미로 묶어 장에 내다 파는데, 꾸러미를 만드는 방법은 시골에서 흔한 볏짚을 이용하였다. 한 움큼의 볏짚의 아랫부분을 끈으로 묶어 땅에 놓고, 볏짚을 펼쳐 달걀을 한 개씩 볏짚에 놓는다. 한 개를 놓고 외부를 볏짚 한두 개로 둘레를 묶고, 다시 한 알을 놓고 같은 형태로 묶어 나가면서 10개가 되면 끝을 묶어 한 줄을 만든다. 이렇게 만든 달걀을 한 줄 단위로 시장에 팔게 되는데, 시골에서는 요긴한 가용 돈을 마련하는 수단이기도 했다. 이렇게 마련된 돈으로 시골에 필요한 물건을 사기도 하고, 아이들의 학비로 사용하기도 한다.


시장에 팔고 남은 계란은 대단한 반찬거리가 되기도 하는데, 계란 두어 개를 그릇에 깨서 넣고 적당히 물을 넣은 다음, 파나 달래 등의 야채를 넣고 화롯불에 끓이면 멋진 반찬이 된다. 노르스름한 노른자가 입맛을 돋우고, 그 위에 얹힌 파와 달래가 먹음직스럽긴 하지만, 오랜만에 귀한 반찬은 어른이 먼저 드신 후에 아이들이 먹어야 하는 것이 지켜져야 하는 순서였다.


아이의 운동회에서는 빠질 수 없는 찐 계란이 등장했으며, 일 년에 두 번 있는 소풍에서도 반드시 끼는 먹거리였다. 여러모로 쓰이는 계란을 아껴서 어미닭의 품에 안기면 멋진 병아리가 되는 것이다.


어머니는 봄철이면 병아리를 부화시키기 위해 어미닭의 정성을 한껏 발휘하도록 해 주셨다. 스무 하루의 어미닭의 노고가 지나면 병아리가 부화하게 되는데, 어미닭이 노란 병아리를 끌고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모습이 너무나 평화로웠다. 먹거리를 찾아 새끼에게 주고, 위험에 처했을 때 날개를 펴서 새끼를 품속에 품으며 새끼를 기르는 어미닭의 모습은 눈물겹도록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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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아리가 서서히 자라 중병아리가 되면 병아리는 서서히 어미닭의 품을 떠나고, 스스로 먹이를 찾으며 닭으로서의 품위를 찾아간다. 앞마당에 닭 식구들이 그들먹해지면 닭의 무리들은 서서히 물의를 일으키기 시작한다. 마당에 널어놓은 곡식을 헤집기도 하고, 넘어야 할 선을 넘어버려 주인의 버림을 받기도 하지만, 추석이나 설 즈음이 되면 대단한 먹거리가 되어 즐거움을 주기도 한다.


추석이나 설이 오면 어머니는 먹음직한 어미닭을 잡아 우물가에서 닭을 손질하시곤 했다. 따스한 앞마당에 병아리를 이끌고 노는 어미닭의 모습은 시골집의 푸근한 추억을 생각하게 한다. 친구들과 어울려 닭서리를 하고, 주인에게 발각되어 호되게 혼이 난 적도 있는 닭이기에 친구들과 만나 오래 전의 무용담을 즐길 수 있는 이야깃거리이기도 하다. 컴컴한 밤중에 담장을 넘어 닭이 소리를 내지 않게 잡아내는 친구의 무용담이라든가, 황토를 발라 서서히 타오르는 불에 구워 먹는 어린 시절을 기억하는 추억거리는 두고두고 멋진 소재거리이다.


오래전 완행 열차에서 만날 수 있었던 찐 계란과 맥주, 언젠가 일본의 하코네 화산지역에서 만났던 겉이 검은 찐 계란, 도시락 뚜껑을 열면 노란 계란부침으로 덮혀진 모습은 언제나 즐거운 추억이다.


여행을 하다 보면 어느 곳에는 소고기를 멀리하고, 어느 곳에는 돼지고기를 멀리하지만 닭고기를 멀리하는 곳은 만나지 못한 기억이다. 이렇게 인류에게 지대한 공로를 한 닭은 하루기 멀다 하고 우리와 만날 수 있고, 거리의 곳곳에 닭을 파는 곳이 있으니 닭에게 많이 고마워해야 할 인류이기도 하다. 하지만 자연의 섭리를 거역한 인간의 오만함에서 오는 조류독감은 인류에게 커다란 아픔을 주기에 가슴이 저려오기도 한다.


따스한 봄날, 노란 병아리를 수북이 몰고 다니며 땅을 헤집던 어미닭 덕에 노란 병아리는 어느새 중닭이 되고 말았다. 이제 서서히 따스한 바람이 불어오면, 시골 마당은 굵직한 닭들로 가득할 터이니 시골집은 그래서 많은 추억을 불러주는 아름다운 곳이다.


자그마한 도랑에 물 흐르는 소리만이 갈갈대는 시골집, 서서히 어둠이 걷히는 새벽이면 이웃집 닭 울음소리가 아침잠을 깨우는 소소한 일상이 행복하고 즐거운 하루이다. 나른한 오후, 모두가 졸음에 힘겨워할 때쯤이면 알을 낳고 목청 높여 우는 닭소리가 정적을 깨고, 품앗이하듯 울어대는 동네 닭 울음소리가 호젓한 산동네를 흔들어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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