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디 깎는 날 6, 카프리 섬)
새 봄이 되어 50여 평이 넘는 잔디밭엔 들쑥 날쑥한 잔디가 제멋대로 자라난다. 그중에는 작은 민들레도 끼어 자라고 개망초, 제비꽃 등 자잘한 풀과 꽃들도 덩달아 자라난다. 아내와 함께 아침저녁으로 잡풀을 뽑으면서 정성스레 잔디를 보호해 왔다. 가지런히 자란 잔디가 편안함을 주기도 하고, 안락한 시골집을 감싸 안은 듯해서이다. 아침에 일어나 잔디밭에 나서 적어도 한두 시간은 잔디와 씨름을 하며 보낸다. 봄이면 산들산들한 바람이 상쾌함을 주고, 여름이 되면 시원한 산골 바람이 불어 이마에 흐른 땀을 식혀 준다.
봄철이 지나고 잔디가 자라 들쑥날쑥 해지면 잔디를 깎는다. 잔디가 자라나는 위치가 달라 햇살이 비추는 시간이 제각각이고, 물을 주더라도 물의 양의 적고 많음에 따라 키가 다르기 때문이다. 꽃에는 물을 자주 주기에 잔디밭 가 꽃 밑에서 자라는 잔디에는 습기가 많아 잔디가 더 잘 자란다. 봄철이 무르익을 무렵, 공들여 잔디를 깎아 놓으면 마치 머리를 예쁘게 깎아 놓은 아이처럼 귀여운 모습으로 시골집을 빛내 준다. 다시, 잔디가 여름 비를 맞으며 무성하게 자라나면 잔디를 또 깎는다. 그것이 바로 오늘이다. 그러면서 다시 가을이 무르익어 낙엽이 질 무렵이면 올해의 마지막으로 잔디를 예쁘게 깎아준다.
항상 잔디밭을 보살피지만 잔디를 깎으려면 잔디밭을 미리 보살펴주어야 하는데, 보살피는 것은 잡풀을 뽑아내야 하는 것과 기계로 깎기 불편한 곳은 낫으로 미리 잔디를 깎는 일이다. 잡풀을 놔두고 잔디를 깎아버리면 잡초의 뿌리가 잔디밭에 그대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잔디밭에 잡초를 뽑으면서 항상 고민을 하게 하는 것은 어느 것을 뽑아내야 하느냐 하는 것이다. 그 말은 잔디밭에 잡초가 무엇이냐 하는 것이다. 잔디밭에는 잔디만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 나의 고집이고, 아내는 꽃이 피는 것은 그냥 두어도 좋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작은 민들레나 제비꽃은 예쁜 꽃을 피우니 그냥 두어도 좋다는 주장이다. 나는 잔디밭에는 잔디만이 있어야 하고 잔디밭에 있는 꽃은 잡초라는 것을 주장하곤 한다.
오늘은 잔디를 깎는 날이라 어느 것을 뽑든지 표가 나지 않는다. 어제저녁에 잔디만을 빼놓고 모두 뽑아 놓고 잔디를 깎기 시작했다. 하지만 또 고민이 생긴다. 잔디밭 가를 가득 메우고 있는 것이 꽃들이고, 거기에 박하가 무성하게 자랐기 때문이다. 꽃은 피어있지 않지만 아직도 줄기가 남아 있는 것이 많고, 무성한 박하는 자기의 존재감을 드러내려는 듯이 짙은 향을 뿜어 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 곁을 지키고 있는 서양톱풀은 아직도 몇 개의 꽃을 달고 있는 줄기가 장맛비를 견디지 못하고 앙상한 꼴이 되었다. 이것들을 어떻게 할 것인가?
잔디를 깎는 기계는 혼자 운전을 해도 상관이 없지만, 기계에 전기를 공급하는 선이 있어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다. 전기선이 필요 없는 것은 크기도 하지만 가격도 만만치 않아 전기를 이용하는 것으로 구입했기 때문인데, 그 선이 잔디를 깎는데 방해가 되어 언제나 아내의 손길이 필요하다. 아내가 전기선을 잡고 따라다녀야 하니 내 마음대로 잔디를 깎으며 꽃줄기를 자른다는 것이 또 조심스러웠다. 아내의 눈치를 보면서 잔디밭 쪽으로 길게 가지를 내민 것은 잔디와 함께 깎아 버렸지만 그렇지 않은 것은 어떻게 할 것인가가 고민이었다. 조심스레 아내에게 물었더니 잔디밭으로 불쑥 나온 것은 잘라버리라는 허락이 떨어졌고, 기계로 자를 수 없는 것은 아내가 손수 자르며 잔디를 깎아냈다.
잔디를 깎을 계획을 세우면서 고민은 아내가 꽃을 정리하지 못하게 하면 어떻게 할까였다. 그냥 둘 수도 없고 또 무정하게 깎아 버릴 수도 없으니 고민이었다. 하지만 아내는 언제나 단순한 것을 좋아하는 내 마음을 헤아려주느라 한 걸음 양보 해 주어 잔디 깎기가 수월했다. 언제나 꽃을 좋아해 여기저기에 꽃을 얻어다 심고, 아침저녁으로 꽃을 가꾸는 모습이 보기 좋아 지켜보기만 한다. 하지만 꽃에 대한 욕심이 너무 많아 여기저기에 심어진 꽃이 어수선해 나는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도 나의 의견에 많이 동조해 줌이 고마워 화단을 가꾸는 것은 큰 이견이 없어 다행이다 생각하며 살아간다.
잔디를 깎으면서 깎아낸 잔디를 처리하는 것도 고민이었다. 지난해에는 타는 쓰레기봉투에 넣어 버렸더니 왠지 수거가 되지 않아 다시 처리를 했다. 앞에 산이 있기에 산에 버리면 저절로 퇴비가 되어 나무에 좋을 듯도 하고, 아랫집 아주머니는 모아서 썩히면 좋은 퇴비가 된다면서 반기기도 하니 주었으면도 했다. 하지만 아내가 소나무 밑에 모아 두고 저절로 썩기를 기다려 퇴비로 삼을 요량인가 보다. 살림을 하면서 어느 것도 함부로 버리지 않는 알뜰한 아내의 살림살이의 법칙이려니 하고 보기만 했다. 이와 같이 아내는 뒤에서 내 마음을 잘 보살펴주기도 하지만, 살림살이의 큰 줄기를 스스로 담당하며 해 주어 언제나처럼 고맙게 생각되는 아침이다.
깔끔하게 깎아진 잔디밭은 예쁘게 단장된 어린아이 머리처럼 깨끗하게 되었다. 잔디밭 가에 기계로 깎기 불편한 곳은 낫으로 정리를 하고 난 잔디밭은 가을이 저물 무렵에 한 번만 더 깎아주면 올해 세 번째 일이 끝나게 된다. 올해의 마지막 잔디 깎기는 아이들을 불러 함께 해 볼 계획이지만, 아이들이 시간이 허락되어 응해 줄지도 알 수가 없으니 살아감이 어쩐지 버거운 생각이 들기도 한다. 세 번째 잔디 깎는 작업이 끝나게 되면 올해도 슬금슬금 하루씩 거의 지워지고, 세월을 한 움큼 더 보내게 될 테지만 그래도, 예쁘게 깎아진 잔디밭이 주는 단정함은 항상 단순한 것을 좋아하는 내 마음과 같아 한결 개운한 아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