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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 당신은 위대했습니다.

(새벽에 만난 당신, 짐바브웨에서 만난 석양)

by 바람마냥

어김없이 밖에서 도랑물 소리가 들린다. 옆에 있는 닭장에선 어느새 밝아오는 빛을 알았는지 새벽닭이 목청을 높인다. 창문을 열자 뿌연 안개가 온 산에 가득하다. 안개가 끼었으니 오늘도 날씨가 좋을 것 같다. 오래전에 어른들이 하시던 말씀이다. 왜 안개가 끼면 날씨가 좋지? 문득 떠오른 질문이다. 안개라는 것은 온도차로 인해 물방울이 생기고 이 물방울이 지표면에 머무르는 것을 말한다. 안개가 생기려면 대지 온도가 낮아져야 되는데, 그러려면 날씨가 맑고 바람이 약한 야간에 왕성하게 일어난다고 한다. 그러면 오늘도 날씨는 좋다는 뜻이 아닌가? 참, 대단한 자연의 섭리를 감탄하며 바라보는 아침이 아름답기만 하다.


아침부터 안개에 관한 생각을 해보면서 나간 집 앞엔 아내가 운동을 하고 있다. 일을 할 수 있는 차림으로 호미와 낫을 들고 잔디밭과 채소밭을 정리하기로 했다. 전번에 벌레들의 습격으로 고생을 한 적이 있어 완전무장을 하고 나선 아침은 상쾌하기만 하다.


잔디밭에 앉아 풀을 뽑고, 정리를 하면서 생각하지도 못한 것을 알게 되었다. 올여름 동안 뜰앞을 밝게 비추어주었던 큰 금계국이 보이는 것이 아닌가? 한참 전에 까만 씨가 생기면서 줄기가 말라가기에 뽑아 버린 큰 금계국이 싹을 내밀었던 것이다. 늦은 여름까지 꽃을 피우고 진 큰 금계국 씨가 떨어져 철도 모르고 싹을 내민 것이다. 어김없이 받아들이는 대지의 너그러움에 감사해하며, 차가운 기운이 오기 전에 큰 금계국 꽃을 볼 수 있을까를 기대해본다. 싹이 나오긴 나왔지만 날씨가 추워지면 싹을 내민 의미가 없을 테니 어서 자라 꽃을 피우기를 바라며 잔디를 정리한다.


잔디밭에는 장마기 지고 나면 커다랗게 나타난 것은 잡풀이다. 쇠뜨기가 그렇고, 제비꽃이 그렇다. 수없이 나타나는 풀들을 뽑으며 자연의 대단함에 감탄하고 만다. 올해와 같이 길게 장마가 온 것도 드물었다. 드물기도 했지만 많은 습기를 가진 뜨락엔 생각지도 않은 벌레의 습격이 대단했었다. 특히, 올해는 생기기도 징그러웠던 노래기의 출현이 단연 이야기 주대상이었다. 하지만 장마철이 끝나고 선선한 바람이 찾아오자 노래기의 모습은 볼 수가 없다. 그렇게 난리를 치며 살아보려 했던 노래기들이 위대한 자연에 순순이 승복하며 자리를 감추고 만 것이다. 참 대단하고도 위대한 자연에 감사하며 다시 몸을 낮추게 된다. 자연의 대단함은 곳곳에서 나타난다.


시골집엔 주차장이 특별히 없어 잔디밭 가장자리 쪽으로 주차를 하곤 한다. 주차하면 차량 뒤쪽 잔디밭이 햇살을 받는데 약간의 방해를 받게 된다. 하지만 조금 지나면 태양의 위치에 따라서 그곳도 햇살을 받게 되어 있지만, 햇살을 조금 덜 받는 진디가 골을 부리듯이 잘 자라지 않는다. 다른 곳은 잔디가 성장하는데 지장이 없어 파릇파릇하지만, 약간의 햇살이 부족한 곳이라고 잔디가 듬성듬성 자라며 성장에 지장을 받는다. 작은 햇살이 잔디에게는 성장하는데 엄청난 영향을 주는 것이다. 잔디는 죽고 사는 것이 달려 있으니 말이다.


작은 밭에서 무럭무럭 자란 배추는 어느덧 널따란 잎을 갖추었다. 듬성듬성 상처 난 잎이 바람에 너덜거려도 어느덧 몸집을 불려 제법 그럴듯하게 되었다. 따스한 햇살은 모든 것을 치료하고 원상으로 돌려놓고 만 것이다. 커다란 배추는 배추로서의 위엄을 갖추었지만 어느 것은 더딘 발걸음으로 따라오고 있다. 무엇이 부족하고 서러웠는지 잎도 훨씬 작아짐이 애처롭기도 하지만, 뒤뚱거리는 어린아이의 걸음마처럼 열심히 달려오며 내일을 기약한다. 따사로운 햇살의 위업을 이어 자랄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인간으로서 최소한 도리이기에 풀을 뽑아주고, 뿌리를 북돋아주며 추위가 오기 전에 배추로서 품위를 지켜주기 바랄 뿐이다.


배추 모종을 심을 즈음에 싹을 틔운 열무는 싱싱함을 자랑하고 있다. 처음에 싹이 돋아 났을 무렵에는 무명의 벌레들의 습격에 몸을 가눌 수가 없었다. 심술을 부리듯이 찾아온 장마가 힘들게 하더니, 장마를 버티고 나자 보이지도 않는 벌레들의 습격으로 몸살을 앓았었다. 대지를 들고 나온 어린싹부터 갉아먹기 시작한 벌레들은 어느덧 줄기가 생길 때까지 잎을 그냥 두질 않았었다. 앙상한 줄기만 남아 바람에 흔드리는 것이 안타까워 고개를 돌렸지만, 찾아온 햇살과 함께 모든 역경 이겨내고 마지막 승자가 된 모습이다. 바람에 나폴대는 잎이 그렇고, 옹기종기 모여 키를 불린 모습에 신기함을 금할 수 없다. 그리도 작은 씨앗을 뿌려 놓았건만 위대한 대지의 힘을 안고 불쑥 자라남이 신비스럽기만 하다. 스스로 자라난 열무가 대견스러워 잡초를 뽑아주고 골을 돋워주었다.


아내는 이내 운동을 끝내고 앞 길에 떨어진 가을의 전령, 낙엽을 쓸어내고 있다. 지나는 이웃이 찾아와 보고는 배추 고갱이가 안도록 끈으로 묶어 주란다. 무엇이 무엇인지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배추 모종만 사다 심어 놓은 것이 어설펐는가 보다. 언제나 친절한 시골의 멘토 노릇을 하는 이웃이 이것저것을 알려줌이 고맙기만 하다. 뒤 밭에는 아직도 고추대가 그대로 있다. 그놈의 장마로 인한 탄저병이 만연되어 고추라고 생긴 것은 모두 썩히고 말았다. 남은 줄길를 뽑아낼까를 고민했었지만, 줄기를 뽑아내면 푸름이 없어지는가 해서 그대로 두고 있는 참이다. 달렸던 고추는 돌보지 못하고 떠났지만 햇살을 머금은 고춧대는 파란 잎을 달고 바람 따라 웃고 있다.


산골동네를 찾아온 안개는 아름다움을 실컷 전했는지 어느새 소리 없이 흔적을 감추었다. 자연의 순리대로 앞산의 녹음이 환하게 웃으며 맑은 햇살이 찾아왔다. 어느새 잠을 깬 새들이 이웃으로 마실을 떠나고, 덩달아 맑은 하늘은 높기만 하다. 언제 안개가 있었는지 모르도록 깨끗한 뜨락엔 어느새 진빨강 코스모스가 하늘거린다. 이에 질세라 남은 여름을 부여잡으려는 듯이 꽃범의 꼬리가 전력을 다해 꽃을 피웠다. 아직도 홀연히 남은 도랑물은 옹알대며 옹알이를 한다. 얼른 잔디에 햇살이 비추도록 차를 비켜 세워놓고, 깨끗한 물로 배추와 열무에 물을 흠뻑 주었다. 온몸을 깨끗이 씻어주듯이 물을 주고 나자 상쾌한 아침은 벌써 두 시간이 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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