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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한 바퀴

(자전거로 만난 세상, 남아공에서 만난 풍경)

by 바람마냥

아침에 일어났더니 머리가 지끈거린다. 왜 그렇지? 언젠가 술을 마시는 나를 보고 아내는 이런 이야기를 했다.

가끔 술을 마시고 머리가 아프다고 하면, 술을 마시는 사람들은 이상하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내일이면 머리가 아프고 속이 아플 텐데도 또 마신다는 것이다. 맞는 말이기에 긍정하고 말았지만 오늘이 그랬다. 어제저녁에 술을 조금 많이 마셨기 때문이다. 얼른 일어나 먹을 것을 대충 챙겨 자전거를 끌고 나섰다. 아내는 벌써 일어나 동네 사람들과 운동을 하고 있다. 서둘러 바람 속으로 빠저 들어가니 지끈거리던 머리는 조금 시원해진 기분이다.


자전거를 타고 시골 동네를 구석구석 다니는 맛은 남다르다. 시내에 있을 때는 도심을 벗어나기가 위험하고도 힘들었지만 시골에는 농로도 잘 포장되어 그런 어려움이 없어 너무 좋다. 끌고 나가면 자전거 길이니 얼마나 좋은가? 다만, 농사일에 바쁜 시기에는 자전거를 타는 것이 불편하다. 바쁘게 일하는 사람들이 있으면 일하는 곳은 가급적 피하면서 예의를 차리려 하지만 왠지 쑥스러운 것이 단점이긴 하다.

가을빛이 내려왔다.

곳곳에는 벌써 일을 하는 사람들이 많고, 아침 이슬이 반짝이는 들에는 가을빛이 완연하다. 서서히 가을 색이 바람을 타고 밀려오고, 덩달아 농부의 일손은 바쁘게 움직인다. 길가의 해바라기도 하늘빛 따라 밝게 빛난다. 오늘따라 푸른 하늘을 다 마시고 싶은 마음은, 언젠가 동해 바닷물을 다 퍼마시고 싶은 생각과 똑같다. 그리도 싱싱한 푸름이 가슴을 설레게 하기 때문이다.

산비탈에 있는 배추밭에는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나와 배추를 돌보고 있다. 벌레를 잡는지 굽은 허리를 굽히고 무엇인가 하고 계신다. 할아버지는 자전거를 타고 오셨지만 할머니는 다리가 불편하신지 유모차에 몸을 기대어 오셨다. 틀림없이 허리에는 허리 보호대를 차고 계시리라. 시골 곳곳에서 만나는 풍경이지만 왠지 가슴이 저려옴은 오래 전의 어머님이 생각나서인가 보다. 모두 건강하셨으면 하는 마음으로 바라보는 눈이 아려온다.


이제, 만나는 시골마다 우리도 살기 좋아졌음을 실감한다. 산골에 있는 작은 동네까지도 길이 깔끔하게 포장이 되어 있고, 집들이 반듯하고도 예쁘게 단장되어 도시와 시골이 구분되지 않고 있으니 말이다.

오래전에 찾았던 이웃 일본 농촌의 부러움이 한순간에 사리지는 통쾌한 시골 풍경이다. 산이 있는 골짜기에는 저마다의 보금자리를 차리고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산다. 정원에는 갖가지 꽃을 심어 분위기를 살려 놓았으며, 울타리에도 운치 있는 덩굴식물을 심어 놓았다. 산이 있고 햇살이 밝게 비추는 위치가 그럴듯한 곳에는 예쁜 집이 들어서 아래를 내려보고 있다. 지붕은 갖가지 색으로 물이 들어 푸르른 산과 잘 어우러짐은 한 폭의 수채화를 연상케 하고, 텃밭에 자란 무와 배추는 보기만 해도 상쾌함을 주는 싱싱함이 가득하다.

자전거 길이 아름답다.

농촌 가정에 한두 개가 있었던 지게가 하던 일들을 이제는 자동차가 대신하고, 낫이 하던 일을 이젠 예초기가 한다. 힘겹게 등짐을 지던 시대가 지나고, 소의 힘을 빌리던 때가 그리워지기도 한다. 고개 너머에 있는 밭을 일구러 가는 소와 어린 송아지 그리고 쟁기를 짊어진 평화스러웠던 농부의 모습이 보고 싶기도 하다.

길가 곳곳에 트럭이 세워져 있고, 곳곳에는 자동으로 소독을 하고 있으며, 여기저기서 산소에 풀을 깎는 소리가 추석이 다가왔음을 알려주고 있다. 층층으로 되어있는 계단식 논에는 바람 따라 일렁이는 누런 벼들이 영근 벼이삭을 이기지 못하고 고개를 숙였으며, 길가에 기다란 수수도 붉은 알이 영글어 목을 지탱하기 힘겨워한다.


한참을 돌아 폐교된 학교를 만났다. 이곳은 자주 만나는 폐교들과는 다른 모습이다. 어린이들의 캠핑장으로 재탄생되어 갖가지 시설이 갖추어져 있다. 코로니 19로 발길이 끊겨있지만, 시설이 깨끗하게 정비되어 사람을 기다리고 있는가 보다. 오늘은 여기에서 화려한 아침 식사를 하기로 했다. 그늘이 만들어진 평상이 있어 자리를 잡았다. 간단히 준비해 온 화려한 아침 상을 차렸려고 한다. 밝은 햇살이 비추고,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는 곳에 널찍한 평상을 무대를 상을 차렸으니 이것보다 화려한 밥상이 어디에 있겠는가? 거기에 새들의 노랫소리가 들리고, 처절한 여름 매미가 가는 여름을 아쉬워하고 있다. 농부들의 땀과 수고가 곁들이 먹음직한 고구마와 잘 영근 포도 한 송이 그리고 시골장에서 산 꽈배기로 성대한 만찬을 차렸다.

가을로 가는 햇살과 바람을 반찬삼아 성대한 아침을 끝내기는 너무 아쉽다. 이만하면 어디서 먹는 아침보다도 성스러운 밥상이다. 성대한 잔치를 끝내고 배낭을 둘러메니 왠지 배낭이 엄청 가볍다. 배낭에 있던 것을 뱃속으로 넣었으니 그런가 보다. 내 몸은 훨씬 가볍다는 생각인데, 자전거가 받는 무게는 같지 않을까를 의심하면서 다시 페달을 밟는다.

성대한 아침을 맞은 폐교

멋진 아침을 먹을 수 있는 이런 폐교도 있지만, 자전거길에 만나는 많은 폐교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사람 손길이 가지 않은 많은 폐교들은 어느 곳이나 풀이 가득하고 다가가기가 어렵게 어수선하다. 운동장에는 풀이 무성하고 교실 유리는 깨어져 있으며, 벽은 검게 변해 마치 유령이라도 나올 듯한 모습이다. 오래전에는 작은 상점이 있어 코흘리개들의 발길을 잡기도 했을 것이고, 가을이면 운동회가 열려 동네 사람들의 잔치가 벌어지던 곳이었을 것이다. 자전거를 탄 선생님이 출근하시고, 아이들은 가방과 도시락을 들고 오갔을 학교이다. 만국기가 펄럭이는 학교 운동장에서는 아이들의 웃는 소리가 가득하고, 청백으로 나뉜 아이들의 응원소리가 크다. 운동장 나무 밑에는 순댓국을 끓이는 커다란 솥이 야단스레 소리를 낸다. 모두가 아름다운 추억의 그림들이다.


시절이 변해 아이들이 줄어들고 시골에는 어르신들만이 동네를 지키고 있다. 어느 곳이나 허리가 굽은 어르신들이 밭일을 하고 있다. 시골에서 큰 사회적인 구심점이 되던 학교가 사람 발길마저 끊겨버린 곳이 돼버렸으니 너무나 아쉽게 다가온다. 오래전 내가 다니던 학교가, 그리움이 가득한 어린 시절의 추억의 장소를 기억에만 의존해야 한다는 것이 아쉽기 때문이다. 어린이 캠핑장으로 변신하여 오래전 학교의 역할을 조금이라도 할 수 있음이 다행으로 생각하면서도, 이것을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것인가를 고민해 보기도 한다.


다시 길을 잡아 내려오는 길은 시원하지만 이제 햇살이 따가워졌다. 시냇물은 장맛비 덕에 바닥이 보일만큼 깨끗하다. 곳곳에서 만나는 냇물에는 많은 물이 있어 기분이 상쾌하고, 가을빛이 역력한 하늘은 지끈거리든 머리를 말끔히 씻어 주었다. 제방을 따라 자전거를 타고 오던 시골 부부는 어느새 자취를 감추었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자전거를 타는 시골 부부가 다정해 보였다. 혹시 다시 만날 수 있을까를 기대했지만, 아침 운동을 마치고 돌아갔는가 보다. 어서 집으로 돌아가 남은 아침을 뜻있게 보내야 하겠다. 자전거를 타고 도는 동네 한 바퀴는 언제나 상쾌한 아침을 주어 감사하다. 내일은 또 다른 동네를 돌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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