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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화가루가 주는 추억

(송홧가루가 주는 아침 정경, 몽골에서 만난 풍경)

by 바람마냥

송화가루 날리는 외딴 봉우리, 우리 귀에 익숙한 박목월 님의 '윤사월'이다. 노란 송홧가루 날리는 시골집에 앉아, 하늘을 맴도는 잠자리 따라 아무 생각 없이 바라보는 한적한 풍경은 한 번쯤 살아보고 싶은 그림이었다. 작은 시골집 마루에 내려 한적한 시골집을 만들어주기도 하고, 노란 가루 되어 떠다니는 봄철 소나무에서 나오는 송홧가루를 보면서 말이다. 노란 송홧가루가 날리는 것은 세상에 살아남은 소나무가 다시 종족을 보존하기 위해 꽃씨를 뿌리는 광경인데, 대부분의 꽃들은 곤충에 의해 번식 하지만 소나무는 바람에 의해 번식을 하기에 4월 초에서 5월 말에 바람이 불면 엄청난 노란 가루가 날리게 되는 것이다.


송홧가루, 참 정겨운 고향이 그려지기도 하고, 오래전 그리움이 담긴 송화다식이 생각나는 아름다운 소리이기도 하다. 시끌벅적한 추석이 오면 노란 송홧가루를 이용한 다식을 만들기도 했는데, 노란 송홧가루를 모으는 것이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지만 대부분의 집에서 하던 일이었다. 송홧가루를 모아 다식을 만들고, 차례를 모시는 오래 전의 추억이 이제는 아는 사람만이 아는 소설 속의 이야기가 된지는 오래되었다. 갈 곳이 없는 듯이 도시 하늘 속을 헤매고 있는 노란 송홧가루는 이제, 오래 전의 추억거리가 아닌 이름도 흉측한 '공해'로 치부됨은 오래 전의 이야기이다.


4월 말이나 5월 초의 봄철에 이르면 소나무도 여느 식물과 마찬가지로 번식을 하기 위해 꽃을 피운다. 소나무 새순 줄기에 따라 옥수수 모양으로 노랗게 옹기종기 매달려서 수꽃이 피고 나면, 수꽃의 끝부분으로 엷은 보라색을 띠고 1cm 정도의 계란 모양으로 암꽃이 피어난다. 이때 수꽃에서 날리는 꽃가루가 암꽃에 닿아 수정이 되면 솔방울이 되고 그 안에 씨가 생기게 되는 것이다. 소나무의 번식에 필요한 씨가 만들어지는 과정이다. 여느 식물처럼 곤충의 역할을 이용하여 수정이 되는 것이 아니라 바람에 따라 꽃가루가 날라 암꽃에 앉으면 수정이 되고 씨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수꽃에서 날리는 송홧가루가 봄철이 되면 노랗게 날리는 것인데, 그것은 소나무가 번식을 위해 하는 것이니 어쩔 수 없는 것이 아닌가? 도시 생활에서는 흔하게 접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불편한 존재로 취급받는 송홧가루는 숫꽃에서 날리는 꽃 가루이다. 오래전 추석 즈음에 다식을 만들기 위한 그 송홧가루를 얻기 위한 과정은 어렵고도 복잡했다. 소나무가 자라기 위해 하늘 쪽으로 쑥 밀어 올린 꽃대인 수꽃을 잘라서 말린 후, 그릇에 놓고 살살 털어내면 송홧가루가 모아지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큰 소나무는 올라가기는 그리 수월하지 않아 자라나는 소나무를 택하는 수밖에 없다. 무럭무럭 자라나는 소나무 줄기에 달린 수꽃을 잘라 내어 양지바른 곳에서 말려야 했다.


자라나는 소나무를 자르는 것은 소나무에 미안하기도 했고, 송홧가루가 날아가지 않도록 조심스레 털어야 하는 어려움도 많았다. 송화 꽃이 잘 마르면 자리에 펴 놓고 송홧가루를 털어야 한다. 송홧가루는 작은 바람에도 날아가기 쉬워 가루를 모으기에는 세심한 주의 필요했다. 또한, 송홧가루의 양은 그리 많지 않아 일정한 양을 모으기에는 그리 쉽지 않았다. 무한한 인내심을 가지고 모은 송홧가루는 제사상에 필요했던 다식을 만드는데 요긴한 필수품이었다.


노란 송홧가루는 주로 다식을 만드는 데 사용되었는데, 우선은 송홧가루를 물과 적당한 비율로 섞어 반죽을 한다. 다식을 만드는 다식판을 놓고 다식판의 양쪽 고리를 눌러주면 다식을 만드는 동그란 구멍이 생기게 된다. 각 구멍에 적당한 양의 송홧가루 반죽을 넣고, 손으로 눌러 모양을 만들어 준 후에 위쪽에 남은 부분을 잘라낸다. 다시 다식판의 양쪽 끝의 고리를 접고 다식판을 눌러주면 다식이 위쪽으로 올라오게 되는데, 이렇게 만들어진 노랗고도 동그란 다식에는 각가지 문양이 새겨지며 다식의 품위와 위용을 갖추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하여 만들어진 다식은 요구되는 노력에 비하여 맛은 그렇게 뛰어나지 않았지만, 조상을 모시기 위한 정성은 대단했다는 생각이다.


추석 즈음에 되면 또 소나무가 필요한 곳은 송편을 만들때였다. 싱싱한 솔잎을 뽑아 송편을 찔 때 솥에 깔고 찌면 소나무의 솔향이 배어 맛깔난 송편이 되기도 했다. 솔향이 배기도 하지만, 솔잎과 더불어 보관하던 송편에서 솔잎을 떼어내며 먹노라면 향긋한 솔향이 멋진 맛을 주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쉽게 접할 수 없는 맛이기에 아쉽기만 한 추억이다.


지금의 송홧가루는 어떠한가? 공동주택에 심어진 소나무는 엄청난 푸름을 주고, 때로는 멋진 풍경을 주는 아름다운 나무들이다. 해기 뜰 무렵 푸르름을 안겨주는 소나무는 싱그럽기 한이 없고, 해가 질 무렵 석양과 어우러지는 소나무는 깊숙이 자리한 기억을 자극하기에 충분한 그림이다. 하지만 공동주택단지의 조경수로서 사랑을 받아온 소나무는 상당한 가격을 주어야 하는 나무인데, 요즈음은 노란 송홧가루가 날려 모두가 싫어하는 나무로 취급되기도 한다. 소나무 밑에 차를 두면 송진가루가 떨어져 표면을 부식시키기도 하고, 솔나무 잎이 떨어져 지저분하게 만들기도 하기 때문이다. 오래전에 이사 온 주택단지 안에도 거다란 소나무가 여기저기에 심어져 있어 언제나 푸르름을 만날 수 있고, 신선함을 안겨주어 늘 고맙고도 좋은 나무라 생각하며 살고 있다.


이렇게 생각하면 조경수로서의 충분한 자격이 있는 소나무로 여러 가지의 번거로움도 있지만, 소나무가 주는 즐거움을 생각하면 그만한 노력과 번거로움은 감수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얼마전에 새로 준비한 자그마한 시골집에 심어 놓은 몇 그루의 소나무도 봄철이 되면 노란 송홧가루를 뒤집어쓰고 어느 곳으로 날려 보낼까를 고심한다. 노란 송홧가루가 날리면 봄철이 왔다는 증거이기도 하고, 오래 전의 추억을 끄집어낼 수 있는 기회를 주기에 웬만한 것은 감수하고 살아가려고 하고 있다.


얼마 전, 친구가 찾아와 소나무 관리하는 법을 알려주며 손수 나무를 다듬어 주고 간 적이 있다. 하지만 나무에 관해 아는 것이 없어 조경사의 손길을 빌려 남은 것을 정리하는 수밖에 없었다. 이리저리 공부도 하고, 소나무를 심은 친구들의 조언을 구해 소나무의 생육을 억지로 조정하지 않으면서 나무를 관리해 보려 한다. 봄이면 꽃씨를 뿌리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이고, 그렇게 해야 자연이 보존되는 것이기에 그냥 두고 보는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이어서다.


오래전, 송홧가루 날리는 시골의 작은 집에서 어렵게 송홧가루를 얻어 다식을 만들고 계시는 어머니를 그리며, 잔디밭 끝에 자리한 몇 구루의 소나무를 바라보고 있다. 그 사이 며칠 전 정리한 소나무 위에 재잘거리는 새들이 찾아와 아침이 찾아왔음을 알려주고 준다. 오늘도 화사하지는 않지만 언제나 푸르름을 안겨주는 소나무를 바라보는 이 아침이 즐겁기만 하다. 자연을 가꾸고 같이 살아가는 시골집에서 잠시나마 불편함을 주는 소나무이지만, 소나무가 주는 추억과 그리움에 비하면 그만한 불편함은 감수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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