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이 주는 행복, 덴마크 니하운 )
한 줌의 햇살이라도 주워 담아야겠다. 요즘 들어 더 귀하게 여겨지는 햇살이 아쉬워 오늘도 한 줌의 햇살을 찾아 시골길로 나서야 한다. 어서 이 햇살이 산을 넘어 창문에 어둠을 안겨주기 전에 가야만 한다. 그래야 비스듬히 안겨주는 햇살을 만나 잔잔한 미소를 머금으며 한가할 수 있다. 한 잔의 커피가 필요하고, 한 권의 아름다운 책이 필요하지만 거기엔, 반드시 반짝이는 햇살이 한 줌이라도 있어야만 한다.
잔잔한 바닷가에 내리쬐는 햇살이 부서져 다가오는 그 아름다운 햇살을 본 적이 있는가? 낙산사 오르는 언덕에 앉아, 밀려오는 파도에 부딪쳐 되돌아오는 영롱한 햇살을 보고 눈물을 흘린 적은 없는가? 삶이 그렇게 팍팍하던 시절에도, 아름다운 강산의 어느 곳에서나 쉬이 대할 수 있었던 햇살이 어느 순간부턴가 만나기 어려운 귀한 보물이 되고 말았다.
해외여행을 하면서 무심히 지나온 일 중에 하나는, 그들은 햇볕을 너무나 좋아한다는 것이다. 그들이 왜 이렇게 햇살을 즐기려 하는가를 알지 못했음은, 우리는 너무나 쉽게 얻을 수 있는 햇살이었기 때문이었으리라. 오래전, 해외여행을 하면서 물을 사 먹어야 하는 것을 보고 의아해했던 것이 우리의 현실이 되었다. 이제는 우리도 그들이 햇살을 차지하려 바둥거리는 형태가 되었으니 이를 어찌해야 한단 말인가!
봄이 되면 아름다운 들판에 아지랑이 뒤편으로 비추는 햇살이 오고, 여름이면 소나기 멈추고 난 뒤 내리쬐는 햇살이 파랑에 부딪쳐오는 그 빛은 신비로울 만큼 화사하다. 대신, 가을빛으로 물든 들판에 내리쬐는 햇살이 부서지면 성스러움을 주는 빛이 되어 고이고이 뇌리에 남아돈다. 가을빛이 여물어 겨울이 되니 산골엔 가득히 눈 속에 잠겨버렸다. 하지만 그 속을 뚫고 떨어지는 한 줌의 햇살은 하나의 화살이 되어 심장 깊숙이 자리하고 있으니 그 빛의 아름다움을 무엇에 견주랴? 이렇게 아름다운 빛이 이제는 쉽게 만날 수 없는 시절이 되었기에, 깜짝 놀라게 울려대는 미세먼지 경보음에 오늘도 뛰는 가슴을 억누를 수 없었다.
우울하던 그림에 한 줌의 빛이 내려 환하게 웃는 그림이 되었고, 창문을 열어 만나는 짙푸른 녹음은 햇살에 부딪쳐 아름다움을 발하게 된다. 삶의 곳곳에서 만나는 수많은 인간의 그림자들과 삶의 흔적들은, 이미 햇살이 비집고 들어올 틈조차 틀어막아 컴컴한 어둠이 되고 말았다. 공동주택에 익숙한 삶이 오래되었기에 얼마간 찾아오는 햇살에 고마워하며 살아온 지 오래되었지만, 어느 순간에 그 햇살도 넉넉지 못한 형편이 되었다. 시도 없고 때도 없이 찾아오는 먼지 뭉치는 햇살을 가리기에 너무나 충분했고, 느닷없이 나타난 미세먼지라는 흉물은 햇살은커녕 숨조차 편치 않게 만들고 말았다.
해 질 녘 오후가 되면, 비스듬히 비추는 햇살이 하얀 찔레꽃에 앉았다 떨어지는 한 줌의 빛을 소중히 간직하고 싶었고, 구름을 뚫고 내리쬐는 맑은 햇살은 한 움큼 삼키고 싶은 먹거리였으면 했다. 이 햇살을 찾아 나선 어느 조그만 시골집은 그래도 작은 햇살을 안겨주기에 충분하지만, 그곳에도 미세먼지라는 것은 자리하고 있는 날이 많아 걱정이 앞서긴 마찬가지이다. 앞산의 푸름이 번뜩이고, 뒷산의 푸름이 넘실거려 거기에 한 줌의 햇살이 내려앉으면 이것보다 더 좋은 햇살은 없음직하고, 아름다운 행복을 찾아 오늘도 나서 본다.
집이 앉은 방향이 동남 향이라 아침 일찍 햇살이 찾아와, 집을 우측으로 돌면서 서서히 사라지는 햇살은 그런대로 넉넉한 즐거움을 안겨준다. 창문을 열면 푸름이 가득한 액자가 되고, 이층에 올라 내려보는 작은 도랑은 언제나 명랑한 노래를 부르며 햇살을 되 보내 준다.
일층 유리를 통해 만나는 햇살은 특히, 아침에 만나는 것이 좋다. 커다란 유리를 통해 강렬하지도 않으면서 따스한 빛을 전해주기도 하고, 앞 산 짙푸름에 반사된 빛이 찾아와 반갑기도 하다. 가끔은 앞뜰 잔디에 내려앉았다 찾아오는 햇살이 소박하기도 하고, 얼핏 들렸다 돌아가는 햇살이 아쉬움을 주어 좋기도 하다.
대신, 이층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빛은 푸름을 머금고 찾아오지 않아 강렬하지만 따사함이 있으며, 빈 방을 휘둘러보는 여유까지 있어 한가해 좋다. 작은 쪽방 창문을 통해 찾는 햇살은 부끄러운 듯이 비스듬히 찾아 여운을 주며, 긴 꼬리 넉넉히 흔들어 앙증스러워 좋다.
밝은 햇살이 내리는 날은 한 잔의 커피를 적당히 내리고, 비스듬히 소파에 앉아 책을 읽는 것이 좋다. 가끔 찾아오는 산새들 구경도 하고, 적당히 찾아오는 바람과 어울려 곰곰이 상상도 해본다. 구태여 내일 할 일을 걱정하지도 말고, 오늘 해야 할 일도 머릿속으로 끄집어내지 말아야 한다. 아무 생각 없이 내리는 햇살에 몸을 맡기며, 눈이 가는 대로 책장을 소리 없이 넘기는 여유가 좋다. 그러면 잔잔한 커피 향은 아래 위층으로 가득해지고, 덩달아 찾아온 햇살이 그 향을 따라 조용한 시골집은 잔잔한 평화만이 감돌게 된다.
마음의 쉼을 찾아서, 이 햇살이 서서히 시들어 뒷산을 넘어가기 햇살을 맞이해야 한다. 그 곳엔 작은 햇살이나마 남아 있고, 머지않아 푸르른 녹음이 내려 풍성함을 줄 터이니 서둘러 그들을 맞을 준비를 해야 한다. 작은 밭에 골을 주어 푸르름을 심을 채비를 해야 하고, 작은 도랑에 물길을 잡아 갈갈대는 노랫소리 들리게 해야 한다. 그래야 햇살 창창한 날에 찾은 햇살이 더 반짝이는 맑은 가슴이 된다. 어서 그곳을 찾아 한 줌의 햇살이라도 주워 담아야겠다.