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를 타고 나선 길, 네팔 포카라의 페와 호수)
새벽 창문밖엔 비가 온다는 예보가 있었지만 아직은 비는 오지 않고 바람도 잠잠하다. 자그마한 빗방울이 떨어지는가 했는데 지금은 멎었다. 창고에 있는 자전거를 타고 길을 나섰다. 시골 동네 사람들이 일터로 나서기 전에 나가는 것이 마음에 편해서 일찍 나선 것이다. 이웃집에선 일터로 향하는데 나는 자전거를 타고나서는 것이 왠지 미안해서이다. 내려가는 길이기에 전 속력으로 달려 내려가니 마음마저 시원하고, 아직은 일터로 향하는 사람이 없어 다행이다 싶다.
대문을 나선 오른쪽 언덕에는 동네 할아버지의 들깨밭이 있다. 모진 비바람에도 끄떡없이 자란 들깨가 푸름을 과시하며 할아버지의 노고에 답하고 있다. 할아버지는 잡풀로 덮였던 밭을 한 고랑씩 풀을 뽑아내시더니 어느새 비옥한 비탈밭으로 일구어 놓으셨었다. 그러는 사이 밭고랑이 생기고 여름이 올 즈음엔, 비탈밭에 들깨를 심으셨다. 아침저녁으로 할아버지 발소리를 먹고 자란 들깨는 거센 바람에 약간의 몸을 기울이는가 했는데, 어느새 힘을 얻어 몸을 일으며 세웠었다. 다가오는 태풍에도 끄떡없이 버티어서 할아버지의 노고에 보답했으면 하는 생각을 하며 페달을 밟았다. 어서 동네를 벗어나야 자그마한 미안함이라도 감출 수가 있어서이다.
내려가는 밭에는 푸름이 가득한 밭이 되어 바람이 일렁인다. 왼편으로 담배농사를 짓는 농부가 어느새 담뱃잎을 따고 그 자리에 배추를 심어 놓았다. 긴 장마에 망설이듯이 드문드문 담뱃잎을 따곤 했는데, 어느새 담배가 뿌리째 뽑아지더니 밭을 갈고 배추를 심어 놓았다. 밭을 갈아 골을 만들어 어느새 검은 비닐로 이불을 덮어 놓았다. 몇 명의 아주머니들이 오고 간 후, 비닐을 뚫고 아기 배추를 심어 놓았다. 처음엔 푸름이 점으로 보였는데 어느새 고랑을 그득하게 메우고 있다. 조금만 긴 비바람을 이기고 나면 밭이 신나는 검푸름으로 변신해 있으리라.
오른편으로는 벼가 고개를 숙이고 바람에 일렁인다. 어느 여름날, 메마른 논에는 물이 차츰 모아지고 농부는 서둘러 논을 갈았다. 트랙터가 몇 번 오가고 모심는 이앙기가 왔다 갔다 한 후, 한 뱀이의 논이 꽉 차고 말았다. 그러더니 그 넓은 논 다랭이에 모심기가 끝이 나고 만 것이다. 그 후, 비가 오고 바람이 찾아와 어느새 논은 그들먹한 검푸름이 가득해졌다. 그사이 따가운 햇살과 바람은 벼이삭을 익혀놓아 가을 색으로 물들여놓았다. 굵어진 벼이삭이 축 늘어진 모습은 가을이 왔다는 신호이고, 두렁콩도 어느새 열매를 달고 바람에 일렁인다.
옛날 같았으면 누런 소가 농부의 다그침에 논을 갈고, 써레질을 하여 모내기를 했다. 널따란 논에 모를 심으려면 한동안 농부의 수고가 있어야 하기에 아낙네의 논 밥이 있어야 했다. 하얀 쌀밥에 노란 콩나물 무침이 있고, 기분이 좋은 날은 참기름 소금이 처진 까만 김이 바람에 나풀거렸었다. 밥 한술에 귀한 김을 올려 한 숟가락 입에 넣는 기분이야 말할 수 없는 환희였었다. 그 세월이 훌쩍 가버리고 뿌연 연기를 뿜는 기계들이 그것을 대신하고, 엄청난 모 밥보다는 짜장면이 대신함이 서운하기도 했다.
길을 서둘러 긴 나무들이 우거진 시골길로 접어들었다. 그곳엔 해마다 양배추가 재배되는 곳이었는데, 올해도 어김없이 양배추를 길러 놓았다. 커다랗고 실한 놈은 벌써 팔려갔는지 자리가 비어있지만, 아직도 덜 자라 실하지 못한 양배추는 자리를 지키고 있다. 멀리서는 한 농부가 실한 양배추를 수확하고 있다. 지나가는 마실꾼은 실하지 못한 양배추도 맛은 똑같은데 하면서 지나지만, 세상은 그렇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우선은 보기 좋은 것, 커다랗고 멋져 보이는 것만이 선택을 받는 세상이라 말이다. 사람이 사는 세상에서만은 그렇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을 해보지만, 그것이 내 마음대로 될 수없음이야 너무 잘 아는 마실꾼이다.
언덕을 넘어 내려가는 옆에는 아직도 지난 태풍에 온 빗물이 가득 내려간다. 물이 맑아져 기분은 좋지만 그 옆에 널브러진 풀들이 안쓰럽기도 하다. 건너편 논에는 비바람을 이기지 못한 벼가 쓰러진 모습에 가슴이 아프다. 그리도 정성으로 돌보았던 벼가 비바람을 이기지 못하고 쓰러짐이 농부의 가슴을 얼마나 저리게 했을까를 생각하게 한다. 비바람이 멎고 햇살이 비추면 저 벼도 힘을 얻어 일어섰으면, 어서 남은 벼이삭도 실하게 영글었으면 하면서 오는 바람을 맞이해 본다. 냇가에는 엊그제 마실 나왔던 오리가족이 오늘도 어김없이 나왔다. 새끼를 돌보는 어미 오리는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경계한다. 그 옆에는 꺽다리 두루미가 사방을 경계하며 먹거리를 찾고 있다. 서로가 자기 일을 한다는 식인지, 아니면 전혀 상관을 하지 않는 것인지, 관심이 없는 것인지 모르겠다.
바람을 가르며 내려간 하천 아래쪽에선 사람과 새들이 공존하는 공간이다. 한쪽에서는 오리가족이 신나게 머리를 물속에 처박는다. 먹을거리가 그리도 많은가 보다. 이제는 우리의 하천도 깨끗해졌는지 많은 철새들이 찾아오고, 다슬기도 많아지면서 사람의 발길이 끊이지 않음이 보기 좋다. 조금 떨어진 곳에선 긴 장화를 입은 사람이 다슬기를 잡고 있다. 푸르른 다슬기를 넣은 아욱국이 그리운 시절이란 뜻이다. 가을 아욱국은 문을 닫고 먹는다고 하지 않던가? 거기에 푸르스름한 다슬기가 들어가면 그보다 시원한 맛은 얻을 수가 없으리라. 언제 먹어도 그리운 맛이지만, 그 깊은 물에까지 들아갈 엄두가 나지 않아 서둘러 페달을 밟아본다.
아래쪽 넓은 보가 막아진 곳에선 세월을 낚는 사람들이 보인다. 널따란 보에 낚싯대를 드리우고 앉아 세월을 낚는다. 차림새로 보아 밤낚시를 하며 밤을 새운 사람인가 보다. 한 사람이 차를 몰고 먹거리를 사 가지고 오는 모양이다. 오래전에 낚시에 빠저 밤새는 줄을 모르던 시절이 생각난다. 아내를 졸라 낚싯대를 구입하여 틈만 나면 저수지로, 댐으로 나다니던 시절이 있었다. 밤새도록 고기를 잡으며 낚시에 집착했던 시절이 그리워진다. 어렵게 잡아온 고기를 친구에게 나누어 주기도 하고, 아내의 손길을 빌려 맛있는 매운탕을 먹던 시절이 그리워진다.
이젠 냇가를 거슬러 올라야 할 때가 되었다. 페달을 밟으며 두어 시간이 되었을 지나 다리 근육이 뻐근해 오기 때문이다. 어서 서둘러 집으로 향해야 하지만 푸르른 들판은 그냥 두질 않는다. 지난해에는 친구들과 어울려 하루에 칠팔십 킬로 정도의 자전거길을 달리기도 했다. 심하면 백여 킬로 가까이도 하곤 했지만, 왠지 근육에 무리를 주는가 해서 지금은 망설여지곤 한다. 푸르른 들판을 바라보면서, 커가는 곡식들에게 감사하고, 살아있음의 즐거움을 만끽했으니 고단한 근육을 생각해 서둘러 집으로 향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