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화단 정리를 하며 , 모로코에서 만난 대서양)
새벽닭 우는 소리에 잠이 깼다. 시간을 보니 5시가 아직도 남았다. 잘까 말까를 망설이다 닭소리가 들리지 않게 문을 닫고 다시 눈을 감았다. 눈을 감고 한 시간여를 반은 자고, 반은 생각하며 한참을 뒤척이다 답답해 일어나고 말았다. 창을 열고 바라보는 앞산에는 뿌연 안개가 가득하고, 어디가 나무인지 길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다. 주섬주섬 옷을 입고 일층으로 내려가 창문을 열어 놓고 밖으로 나갔다. 오늘은 뒤에 있는 당근 밭을 정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자그마한 밭에 씨를 뿌려 놓은 당근이 장맛비에 지쳤는지 누워 있는 것이 많기 때문이다.
호미를 들고 당근밭으로 가자 장맛비에 쓰러진 자그마한 당근이 애처로이 쓰러져 있다. 간당간당한 당근이 간신히 몸을 가누며 서 있는 모습이 안쓰러워 흙으로 북돋워주면서 풀을 뽑았다. 많은 곳에서 뽑아 적당한 간격으로 심어주면서 보기 좋은 당근밭을 만들었다. 이렇게 당근밭 정리를 하는 순간, 목 언저리가 따갑다는 느낌과 동시에 몸이 움찔하고 말았다. 모기는 아니지만 어느 벌레가 목부분을 물고 만 것이다. 보통 모기가 물어도 따가운데 모기가 문 것보다도 더 따갑다. 조금 지나자 다리 부분에도 많은 벌레들이 물어 가렵기 시작한다.
갑자기 옆집 아주머니 생각이 난다. 어느 날 만난 아주머니는 눈 부위가 부어 있었다. 밭에서 풀을 뽑는데 벌레한테 물려서 그랬다는 것이었다. 그것이 나도 그래야 한다는 것이 아닌가? 원래 시골에서 자랐기에 웬만한 벌레에 물린 것은 걱정을 하지도 않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저절로 치료가 되어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면서 살아왔다. 하지만 세월이 많이 흘러서인지 자그마한 벌레에 물려도 잘 아물지 않는 체질로 변하고 말았다. 이렇게 체질이 변하고 말았음을 지난해에야 알게 되었다.
지난해에는 실내화 차림으로 잔디밭엘 다녔다가 엄청난 고통을 당했던 경우가 있어 몹시 걱정이 되지만, 하던 일을 멈추고 그만 둘 수가 없었다. 당근밭 정리를 끝내고 바라본 화단엔 또 풀이 많아 그것을 정리해야만 했다. 손녀가 만들어 놓은 화단이긴 하지만 언제나 할머니와 내가 정리를 하는 곳이다. 지난 장마에 얼마나 풀이 자랐는지 꽃보다 풀이 많아졌다. 화단에 들어가 풀을 뽑는 순간, 이번에는 모기들이 그냥 두질 않는다. 소리를 지르며 발악을 하기도 하고, 더러는 몸에 붙어 물기도 한다. 할 수 없이 몸이 나올 틈이 없도록 무장을 하고 다시 일을 시작했다.
화단에 쪼그리고 앉아 풀을 뽑으려는데 조금 전에 물렸던 자국이 따가워서 견딜 수가 없다. 따가운 부분을 손으로 긁으며 풀 뽑는 일을 계속하지만 물린 부분이 너무나 따갑고 가렵다. 그래도 남은 부분을 대충 마무리하면서 내가 주인인지, 벌레가 주인인지를 고민해 본다. 언젠가 벌레 이야기를 친구한테 하자 원래가 그들의 땅에 인간이 들어와 산다는 것이다. 그러니 웬만한 것은 인간이 양보하면서 사는 것이 맞는다고 하기에 웃고 말았었다. 혹시 그들의 구역에 내가 침범을 한 것인가? 그러면 새가 집을 지어도 그냥 두고, 벌레가 들어와도 그냥 두어야 하는가? 벌레한테 물린 것이 몹시 가려워 한번 해본 생각이다.
얼마 전에는 친구 말이 생각나서 처마 밑에 집을 지은 새들을 쫓아 내려다 생각을 접기도 했다. 새끼를 나서 기르는 새들이 수시로 드나들며 집안을 어지럽게 해 놓는다. 배설물이 그렇고, 갖가지 검불들을 물어다 놓아 아침저녁으로 청소를 해야 한다. 그것이 보기 싫어 새를 쫓아 내려다가 언뜻 새끼 소리가 들려 포기하고 말았다. 그들의 자리에 들어와 사는 내가 이 정도는 양보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내가 견딜 수 없도록 온 몸에 상처를 낸 벌레들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들의 영역이라 그대로 있어야 하는가? 참, 해결방안이 없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화단에 풀을 뽑아내고, 나 몰라라 하면서 앞에 흐르는 도랑으로 들어갔다. 지난 장맛비에 물이 조금 많아졌지만, 일 년 내내 끊기지 않고 갈갈거리는 가장 사랑하는 나의 시골친구이다. 신발을 벗고 들어가니 벌레가 주인인지, 내가 주인인가라는 생각은 온데간데없고 벌레에 물린 다리가 너무나 시원하다. 동네 가운데가 아니라면 옷을 벗고 멱이라도 감고 싶은 심정이다. 하는 수 없이 세수만 하면서 시골에 사는 덕에 이런 호사도 누려보는구나라는 생각을 한다. 힘들고 어려운 일이지만, 시골에 살면서 이런 일쯤은 간단하게 생각해야만 그 보다 더 많은 자연을 누릴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긴 장맛비 탓에 하지 못했던 채소밭과 화단을 정리하고 난 후, 골짜기에서 내려오는 바람이 더 시원하고, 오늘따라 자그마한 도랑물 소리는 더 크게 들리는 아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