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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주는 생각

(가을 속에서, 페루에서 만난 안데스 )

by 바람마냥

이젠, 가을이 우리 곁으로 깊숙이 왔다. 산 위에 머물던 가을이 어느새 문틀에도 왔다. 붉은 단풍이 뜰앞을 가득 메워 가을임을 알려주더니, 소나무도 가는 잎새를 물들이며 가을이 왔음을 손가락으로 알려준다. 오늘도 여지없이 안개가 드리운 산에 한 줄기 햇살이 내려앉아 멋진 그림을 전해준다. 긴 햇살이 화살처럼 쏟아짐이 오늘도 맑은 가을을 주려는가 보다. 여름이 왔는가 했는데, 어느새 가을은 깊숙이 다가와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왜, 가을은 그리 많은 생각을 안겨줄까? 가끔 생각해 보지만 알 수는 없다.


가을에 접어들어 시골에 산다는 이유만으로도 많은 혜택을 받았다. 언제나 비추어주는 햇살이 있고, 빠지지 않고 늘 내려오는 안개가 있다. 햇살과 뿌연 안개의 조합은 언제나 눈을 한 자리에 잡아 놓는다. 햇살을 따라 내려오면 푸름이 안개를 털어내고, 몸을 말리려 배시시 웃는 웃음을 외면할 수가 없다. 한참을 바라보며 있노라면 계절의 아름다움을 헤어날 수가 없다. 그래서 한 번쯤 생각을 해본다. 시간은 무엇이고 계절이 무엇인가를 말이다. 이렇게 눈에 초점을 잃고 앉아 있노라면 시골의 삶이 시작된다. 이웃에서 움직이고 그 윗집에서 일을 나서니 삶의 활력이 다시 솟아나게 된다.

IMG_7673[1].JPG 저녁 연기 나는 동네, 그 옆엔 가을이

가을을 외면할 수 없어 오른 산에는 갖가지 산 식구들이 가을을 맞이한다. 빨간 단풍나무는 어느새 옷이 더 짙어졌고, 언덕 위에 산국은 노랗게 옷을 장만했다. 하얀 구절초의 꿋꿋함을 바라보노라면 그 옆엔 개미취가 보랏빛으로 가을을 맞이했다. 자연의 섭리에 따라 스스로 몸을 바꾸어 살아가는 모습에 마음마저 경건해진다. 소리 없이 자연에 순응하는 그들을 보면서 인간은 도대체 무엇을 하는가? 얼마나 자연스럽게 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가? 해도 해도 끝이 없는 생각 덩어리이다.


작년엔 집 앞 도랑 옆에 콩을 심은 적이 있다. 도랑 옆에 쌓은 작은 벽돌 틈에 콩을 심어 얼마간의 콩을 수확하며 자연의 신비에 감탄한 적이 있다. 올해도 그 재미를 찾고자 콩을 또 심었다. 그런데 올해는 콩이 열매를 맺지 않는 것이 아닌가? 정성이 부족했거니 하면서 어때나 저때나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옆집에 사는 이웃이 열매가 맺지 않는 이유를 알려준다. 집 앞에 있는 가로등 불 때문이라는 것이다. 지난해에는 없었던 가로등을 설치했다. 밤새껏 밝혀주는 불빛이 삶을 혼란스럽게 만들어 놓았나 보다. 자그마한 자연의 섭리도 그르쳐서는 되지 않는다는 것을 또 한 번 실감한다. 신비한 가을을 예약하려 했지만, 편리함만을 추구하는 인간이 그들의 삶을 그르쳐 놓고 말았다. 뜰앞에 붉은 단풍이 더 맑아졌다.


쏟아지는 햇살을 먹으며 얼마나 맑아졌는지 한참을 바라봤다. 나는 저 나무를 위해 해 준 것이 하나도 없는데, 나무는 일 년 내 잎을 피워 즐거움을 주었다. 가을이 되어 붉은빛으로 갈아입고 황홀한 뜰앞을 만들어 주었다. 내년에는 뿌리가 알차고 잎이 성하도록 퇴비라도 한껏 주어야겠다는 생각이다. 받은 것도 없이 전부 주는 것은 붉은 단풍만이 아니다. 한동안 사람의 발길이 부산했던 앞산의 밤나무도 그렇다. 수많은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었던 밤나무는 어느새 빈 밤송이만이 나뒹군다. 뭇사람들에게 밟혀서 볼품이 없게 되었지만 누구에게도 원망하지 않는다. 초봄에 꽃을 피워 자그마한 밤송이가 열렸었다. 어느새 입을 벌리고 붉은 입술을 불게 치장을 하며 모든 이에게 즐거움을 주었다. 사람에게도 그렇고, 산 짐승에게도 그랬다. 산에 사는 식구들이 먹을 만큼은 놓아두고 인간이 즐겼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IMG_7654[1].JPG 구절초가 꽃을 피우고

이제, 가을은 사람과 산 식구들에게 줄 것을 모두 주었다. 봄에서 여름까지 열심히 열리고 익혀서 베풀 것을 모두 베풀어 주었다. 나는 그 자연에 무엇을 해 주었느가? 아니면, 이웃들에게 무엇을 주었는가? 어찌 생각해 보면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하고, 그들의 베풂만 받은 것이 아닌가? 봄철에 이르러 갖가지 나물을 주었고, 여름 내내 시원한 바람과 그늘을 갖게 했다. 쏟아지는 장맛비를 막아 즐거운 삶을 주었다. 작은 밭에 햇살을 주어 그들을 영글게 했다. 지금도 어쭙잖은 배추가 통통하게 살을 찌워간다. 그 옆에 당근이 자리 잡고 몸을 불려 간다. 코스모스를 피워 붉게 물들여놓고, 그 옆엔 구절초를 하얀 옷으로 갈아입혔다. 모두가 자연이 주는 성스런 선물이다.


가을은 이래저래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가을을 책을 읽기 좋은 계절이라 하는 이유도 이래서인가? 일 년 중 차분해지면서 생각을 하게 하는 계절임은 틀림이 없는 것 같다. 가을은 일 년 내내 만든 자연의 성물을 아무 거리낌 없이 내어 준다. 그런 가을은 풍성한 품을 내어 주고 떠나며 겨울의 자리를 남겨 놓는다. 이제 스산한 바람이 불고 눈이 오면, 모든 것을 내준 가을의 허전한 자리를 겨울이 덮어 주리라. 텅 빈 들판을 푸근하게 덮어주고, 허전한 나뭇가지를 푹신한 솜으로 감싸주리라. 단풍이 떨어진 자리에 이불을 덮어 봄이 올 때까지 뿌리를 보존해 주리라. 그렇게 계절은 서로가 서로를 도우며 순환한다. 자리다툼도 하지 않고, 먼저 가려고 하지도 않는다. 우리 사람도 그리했으면 좋겠다. 이래저래 가을은 많은 생각을 던저주고, 계절의 모퉁이를 돌아 가리라. 겨울에 그 자리를 주고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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